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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면 이것부터 해보세요"

대학 졸업 뒤 첫 스타트업 연매출 200억 손명균 대표의 사고 방식

by 김수진

손명균 서울스킨 대표는 중심이 단단한 잡힌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 탐색으로 시작된 고민이 심연을 오가며 잡긴 마음의 근육 덕분이다.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누구보다 즐겁게 대학 시절을 보냈지만, 그 끝무렵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찾아왔다.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를 최우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학교 홍보 대사, 뮤지컬 동아리, 각기 다른 과에 친구 만들기 등 대학생으로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해본 그였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을 터였다. 모두가 좋다고들 하는 의전원, 로스쿨부터 행정고시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왜?’라는 의문이 늘 뒤따랐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진로를 택한 선배들을 만나봤지만 손 대표가 닮고 싶은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즈음 의무경찰로 병역의 의무를 지게 됐다.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단순한 생활이 고민을 가볍게 하는데 도움이 됐다. 막역한 사이가 된 40대 사수 경찰관이 손 대표에게 ‘사실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며 마음을 털어놓는 모습에, 진로 고민은 평생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더구나 세상은 빠르게 변하기에. 손 대표는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는 대신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봤다. 손으로 써 내려가며 추린 핵심 가치 세 가지가 자유, 사람, 성장이다. 이때부터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세 가지 가치에 견줘보고 중요한 결정하게 됐다. 훗날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자신의 철학을 지킨 선택에 후회는 없으리라 믿었고, 지금까지 그래왔다.


“자유는 경제적 자유와 다른 자유를 같이 포함하는 개념이었어요. 내 판단이 아닌 외적인 요인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거나 하기 싫은 걸 해야 하는 상황을 가능한 줄여나가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로 사람은 ‘내가 같이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하고 가능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였어요. 세 번째 성장은 ‘내가 정체돼 있는 게 아니고 계속 나아지고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이런 것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의사, 변호사의 길 등을 생각해 보고 그 길을 가신 선배님들 하고도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나의 삶을 이렇게 투영해 보잖아요. 내가 저 길을 가면 저런 삶을 살겠구나 했을 때 ‘난 저 길이 좋은 것 같아’, ‘저게 좀 나랑 맞는 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창업을 하셨거나 유학을 가신 분들이었어요. ”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단 미국으로 석사 유학을 가서 학사 논문 주제이기도 했던 인공지능을 더 공부한 뒤 실리콘밸리에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창업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다만, 미래에 개발자들과 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보고 직접 소프트웨어 개발을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 열정을 바친 뮤지컬 동아리의 사진과 영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걸 차곡차곡 정리한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가 만든 첫 ‘서비스’는 동아리 선후배의 감동을 샀고, 거기에 만족했다. 이 홈페이지가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이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홈페이지를 본 동아리 후배가 친형이랑 같이 작은 사업을 해보려고 하는데 개발을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사업을 한다고 하길래 ‘잘해보라’며 거절했는데, 한 번 더 연락이 와서 만나나 보기로 했죠. 그 형이 제가 전혀 가보지 않은 금융컨설팅, 사모펀드 등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손 대표는 당장 사업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에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관련 기술을 A4용지 두 페이지에 정리해 가져갔다. 그걸 본 후배의 형은 그 자리에서 같이 창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에서 언급한 ‘점과 점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 무료 서비스로는 동아리 홈페이지를 만들어봤잖아요. 그런데 모르는 고객들한테 돈 받고 서비스를 제공해 보는 경험은 쉽게 하기 어려운 거거든요. 그런 니즈(needs)가 좀 있었어요. 그래서 ‘난 창업을 할 거야’라며 (진로를) 결정을 했다기보다는 세네 달 정도 앱 개발을 해보고 잘 안되면. 너무 재미가 없고 너무 힘들면 개발한 거 다 주고 공짜로 그냥 나와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에 가까웠어요.”

