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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May 11. 2023

Xelha, 혼자서 테마 파크

100days in America #6

오늘은 워터파크(셀하라고 불리는 멕시코 자연 테마 파크) 가는 날! 아침 7시로 세팅해 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간단한 아침 루틴을 하고 나갈 준비를 하다가 불현 가서 잘 즐기려면 뭐가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켜 검색을 시작했다. 맹그로브 숲 사이로 튜브 타기, 스노클링, 절벽에서 다이빙, 40m 높이의 전망대에서 슬라이딩, 자전거 타기, 수영하기, 산책하기, 집라인 타기, 세노테 탐험. 눈에 보이는 활동들을 폰으로 캡처하면서 오히려 출발할 시간을 늦추며 미적거렸다. 가고 싶은데 혼자서 버스를 왕복 4번이나 타야 하는 거리에 있는 테마파크에 다녀 오려니 왠지 시작할 엄두가 안나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이미 티켓팅은 끝난 상태이다. 에이 귀찮아라며 하메가 자고 있는 침대로 기어 들어가기엔 내가 지불한 비용(올인크루시브 입장료 약 15만 원)이 너무 크다. 그래, 가야지! 가면 또 잘 놀 거면서. 늘어지는 몸을 의지로 붙잡은 나는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밖으로 나와 문을 잠근 뒤, 창문 틈으로 열쇠를 집 안으로 던져둔 뒤 창문을 닫았다.


센터로 가는 버스를 타고 그에게 열쇠 알림 문자를 하려고 보니 인터넷이 안되었다. 충전한 지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벌써 데이터를 다 썼을 리는 없단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번 데이터 충전할 때 충전을 도와준 직원과 거의 소통이 안되어 수상스럽게 생각했던 게 생각나며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싶었다. 오늘 하루의 불편이 예상되지만 인터넷이 안 돼도 폰은 유용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센터의 콜렉티보 승강장에서 Tulum행 합승차를 타고, 셀하 근처에서 내려 10분가량을 걸어 파크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다운로드하여 둔 음악을 들었다. 딴 소리는 잡생각을 줄여주니까.


티켓팅을 하고 들어선 파크 입구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돌고래와 함께 노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앵무새 두 마리가 사람들이 익숙하다는 듯 입구에 앉아 있다. 상상하던 파라다이스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사실 테마 공원에 있는 하루 종일, 그곳은 고객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꾸며진 인공의 파라다이스 같다는 생각이 자주 찾아왔다. 라커에 짐을 맡기고 어딘지도 모르겠는 길을 오르다 보니 자전거 스테이션이 나오고,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다 보니 너구리 떼가 나오고, 그 끝에 이르니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주는 곳이 있었다. 잽싸게 장비를 빌렸다가 눈치를 보니 스노클링으로 내려가는 길과 튜브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 나뉘어 있어 다시 반납하고 맹그로브 숲 사이로 튜브를 타고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누군가의 의사를 묻지 않아도 되고, 정보는 별로 없지만 안전한 곳이라 그냥 멋대로 하면 되는 상황의 시간은 퍽이나 자유롭고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어렴풋이 내가 홀로 지낸 작년 방학 기간과 거의 24시간을 그와 붙어 지낸 지난 한 달 반의 시간에 대한 회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혼자 있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과 설렘만큼, 함께 있다가 혼자인 나를 만나면 느껴지는 반가움과 설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마파크에 혼자 놀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안전하고 놀거리가 잔뜩 배치된 곳이야 말로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곳이지 싶기도 했다. 나는 혼자서 튜브를 타고 내려간 강 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 스노클링 하며 내려갔고, 가는 길 봐둔 절벽 다이빙, 짚라인 타기 등에 한껏 도전했다. 사실 10M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내 취향의 일은 아닌지라 오히려 그와 함께였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스팟 앞에 섰다가 남사스럽게 못 뛰겠다를 세 번이나 반복한 끝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도 뛰는 것을 수차례 보고서야 눈을 질끈 감고 파닥파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에라 모르겠다를 심정으로 뛰었다. 지키고 있던 안내 요원이 특별히 내게만 괜찮은지 기분이 어떤지 물은 걸 보면 내 행태가 자못 우습거나 안쓰러웠나 보다. 올인클루시브라 아쉽지 않게 놀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밥도 배부르게 먹고는 파크에서 홀로 우뚝 솟아 있는 40M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 워터 슬라이딩에도 도전했다. 가속의 아찔함 끝에 그 물도 짠물이란 걸 알게 되는 순간의 충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정신이 확 차려진 것인 듯도, 되려 혼미해진 것 같기도  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경험을 한 기분이었다.


적당한 정도의 설렘과 두려움을 자주 만나는 말 그대로 자연 속 놀이동산에서 보낸 신나던 하루는 갑작스레 쏟아 붓기 시작한 비로 예상보다 조금 일찍 끝나게 되었다. 최고의 휴양지라 여겼던 곳이 수용인원에 비해 비 피할 곳이 모질라 난민촌으로 변화하는 아찔한 경험까지 하고 나니 하루가 참 알찼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이런 비가 쏟아졌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그래서인지 함께 비를 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근이 오가는 눈빛, 삐쭉이 튀어나오는 기가 차다는 웃음이 값진 공감대 형성처럼 느껴졌다. 빗줄기가 약해지길 기다려 챙겨간 수건을 뒤집어쓰고 걸어간 길을 돌아 콜렉티보를 타고, 퇴근시간이라 긴 중간 정차를 기다릴 끝에 졸고 졸다 저녁시간을 넘겨 숙소로 돌아오니 8시. 하메가 영화를 보다 나를 반겼다. 12시간의 길고 깨어있던 하루의 끝에 마주한 아늑함은, 이런 게 행복이지 싶은 감동을 건넸다.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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