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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yselfolive Jun 08. 2021

채우는 동쪽 여행

주문진에서 속초까지

나의 어린 시절, 아빠는 매주 주말이면 차에 한가득 우리 식구들을 다 태우고 어디론가 여행을 다니셨다. 앞자리에 아빠와 엄마가, 뒷자리에 우리 딸 셋이 가득 찬 그 차를 타고 다니던 그 장면이 항상 여행길 앞에 떠오른다. 

그 시절의 한 기억.

대관령을 넘어갈 때 쯤에, 차에 기름이 떨어졌다. 대관령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가던 그 모험적인 여행의 하일라이트였다. 아빠는 한참을 걸어 내려가 기름통에 기름을 받아오셔서 차에 기름을 넣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던 곳이 강원도였다. 강릉, 주문진 그리고 속초까지. 

그리고는 몇 년 후, 우리집 막내는 그 곳으로 대학을 갔다. 서울과 인천에서만 살던 우리 가족들은 강원도에 가족이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동생이 강릉에 있는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떠올랐던 기억이 바로 그 구비구비 어렵게 지나갔던 대관령의 고개였다. 그 고개를 매번 지나 동생을 보러 갈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물 몇의 나에게 참으로 막막하게 느껴졌던 때였다.

동쪽으로의 여행은 개통된 고속도로와 기차들 덕에 매 순간 놀랍고 반가워하며 향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동해바다를 옆 동네 가듯이 툭하면 갔다. 언제 어느 순간에 가도 아름다운 동쪽 여행. 당연히 아름답다 알고 가도 매번의 그 어느 바다보다 매번 더 아름다운 주문진의 바다. 그리고 서퍼들의 힙함이 가득 채워진 양양을 거쳐, 동아서점 하나만으로도 가야할 이유가 충분한 속초까지.


여행의 시작, 든든하고 따뜻한 삼미 식당

주문진 건어물 시장 거리에서 골목 사이로 쏙 들어오면 먼 발치에서도 담백한 세련미를 뿜어내는 삼미 식당의 모습이 보인다. 그 멋진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이번에는 다정하고 따스한 어머니의 정겨움을 뿜어내는 매력 만점의 삼미 식당이다. 

삼미 식당은 내가 정말로 애정하는 브랜드 오롤리데이 (인스타그램 ohlollyday.official)의 롤리, 박신후 대표의 어머님이 하시는 곳이다. 식당의 외관에서 여느 주문진에서 볼 수 없는 담백한 세련미를 뽐낼 수 있었다는 것이 아무래도 박 대표님의 손길이 닿아서였을까 하는 즐거운 호기심을 안고 들어갔다.

박 대표의 어머님이 식당을 하신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어머님이 언제부터 식당을 운영하셨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 부터 일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그 대답에 왜 울컥했던걸까. 나의 아이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받을 질문에 똑같이 대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산에서, 제주도로 이사하고 그 제주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식당을 열기까지. 그리고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그 어느 시간이건 손님을 식당 문을 열면 뛰어 나가 밥을 지어야 했던 일하는 엄마. 고향인 주문진으로 돌아와 하던 시장 옆 작은 가게. 그리고 박 대표 부부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어 낸 지금의 이 멋진 삼미 식당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왔고, 일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딸이 그 엄마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오늘에까지의 삶이 오롯이 그려지는 장소, 삼미 식당.

처음 삼미 식당을 갔던 아침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집 앞 마당에서 딴 미니 사과라고 식사 다 하고 먹어보라며 주신 가지런한 작은 하트 네 개. 살포시 테이블 옆에 두고 가주셨는데, 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창에 붙여 둔 삼미 식당 이름의 그림자를 만들어주었는데, 마치 삼미 식당이 주는 선물이야라고 말을 건네는 장면같았다.

좋은 재료로, 좋은 마음으로 지어주시는 밥은 언제나 진심으로 맛이 있다. 주문진을 갈 때 마다 삼미 식당을 찾는 이유이다.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여시니, 아침밥 먹으러 엄마네 집에 가는 기분으로 삼미 식당에서 하루의 시작을 든든하게 하고 짧은 여행길을 나섰다.

 

주요 메뉴: 생선구이 쌈밥, 복어탕, 도루묵찜, 물회, 장치찜 등

주소: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시장길 49-4 (전화번호: 033-661-0223)

매일 09:00 - 21:00 / 인스타그램 @sammi_jumunjin


한국의 나폴리, 주문진 바다

수년 전에 읽었던 기사에서 한 소설 작가가 주문진 바다를 거닐며 ‘한국의 나폴리'라고 칭찬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나에게는 이탈리아 나폴리보다도 더 청량하고 아름다운 곳이 주문진 바다이다. 이십여년 전의 주문진 여행에서 주문진 시장 할머니께서 ‘주문진은 뭐든 다 깨끗하니 믿고 먹어라'라고 하셨던 말이 매번 주문진 바다를 마주하면 떠오른다. 이번 여행을 하기 전 몇 일을 지독한 먼지 날씨 때문에 고생했기에, 이 날의 청명한 하늘과 주문진 바다가 유독 더욱 깨끗하고 고마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삼미 식당에서 걸어서 십여분, 차로 약 4분 정도 거리에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가 나온다. 바다를 끼고 해안 도로를 가다 보면 금새 도깨비 촬영지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아름다웠던 그 드라마의 한 장면이 그대로 떠오르는 그런 멋진 바다이다. 매번 주문진을 올 때 마다 영진 해변을 누리고 간다. 영진 해변은 항상 한적하고 여유로운 바다였다. 게다가 바다와 하늘의 색의 균형은 정말 아름다운 멋진 바다. 그 곳에 귀여운 작은 가게가 하나 자리 잡았다.