스타트업 운영은 손 대표가 앞서 정립한 중요한 가치 체계, 자유, 사람, 성장과도 잘 어우러지는 길이었다. 자유롭게 일하고, 성공하면 경제적 자유도 기대할 수 있다. 함께 일할 사람을 직접 선택할 수 있고, 회사와 함께 자신 역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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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킥보드 공유 서비스를 하는 디어의 코파운더이자 부대표로 6년을 달렸다. 회사는 연매출 200억원을 달성했고, 2024년 매각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 다시 자유, 사람, 성장을 찾아 미국 뉴욕으로 날아왔다.


그는 다시 한번 중심을 단단히 잡고 미국 시장이라는 크고 거친 파도에 올라 탈 준비 운동 중이다. 그런 그를 찬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중순 맨해튼 미드타운 위워크에서 만났다.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뉴욕에서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한인 민박과 서브렛을 전전하며 일하느라 지친 기색도 보였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눈빛은 반짝였고, 입은 신중히 고른 단어를 또박또박 말했다.

손명균기사용사진.jpg 미국 뷰티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스타트업을 준비 중인 손명균 대표


굳이 미국까지 와서 사업을 하시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과가 안 나더라도 잃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어요. 잃는다는 것에는 비단 돈뿐만 아니라 시간이 포함되고, 저한텐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하고요. 한 번 태어난 건데 한국에만 있기에는 조금 심심하지 않을까? 100살 넘게 살 수 있잖아요. 언젠가는 미국에 가봐야 될 것 같은데 그리고 미국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결국 못했어?’ 이럴 것 같은 거예요. 40, 50, 60 됐을 때 ‘너 아직도 안 나갔어?’라는 말을 스스로한테 계속할 것 같은 거예요. 그때 진짜 생각해 봤어요. 40살이 됐을 때 뭘 가지고 나를 타박할까 상상을 했을 때 ‘왜 아직까지도 1천억 원, 1조 원 회사 못 만들었어?’는 아닐 것 같고 ‘아직도 못 나갔냐?’ 이게 제일 클 것 같아 가지고 회사가 좀 천천히 클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계속 궁금해하는 상태로 두는 게 더 리스크였던 거죠.


준비 중인 사업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미국) 전국에 깔린 피부과 브랜드 체인을 꿈꾸면서 가고 있어요. 저렴한 가격과 좋은 퀄리티의 시술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한테 제공하는, 대중을 타깃으로 한 피부과가 될 것 같아요. 한국에 사시는 분들은 이미 너무 잘 아시겠지만 보톡스 같은 게 굉장히 저렴하잖아요. 강남에 가면 거의 커피 한 잔 두 잔 값이면 (시술을) 받는 상황이란 말이죠. 그런데 여기는 여전히 커피 한 100잔 정도의 가격이다 보니까.. 저는 이게 한국인이기 때문에 하는 경험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톡스를 커피 한 잔 두 잔 값에 (시술) 받겠어요. 이 정도의 효율에 미쳐있는, 미용에 미쳐있는 나라가 별로 없고 그 두 가지가 결합됐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구매를 해주니까 사실 병원들도 싸게 제공을 할 유인이 생기고요. 전 국민적인 공동구매를 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저는 그걸 느낀 사람으로서 (미국에) 왔더니 너무 불편하고 이거는 지금 당장은 조금 시간이 걸릴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고 싶지 않은 욕구라는 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사라진 적이 없는 욕구이기 때문에 이걸 붙들고 가면 대박은 아닐지언정 쪽박칠 가능성은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탐색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찾아가는 보톡스 시술을 먼저 시도해보고 있어요.


