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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 Mar 15. 2019

나의 Quiet의 힘

싱가포르에서의 번아웃(burn out)

이제 해외생활을 한지도 2년 반이 지나고, 외국 '집'에서 한국 '집'으로 방문을 하기 시작한 것도 2년 반,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싱가포르에 산지 1년 반, 싱가포르 대학을 반년 경험하고, 싱가포르 소재 외국계 회사를 1년 경험하고, 이번에 2주 한국을 방문했다. 보통 한국에 다녀오면 나는 한국의 여러가지 요소들에 진절머리를 떨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느 요소들에는 여전히 진절머리를 떨었지만, 어느 요소들은 나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Initiative에 대한 '압박'


싱가포르는 다인종 국가이지만 서구와 동양의 문화가 섞여있는 곳이다. 내가 처음에 적응이 안되었던 포인트는 외국계 회사의 경우, 자신을 프로모션하고 셀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보수적인 대기업에서 일했던 나는,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하고, 상사가 말하는 데 'No'라고 말할 수 없고, 나의 의견을 피력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 회사와 그 부서의 문화였고, 팀내 막내사원이자 가장 어렸던 나는 '감히' 내 의견을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경험한 회사에서는 내 의견을 내고,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했다. 



- 'Negotiation'을 해본 적이 있어야지


처음 싱가포르에 현지 취업을 했을 때 나에게 충격이었던 건, 연봉이든 승진이든 '협상'의 문화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곧이 곧대로 회사가 주는 연봉이 아닌, 내가 원하는 연봉을 적절한 근거를 통해 제시해서 인사팀과 '협상'해서 맞춰나가는 것이었다. 1-2년마다 이직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싱가포르에서는 이렇게 연봉을 협상해서 들어오고, 이직할 때 또 협상을 통해 다른 회사로 연봉을 뛰어서 들어가곤 한다. 인생에서 협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얼떨떨했다.


잦은 이직 문화와 성과주의


한국에서는 3-4년 사원 이후 4-5년 대리, 이런 식으로 모두가 비슷한 길을 걸었다. 큰 문제를 저지르지 않으면 잘릴 일도 없거니와 어찌 되었든 연차가 차면 대리를 달고 과장을 달았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욕심과 야망이 있고, 일을 잘하고, 이를 셀링을 잘한다면, 단기간 안에 승진 및 원하는 연봉을 주는 회사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 실제로, 이런 성취들을 주변에서 해나가는 것을 보고, 나도 욕심이 났고, 지금 회사에서 이제 갓 1년이 되었지만, 스스로 이직에 대한 압박은 입사 4-5개월 이후부터 받았던 것 같다.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이직에 대한 문을 활짝 열어두고 적극적으로 이직하는 사람, 혹은 지속적으로 헤드헌터와 연락하면서 기회를 탐색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포인트는, 그만큼 회사에서 자르는 것도 쉽다. 실제로 한 부서 전체가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해고가 너무나 쉬운 이 곳에서 내가 일하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 한국만큼 해고가 어렵지 않은 이 곳은 그만큼 직업 구하는 것도 쉽기 때문에 말 그대로 더 '유연'하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이 유연함의 장점과 단점이 분명히 있다. 


Networking의 힘


싱가포르는 네트워킹 문화다. 직업도 리퍼(refer), 즉 추천을 받으면 인터뷰까지 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분야에 일하는 사람과 네트워킹해서 기회를 얻어낼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주어지는 대로 네트워킹을 했다. 학교 선배, 관심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 지인의 지인 등 여러가지 경로로 나의 네트워킹 풀을 넓혀나가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나의 번아웃(burn out)


12월 쯤엔 나에게 번아웃(burn out)이 찾아왔다. 개인적인 일도 있었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완전히 지쳐버렸다.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 나는 엉엉 울어댔다. 그동안 내 자신이 정말 지쳤음을 느꼈다.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나를 어린 시절부터 알던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한국 회사 때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많이 느꼈다. 나는 수동적인, '시키는 대로 잘하는' 사람으로 고등학교와 재수 시절을 보냈고,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한국 회사에서는 거의 군대 문화였기 때문에 '닥치고 시키는 대로 잘해야'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와 이 상황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처음으로 '능동적'인 결정을 통해 외국으로 석사행을 하게 되었고 흘러흘러 싱가폴에서 일까지 하게된 것이다.


Introvert한 나에 대한 자각


최근 MBTI를 해본 결과, 나는 완전한 내향적인(Introvert)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을 때', 싱가포르에서는 outgoing하고 extrovert하고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최근 읽고 있는 'Quiet'라는 책에서도 미국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extrovert한 사람에 대한 선호'를 지적한다. extrovert한 사람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전반적인 인식은 미국의 TV광고와 교육, MBA 수업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매니저 급들의 평균 MBTI는 'ISTJ' 유형이 많다고 했다. 결국 'Extrovert'한 성격 = 성공의 공식이 아니라는 거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주었던 압박이 'initiative'하고 'extrovert'한 사람이 되어야지 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성과주의 문화 기반의 extrovert한 성격이 어울리는 세일즈와 비슷한 롤들로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의 괴리에 속으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Introvert한 나의 Initiation


Initiate 즉 무언가를 시작하고, 제안한다는 것은 나의 결정을 믿고,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진다는 의미이다. 싱가포르에 와서 느낀 건, 내가 그동안 정말 initiate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직장이든 친구, 연인관계에서 모두 follower에 가까웠다. 


Initiate하지 않는 사람은 편하다. 상대의 제안에 따르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를 탓하면(blame) 되니까. 결정도 안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좀더 내 자신이 initiative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initiative 할 수 있는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만 나다운 방식으로. Introvert한 나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조근조근 차분히 내가 원하는 방향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직장에서 내가 원하는 게 있을 때나, 연인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상적인 나'에 나를 끼워 맞추려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싱가포르에서 선호되는 사람, 회사에서 선호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번아웃이 찾아오면서 나는 어디 시골 구석으로 숨고 싶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내 자신을 만들려 하다보니 스스로 지치고 숨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방향을 나의 내면으로 돌리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으로. 도예, 식물 키우기, 그림 그리기, 책 읽기, 여행하기 같은 취미 생활이 시작이 될 것 같다. 회사에서 이직과 승진에 대한 압박으로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않으려 한다. 나의 'quiet'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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