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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 moon gu Mar 17. 2023

다꾸용품 과소비 기록

사주카페 사장님 미워요.


이 도둑놈 시키..

돈 아까워


소름 돋는다는 사주카페 사장님과 통화를 끝내고 욕이 절로 나왔다. 내가 다꾸 용품을 과소비하게 된 일은 며칠 전에 있던 사주풀이 사건 때문이다.  


우리 동네 맘카페는 나름 청량하다. 광고등의 거짓, 도배글도 없고 진심으로 동네를 아끼고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맘카페라 굳게 믿고 있다. 그 카페에서 내돈내산 후기로 올라온 사주집이 있는데 정말 용하단다. 댓글에 비슷한 내용이 달린다. 일 년에 한 번씩은 간다, 너무 도움이 된다, 소름소름 소름 돋는다는 둥.


소름?

오... 그래.....


대학 때 유명하다는 점집에 동기들과 우르르 가서 본걸 시작으로 몇 번 재미 삼아 가본 적이 있다. 점을 봐주시는 분들이 하는 얘기는 늘 비슷했고 어느 누가 들어도 다 해당되는 얘기들이다. 혹시라도 또 점을 보게 된다면 돈이 남아돌아서 코 풀 때 쓸 수 있으면 그때 봐야지 생각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학시절 축제 때 재미 삼아 관상과 손금을 봐주는 좌판을 벌였다가 엄청난 줄이 생겨서 꼼짝없이 늦은 저녁까지 목이 쉬게 점을 봐줬다. 줄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늘어났으며 이후에도 어떻게 전번을 알았는지 연락해 오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스러웠다.

딱 하루 해본 건데 너무 쉽게 돈이 벌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무섭게 느껴졌다. 여행지에서 만나 손금을 봐준 선생님은 몇 년 뒤에 다시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내 말대로 일이 생겼는데 어찌해야 하냐는 말이었다.

중요한 일의 결과 발표 전에 꾸는 꿈 역시 늘 적중했다.

손금과 관상을 봐주는 게 보기에는 쉽게 내뱉는 거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진짜 기가 쭉쭉 빨리는 일이다. 쉽게 한마디 내뱉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 굉장한 몰입과 집중이 요구되며 내 몸과 영혼에 좋지 않다는 게 정확하게 느껴진다.


보려고 하면 진짜 보이게 되는 게 이쪽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남의 인생에 대해서 좋은 얘기가 아닌 이상 무슨 도움이 될까?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고 감히 예견할 수 없고 무조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30대가 넘어서는 재미로라도 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고민이 있는 친구에게 타롯카드로 봐주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마저도 그만둬야 한다는 강한 느낌이 왔다. 오래 간직하고 만졌던 타롯카드를 버리며 다시는 보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본능적으로 이 길은 내 인생이 무섭게 고꾸라질 지름길이라는 걸 알고 멀리했다. 의식적으로 멀리한 덕분에 지금은 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경지에 올라왔다.

 



맘카페에 소개된 사주집의 상호명을 검색해본다.

예약도 가능하고 전화로도 잘 봐주신단다. 네이버 후기에  80% 이상은 맞는다, 신기하다, 소름,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이곳에 간다는 후기가 줄줄이 있다.

궁금하니  빠른 시간으로 전화예약을 해본다.  요즘 무소비 릴레이로 기분도 좋고 뭔가에 홀린 듯 입금까지 마쳤다. 최근에 친언니와 사주풀이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서 좀 궁금하기도 했다.


사장님은 맘카페 홍보 덕분인지 밀려드는 예약으로 정신없이 바쁘신 것 같았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셨다. 아니 말도 몇 마디 안 하셨지만 질문 던지고 그거 물면 때려 맞춰서 대화를 이어가는 낮은 수의 얘기를 하신다.


아... 돈 아까워....

사주풀이나 들어보려고 했더니 사주의 기본도 얘기를 안 하시고 전혀 의미 없는 얘기를 몇 마디 하고는 급히 끊으려고 한다. 10분이나 통화했나? (사주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혹시라도 말이 길어질까 봐 그러셨을까? 돈 벌어라, 부동산에 투자해라, 올해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이사계획이 있느냐 이게 전부다.)

대박.. 돈 벌기 쉽네. 3만 원을 그냥 길에다 버려도 이거보단 기분이 나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족수대로 다 보지 않고 딱 내 것만 넣어본 거다. (12만 원 버릴 뻔)


화가 난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나한테 화가 난다 엉엉엉

그걸로 장바구니 담아뒀던 다꾸용품이나 살걸 엉엉엉

안 되겠다. 이 더러운 기분을 풀려면 다꾸용품이 필요하다. 오늘의 이 기분을 기록으로 남겨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지. 몇 달째 망설이며 고민하던 다꾸용품을 그대로 결제했다.


예쁜 색상의 마스킹테이프, 다양한 색종이들이 도착했다. 마스킹테이프가 가진 색과 질감 그 자체로 그냥 아름답다. 오늘만큼은 아끼지 않으리라! 왼쪽 페이지에 맘에 드는 색을 죽죽 잘라서 붙여본다.


다꾸다꾸 내 사랑

다꾸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 새로 산 동그라미 종이를 꺼내어 함께 사진도 찍어준다.


3만 원을 점집에 내어주고 그만큼의 다꾸용품을 소비했다. 미니멀하게 살고픈데 자꾸 물건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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