명균님이 사업가이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업인 것 같아요. 미국에는 다양한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이민자들이 모여들고 ‘(그들이) 한국에서는 이런데, 중국에선 이런데, 인도에서는 이랬는데 여기는 라이프스타일이 다르네? 이거 수요가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을 내가 한번 메워보자’라는 아이디어로 이민자들이 성공시킨 사업이 굉장히 많은 곳이 미국이잖아요. 그게 또 미국의 힘이 되고요. 그런 창업가로서 미국 뉴욕을 바라보면서 느낀 점이 있나요?

제가 같이 사업을 준비하는 간호사님이 댁에서 서브렛(재임대)을 가끔씩 하셔서 하루 이틀 돈 내고 (거기서) 지냈는데 그 집이 롱아일랜드시티라고 맨해튼을 강을 끼고 건너편에 있어요. 한강 뷰 같은 느낌이 너무 예쁜 거예요. 밤에 불을 탁 끄면 유리창으로 그 뷰가 보여요. 너무 좋아서 앉아서 보는데 그 건물들의 높이와 화려함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욕심들이 이 땅을 거쳐 갔을까, 그게 없었다면 저렇게 높고 뾰족하고 화려하게.. 참 욕심 많은 도시인 것 같다. 정말 희망이 가득한 도시이기도 하지만 욕심에 욕심으로 만들어진 도시 같기도 하다. 이 두 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 것 같고. 모두에게 모든 게 열려있는 도시지만 자칫하면 그 욕망에 파멸로 갈 수도 있는 그런 도시 같다, 참 매력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많은 분들이 창업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스타트업을 진로로 생각하는 20대도 있고, 아니면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넥스트스텝으로 내 사업을 하고 싶은 30대, 40대도 있죠. 창업가로서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사업 혹은 창업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우리 세대는 한 회사에서 50년, 60년 일 해 가지고 정년퇴임하고 그걸로 은퇴하고 노후 즐기는 세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결국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지속한다는 건 꽤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업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하는 할 일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꼭 어떤 IT스타트업, 투자받으면서 시리즈 A, B, C 하는 것만 사업이 아니에요. 그건 정말 그 수많은 사업 중에 하나일 뿐이고 그런 형태를 띠는 독특한 어떤 구조일 뿐이고 결국 내가 나를 벌어서 먹일 수 있는 그런 일은 다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가치를 창출하는 무언가를 하는 건데 그 조직 안에 있을 때도 누군가가 짜놓은 판에서 하는 거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조금씩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고, 다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직장과 사업, 이게 0 아니면 1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직장을 다닌다 하더라도 작게라도 직접 자기 일을 만드는 경험들을 해보시면 오히려 직장에서도 더 성과가 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스타트업할 때 작게라도 창업을 해 본 친구들이 훨씬 조직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리더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이런 식으로 풀어주면 더 잘 풀릴 것 같은데 하는 제안들이 나왔거든요.

손명균대표인터뷰기사용사진.jpg 필자(왼쪽)와 인터뷰 중인 손명균 대표


굉장히 공감합니다. 저는 12년 동안 조직 생활을 했는데. 저도 새로운 걸 해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뭔가 이 새로운 팀을 만드는데 팀장을 맡으신 분이 너 이거 와서 이거 해볼래? 했을 때 ‘네’하고 가서 해봤던 것들이 저한테 굉장히 성장의 경험이 됐던 것 같아요

‘이게 잘 안되면 어떡하지?’에 대한 불안함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보통 잘 안될 것 이기 때문에.. 확률상 그런 거예요 원래. 원래 그런 거고 근데 잘 안 돼도 괜찮은 상태로 만들면 되는 거거든요. 저도 어쨌든 한국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저는 수능이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잘못 만들어왔다 생각해요. 제가 서울대 붙었을 때 저한테 가장 많이 물어보셨던 것 중에 하나가 ‘몇 개 틀렸어?’거든요. (누가 그렇게 물어봤나요?) 주변에 그냥 친구들이든 아니면 과외 후배든 엄마의 친구 분들이든.. 근데 그게 질문이 좀 이상하잖아요. 그 개념 자체가 다 맞아야 된다는 건데 세상에는 오히려 안 맞다 특히 이 정도로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는 더 그렇다고 봐요.

