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쉘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를 흔히 '의,식,주'라 한다. 입고, 먹고, 쉴 공간이 있어야만 살 수 있을테니 이견을 내기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이중에서도 가장 필수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언컨대 식, 음식이다. 집이 없으면 홈리스로 살아갈 수 있다. 옷이 없으면 민망하긴 하겠지만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네이키드 카우보이를 보라! 하지만 음식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그리고 음식은 그 어떤 것보다 사람과 깊숙이 밀착해 있다. 입으로 들어와 몸 속 내밀한 공간까지 닿는 것은 음식 뿐이다. 소울 푸드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소울 코스튬, 소울 하우스라는 말은 없지 않나. 정말인지, 음식은 종종 우리 내면 깊숙한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료해 주기도 한다
미쉘 자우너의 회고록 'H마트에서 울다'도 바로 그런 이야기다. 어린시절부터 말썽꾸러기였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사사건건 엄마와 언쟁을 높였던 저자 미쉘.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를 뒀다. 미쉘은 땅바닥을 구르며 치고 받을 정도로 엄마와 싸우기도 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했다. 이 책은 그런 그가 성년이 된 뒤 엄마를 병으로 떠나보내는 과정과 그 이후의 아픔을 엄마가 해줬던, 혹은 함께 먹었던 한국 음식으로 달래는 이야기다. 미쉘이 그 음식들을 만드는 과정은 상담 치료보다 훨씬 큰 위안을 가져다 준다.
I canceled the rest of my sessions and committed myself to exploring alternative forms of self-care.
(나는 남은 세션을 모두 취소하고 나 스스로 나를 돌보는 대안에 몰두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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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ish I cooked exhumed a memory. Every scent and taste brought me back for a moment to an unravaged home.
(내가 만든 모든 요리가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모든 냄새와 맛이 우리 집이 황폐하지 않았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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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tarted making kimchi once a month, my new therapy.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은 나를 새로운 치료법이었다. )
- Michelle Zauner, Crying in H-mart
원서로 읽다보니 모르는 단어나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 많아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친숙한 한국 음식과 지명 - 홍대, 부산, 제주, 심지어 '곱창전골'이라는 LP바 까지 - 이 등장해 무척 반가웠다. 단, 한국 음식은 물론 한국이 그리워지는 부작용이 있다.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 다문화 사회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 갈등이 해묵은 숙제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1989년생 미쉘이 아시안-아메리칸으로서 겪은 정체성 혼란을 여전히 많은 아시안-아메리칸이 겪고 있는듯 보인다. 지금 내가 미국에 살면서 관찰하는 바이기도 하고.
책을 모두 읽고 저자 미쉘 자우너가 궁금해져 그에 대해 찾아봤다. 미쉘은 현재 Japanese Breakfast라는 밴드에서 활동 중이다. 몇개 음악을 찾아봤는데 Be Sweet 이라는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 일본 시티팝 감성이 충만하다. 한국어 버전도 있다.
그리고 이 밴드의 앨범 Psychopomp는 미쉘의 엄마와 이모의 젊은 시절 사진을 표지로 만들었다. 70년대로 추정되는데 요즘 레트로 감성에 잘 들어맞는 듯. 힙하다. 감각있는 아티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