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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Nov 17. 2015

뫼르소, 이방인이 되는 과정

알베르 카뮈, 이방인을 맘대로 꼬아보기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조의를 표함’이라는 양로원의 전보가 전부라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날 두고 비정한 자식이라 말한다. 사망 소식을 듣고도 별 동요 없는 내 얼굴이 그 반응에 불씨를 더했다. 그들은 내가 오열이라도 하길 바랬나 보다. 물론 모든 죽음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죽음에 있어 슬픔은, 그 정도가 다르다.


엄마와 내가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모성애란 건 어렸을 때 아스라이 느꼈을 뿐이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는 전보를 통해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노쇠한 엄마가 양로원으로 거처를 옮겼을 땐 자식 된 의무감에 곧잘 찾아뵙곤 했다. 하지만 거리가 만만치 않고 다음날 출근도 해야하는터라 점차 빈도를 줄여갔다. 가족과 일을 동시에 신경 쓰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번 양로원으로 향하는 버스에선 출근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녀 불편할 따름이었다.


Nice, France


장례식을 위해 나선 오늘은 달랐다. 오히려 이번 일을 이유로 얻은 며칠간의 휴가 때문에 마음이 편했다. 오후 두 시쯤 도착한 양로원에서 관리인은 내게 엄마의 얼굴을 보겠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엄마라 해도 죽은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꺼려지는 일이고 이것저것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내일을 맞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호한 내 대답에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 한숨을 쉬곤 금세 문 뒤로 사라졌다. 분명 저 사람도 날 불효자라 여길 테다.


난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마땅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란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픔이나 추억 따위의, 자질구레한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날 길러준 엄마를 위해 난 가끔이나마 병실을 찾았고 안부를 물었으며 매달 돈을 부쳐주었다. 내 몫은 거기까지라 생각했다. 가끔의 술자리에서 날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타인에겐 지독하리만치 가혹하면서도 스스로에겐 관대하기 때문이다. 집에 술이 없다고 노모를 죽일 듯이 팬 녀석도 날 더러 패륜아라 불렀다.


그걸 깨달은 후론 모든 게 성가시게 느껴졌다. 하루하루의 의무와 욕구만이 날 움직이게 하는 기제였다. 그렇다고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시니컬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사는 친분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칭찬했고, 여성들은 언제나 옅은 미소만을 보이는 내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피곤한 듯이 당신을 마주한 나를 보며 눈길을 돌렸다. 양로원에 남겨져 홀로 된 제자신이 비참하고 무정한 아들이 미워서였을까. 결국 엄마는 날 찾지 않은 채 죽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사귄 친구가 마지막을 함께했으니 외롭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나는 여전히 담담하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죽음을 예상 못했다는 게 아니다. 머리가 빠질 만큼 늙었고 기력도 없기에 곧 돌아가시겠거니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다. 아까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눈감은 그녀를 본다면 꾸역꾸역 솟아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할 것만 같았다. 차가워진 그 몸을 만진다면 저 멀리 묻어뒀던 슬픔이 날 뒤덮을게 두려웠다.


때문에 엄마의 죽음 앞에선 난 그저 피곤할 따름이다. 지리한 장례식이 얼른 끝나길. 시간이 지나 엄마가 잊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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