저 스스로도 창업하고 계속 물어봤던 게 ‘나 왜 자꾸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예요. 책도 읽으며 정답을 찾으려고 했죠. (경영) 구루가 써놓은 책이니까. 근데 (읽은 책이) 150권, 200권 넘어가니까 구루들끼리 말이 왜 이렇게 달라? 정답이 없어? 왜 쟤는 저게 맞다고 하고 쟤는 저게 맞다 하고. 근데 저렇게도 됐고 저렇게도 됐고 둘 다 어쨌든 성공한 거잖아요. 워런 버핏의 삶도 있고 머스크의 삶도 있어요, 잡스의 삶도 있고. 저들이 다 같은 게 절대 아니고. 그리고 그들이 무시할 정도의 성공이냐, 아니잖아요. 엄청난 성공들을 한 사람들인데 다 다르잖아요. 되게 다양한 종류의 정답과 정말 다양한 종류의 정답인 거죠. 어떻게 보면 정답이 아닌 거죠

그런 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면 좋겠어요. 그건 저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저는 사업하면서 계속 변한 것 같아요. ‘어차피 틀려, 근데 그러니까 그냥 빨리 틀려, 더 많이 틀려. 저렴하게 틀려’. 이걸 계속하다 보면 하나씩 걸리고 근데 사람들은 얻어걸린 것만 기억하고, 그게 성공이 되는 거죠.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도 ‘뭘 해야지 맞지? 뭘 해야지 나한테 최고고, 뭘 해야지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길이지?’ 이렇게 가버리면 정답의 문제 덫에 빠져서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그거 한다고 죽는 거 아니니까 그냥 일주일에 다섯 시간 딱 정해놓고 그 시간 동안만 해 보는 거예요. 그럼 일주일에 다섯 시간짜리 액션인 거잖아요. 프로젝트를 해보는 거죠. 다섯 시간 못 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이거는 일주일에 다섯 시간의 2주짜리 프로젝트야. 그렇게 사이즈를 정해놓고 시도를 해보고 안 됐어. 그럼 일주일에 다섯 시간, 2주 잃은 거죠.. 근데 과연 정말 그 시간이 쓸데없는 시간이 된 것이냐? 전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 포함 잘 교육받고 열심히 살아온 한국분들이 틀렸을 때의 리스크를 과대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걸 좀 더 예상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 놓고 계속 테이크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다섯 시간 며칠짜리 리스크가 좀 더 가볼까? 되는 게 있는데? 생각보다 재밌는데? 그럼 리스크가 아닌 게 되잖아요. ‘좀 더 가볼까?’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변하는 거지 ‘하루아침에 깨달았어 사업할 거야’ 전 그러다가 진짜 망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사실 창업이라는 것은 리스크가 있는 영역이 있잖아요. 그래서 두려움도 느껴졌던 수 있을 것 같은데 명균님은 그런 두려움이 없으셨나요?

없었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일 것 같고 두려움은 이제 어떻게 관리할 거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어떤 길을 택하든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까 하는 불안함 이런 것들은 무조건 있을 거잖아요.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서로에 대한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곳일수록 '내가 혹시 잘못된 길을 택하지는 않았을까?' 두려움이 만연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 두려움이라는 건 디폴트로 있는 거고 그걸 어떻게 관리할 거냐 이게 저한테는 조금 더 중요한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중 하나가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어떻게 하면 잃을 게 없는 상태를 만들지?’ 그게 저한테는 중요한 거였고 그 과정이 나한테 의미가 있으면 결과가 안 나와도 잃을 게 없잖아요.