 

귀여우니까! 카페 강냉이 소쿠리

‘강원도' 그리고 ‘옥수수' 

대문에 귀엽게 달려있는 옥수수만 보더라도, 바로 강원도 옥수수가 떠올라 빙긋 웃었다. 게다가 작은 가게의 이름은 소쿠리다. 귀여운 소쿠니에 담겨 있는 옥수수가 어떤 음식들로 변신해 있는 것일지 기대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강냉이 아이스크림에, 강냉이 카라멜, 달고나 강냉이까지. 기대 이상이었다. 

“강냉이 소쿠리의 수제 생카라멜은 강원도 찰강냉이를 우유에 24시간 이상 냉침해서 강냉이의 맛이 고소하게 우러나온 ‘강냉이 밀크'로 셰프가 매일매일 매장에서 직접 만들어냅니다.” 

귀여운 글씨로 소개된 강냉이 카라멜과 달고나 강냉이가 송송 뿌려진 강냉이 아이스크림까지 완벽한 귀염달콤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 강냉이 소쿠리 카페.

바닷가에서 잔뜩 물 첨벙대고 놀다 온 젖은 맨발을 탈탈 털며 털썩 걸터 앉아 강원도 옥수수를 한 입 베어 물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해 할 것 같은 딱 그런 분위기의 작은 마당과 연결된 마루, 그 위에서 강냉이 카라멜과 달콤한 강냉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정한 쉼의 시간을 누렸다. 

강냉이 소쿠리 카페의 한옥 처마 밑에 앉아서 요새 읽고 있는 월간 한옥 잡지를 펼쳤다. 아름답게 담긴 구례의 나물보따리 사진 화보를 보다가 문득 내 눈 앞의 바닷가 앞 강냉이 소쿠리의 모습이 얼마나 그에 못지 않게 멋진지하며 무릎을 탁, 치고 탄식했던 순간.

카페 강냉이 소쿠리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학교담길 32-8 

매일 11:00 - 19:00 


월간 한옥 

인스타그램 @hanok_magazine


옆 동네 양양을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 싱글핀 에일웍스

“양양에 피자 먹으러 가려고!”

강원도에 와서 무슨 피자 타령이냐고 의아해하던 가족들은 피자를 앞에 두고 모두 신이 났다. 두툼한 시카고 피자와 수제 맥주, 그 조합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더하여 옥수수알 튀김은 먹는 내내 꺄르르 꺄르르 소리 내어 웃으며 맛있다고 백 번을 외치며 먹은 재미난 음식이었다. 경포대 IPA, 선샤인 에일과 같은 수제 맥주들까지 함께 곁들이고 나니 주문진에서 양양을 지나치지 않고 온 우리의 여행의 결정을 어깨가 들썩이며 뿌듯해 할 수 밖에!

싱글핀 에일웍스 (인스타그램 @singlefin_aleworks) 

매일 11시 - 밤 10시 / 브레이크 타임 3-5시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618-1 (전화번호 : 033-672-1155)


동아서점 하나만으로 충분한 속초

속초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나는 동아서점을 알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의 최북단 도시라고 대답했다. 교과서를 통해 기억하는 도시, 최북단 도시 속초는 전쟁이 끝나고 피난을 내려왔던 북쪽 고향을 둔 피난민들이 휴전인 줄 모르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라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다가 휴전선에 가로막혀 못 가고 남게 된 아픈 도시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속초를 설악산을 가기 위해 왔었던 어린 시절 기억을 뒤로 하고 어른이 되어서 매번 찾게 된 이유는 속초의 백년 가게로 선정된 동아서점 때문이었다.

1956년부터 속초의 자리를 지켜 온 동아서점,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그리고 아들이 이어 그 긴 시간을 그렇게 그 자리에 있어 준 감사한 서점이다.

서점에 가면 유독 보물같은 책들이 눈에 잘 띄는 서점이 있다. 그런 곳은 어김없이 서점의 주인들의 마음의 애씀이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많은 책들에 먼지 한 톨 없는 것은, 매일 어루 만지는 서점 주인들의 애정의 손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좋은 책들을 알아보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책들을 사랑하며 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곳이 바로 속초의 동아서점이다.

보물같은 책들이 반짝이는 곳, 그 고요한 공간 속 평화로움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속초를 가야 하는 명확한 이유, 동아서점.

동아서점 (인스타그램 @bookstoredonga)

강원 속초시 수복로 108 / 월-토 9시 - 21시 (매주 일요일 정기 휴무)


채우는 동쪽으로의 여행

나는 언제 여행을 떠나는가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무엇인가에 무척 애를 쓰며 에너지를 다하고 난 뒤, 그 에너지를 채우러 여행을 떠나곤 한다. 나의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채우고, 파랗고 빨갛고 노랗고 형형색색 여행길의 풍족한 색으로 눈의 즐거움을 채우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들로 즐거움을 채우고, 가득한 책으로 마음을 채운다. 

파랗고 깨끗한 주문진, 힙한 양양 그리고 마음을 가득 채워 주는 속초.

나를 가득 채워준 고마운 동쪽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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