그래서 (창업에 합류하기로 한) 당시의 결정을 돌아보면 진짜 3, 4개월 동안 앱 만들고, 아무것도 돈이 안 벌렸다고 쳐봐요. 그래도 저는 누가 돈을 넣기 때문에 내가 3, 4개월 안에 얼굴 모르는 고객이 쓰는 앱을 만들어야 돼요. 사실 앱은 한 번도 안 만들어 봤었거든요. 홈페이지 만든 게 다였지. 어떻게든 이거를 만들게 할 것 같은 거예요. 근데 그럼 저는 3, 4개월 뒤에 사람들이 쓰는 앱을 만든 사람이 되잖아요 그 경험이 쌓이는 거죠. 저한테 그거는 돈을 못 벌어도 너무 이득인 상황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잘돼, 그러면 당연히 좋고요. 그래서 이게 안 풀렸을 때에도 나한테 이게 좋은 일이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 서울역에서 노숙까지 해봤다 얘기를 들었습니다

좀 민망하지만 얘기를 하자면 두려움을 관리하는 게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실제로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잃어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상황을 구축하는 게 하나가 있고, 하나는 그냥 내 기대치를 관리하는 것, 내 기대치를 낮추거나 높이거나. 양쪽을 다 봐야 된다고 보지만 노숙은 이 후자 쪽(기대치를 낮추는 것)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갑자기 노숙을 해야겠다가 된 건 아니고 킥보드업이 연매출 200억을 보고 있던 2021년에 아직도 기억나요. 2021년 5월 13일에 규제가 시행되면서 면허가 없으면 킥보드를 타면 안 된다, 그리고 헬멧을 쓰지 않으면 타면 안 되는 게 시행되면서 저희는 면허가 없는 분들은 면허를 등록하게 하고 타도록 앱을 바꿔서 업데이트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 전날 일 매출이 8천만 원이었는데 하루 만에 2천600만 원으로 떨어진 거예요. 저희 고객분들 중에 면허를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10조까지 갈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캡이 씌워졌고 더 큰 시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신사업을 시작을 했는데 그 과정이 불안한 거예요.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정말 정말 강했어요. 내가 이거를 뚫어내지 못하면 우리 회사 좀비 회사 된다. 지금 이렇게 하나하나 모아놓은 뛰어난 사람들 딴 데서 다 스카우트 제의 오는데도 안 가고 남아서 우리 일을 해주려고 하는데 이거를 못 찾아내면 그건 안 된다 싶었죠. 그래서 출근을 할 때 막 한숨이 푹푹 나오고 일어나고 싶지 않고.. 그리고 가장 싫었던 건 팀원들이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할 때 같이 가기가 싫은 거예요. 나는 너무 간절한데 여기서 (식당이 있는) 코엑스까지는 10분 조금 가는데, 가는 데 떠들고, 가서도 기다렸다가 먹을 거고, 식비도 1인당 1만 5천 원 정도 나올 거고.. 저희는 그때 식비가 완전 무제한이었어요. 그리고 주말 끝났으니까 주말에 뭐 했어 이런 얘기할 건데 저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가 싫은 거예요. 그렇게 1, 2주 정도를 같이 밥을 안 먹다가 이건 동료들의 문제가 아닌 것 같고 내 문제고 내가 뭔가에 잡아 먹힌 것 같다, 불안함이라는 거에.

그래서 뭔가 뭐라도 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내가 지금 뭐가 뭐가 두렵길래 이런 거냐’ 고민을 했죠.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됐는데도 이런 거 같으니까 어디까지 이걸 내려놓을 수 있는지, 내가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를 보고, 직접 그걸 두 눈으로 보고 느낀 다음에 그게 괜찮으면 좀 괜찮아지겠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옷은 그때부터 이미 맨날 똑같은 거 입고 다녀서 상관이 없었고 먹는 건 원래 관심이 없고요. 집은 제가 없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 집에서 원래 한 달 정도를 머물기로 약속을 했었어요 그런데 옮기기로 한 시간의 일주일쯤 전에 연락이 온 거죠. 여자친구가 생겨서 안될 것 같다고요. 어이없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난 지금 제정신이 아닌데. 그래서 그것 때문에 제가 하기로 한 계획을 끊고 싶지 않았고 여전히 답답했기 때문에 이미 일주일 휴가를 내놓은 만큼 홧김에 노숙을 하러 가보자 이렇게 된 거죠.

(말이 길어졌는데) 이렇게 길게 얘기 안 하면 미친놈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여전히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그 당시에는 좀 미쳐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그런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좀 극적인 장치가 저한테 필요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때 한 일주일 정도를 잡고 서울역이랑 광화문으로 향했어요. 옷 조금이랑 간단하게 씻을 수 있는 세면도구 그리고 수건만 가지고. 6월이었으니까 별로 안 추울 테니까 그러고 챙겨서 가게 된 거죠. 근데 원래 한 일주일 생각했던 게 만 3일을 채우지 못하고 한 70시간 정도 있다가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깨달은 건 ‘집은 있어야 되겠다’, ‘내가 여기까지 포기하면 안 되겠구나’ 굳이 해봐야 아나 싶긴 한데.. 잠이 보장이 안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너무 많이 느꼈고 나름대로 긴 바지에 후드에 셔츠까지 입고 갔는데 너무 춥고, 왜 노숙자 분들이 그렇게 술을 그렇게 드시는지 이해가 되고 머리도 안 돌아가고 몸도 안 좋아지고.

그때 못해도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곳으로 가야 된다라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계산해 보니까 신림동에 있는 고시원 이런데 가면 한 5,60만 원 정도는 거주비로 생각을 해야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아무거나 먹을 수는 있지만 영양소는 챙겨 되니까 하루 식비 한 2만 원 정도? 한 120만 원 정도는 월에 내가 벌어야 유지가 된다 깔끔하게 계산해 가지고 생각을 하니까 내가 120만 원을 못 버는 상황만 안 되면 그래도 계속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계산이 좀 됐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다시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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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표가 노숙하며 바라본 밤하늘(좌)과 당시 깔고 누웠던 박스(우). 손 대표 제공 사진.


명균님께서 책을 많이 읽으며 계속 공부하고 또 현실에 적용을 해보며 성장하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명균님이 읽었던 책 중에 이거 한 번 읽어보시라 하고 추천해 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코스모스요. 그걸 안 읽고 죽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원래 책을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고 사업을 하다 보니까 너무 아는 게 없어서 안 읽으면 안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읽고 읽고 읽고 읽고 그렇게 계속 읽다 보니까 그냥 이제는 당연히 읽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된 것 같은데 근데 이 책은 그래서 저는 책을 좋아하니 책 당연히 읽어야 되니까 읽으세요가 아니고 정말 이거는 읽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책을 싫어하셔도 읽으셨으면 좋겠다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있어요 근데 책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여도 좋아요

너무 잘 나와있는 게 많으니까. 그 이유가 이 책은 결국 지금까지 인간이 밝혀온 우주의 과학적 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정말 큰 스케일 우주의 역사부터 지구의 역사, 이런 큰 스케일부터 가장 작은 원자가 무엇이고 전자가 무엇이고 이런 걸 다 아우르고 있는 그런 책인데 그걸 읽다 보면 내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를 아주 간접적으로 느끼게 돼요. 그래서 더 너무 경이롭고 약간 그래서 더 잃을 게 없고 그래서 그냥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느낌을 주거든요. 자유로움을 저한테 아주 과학적인 방식으로 알려줍니다. 제 가치체계 중에 일 번이 자유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거를 계속 용기를 내고 추구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에요.


손명균 대표와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싶으시다면

1부

https://youtu.be/1c8k2aVzptE?si=armZkaNlGeO0B9oO

2부

https://youtu.be/aekF8tFSxY8?si=Ez4zSLMi43C7AB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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