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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Dec 03. 2015

2013년의 종합학원

어른 흉내를 내는 스물셋에게도 돈 벌 기회는 온다

예전에 잠시 학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중학생 영어수업을 보조하는 일이었다.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렸지만 업무의 대부분은 잡무에 가까웠다. 출근하면 책상 위에 놓인 문제집을 복사하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자료의 PDF 파일을 요구했다. 제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모든 요구에 "네!"라고 답했는데, 선생님들은 그 점을 맘에 들어하셨다. 높았던 토익 성적도 그들의 칭찬에  한몫을 했다.


실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내 성적을 불려 말씀하셨다. 그래야 애들이 말을 듣기 때문이란다. 날 신경 쓰지 않던 학생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질문에 답을 하고, 숙제를 봐주고, 다른 선생님들의 일을  대신해주면서 할 일은 점차 버거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위치도 애매해졌다. 학교로 따지자면 선생님과 조교 두 곳에 애매하게 다리를 걸치고 있는 꼴이었다. 하지만 알량한 자부심 같은 게 밑에서 날 떠받들었다. 몸이 아니라 머리를 파는 내가 남들보다 나아 보였다.


하루는 A반 영어 선생님이 본인 수업을 참관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의아했다.


"갑자기 왜..?"
"쌤 여기서 좀 시간 가지면서 영어선생 일 하는 게 어때요? 적어도 200씩은 벌어."
"하하,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서요.."
"그럼 와서 그냥 앉아있다가요. 그냥 보기만 해요."
"네."


엄마 아빠의 간섭이 싫어 매번 툴툴대면서도 경제적으론 자립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울 시기였다. 그래서 돈 얘기는 쉽게 맘을 흔들었다. 스물셋에겐 큰 액수였다. 더군다나 대학 졸업해도 월 200은 힘들것만 같았기에 선생님을 먼저 보내고 5분쯤 뒤에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쌤!"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학선생님이었다. 인물이 훤칠한데다 재밌어서 인기가 많은  그분은 나와도 얘기를 많이 나누는 축에 속했다.


"슬쩍 들었는데 돈 때문에 혹해서 발 들이지 마요. 제가 딱 그 케이스거든요."
"아.. 네."
"저도 후회하는데 돈 좋아서 발 못 빼잖아요."


돈이 좋아 후회하는 일을 계속한다. 결국 돈이 이긴 거네. 내 머리는 수학선생님의 말을 이렇게 정리했다.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 구태의연한 어구지만 사실인걸 어쩌나. 돈 때문에 난 그의 말을 곡해했고, 제안에 혹했다. 하루 종일 그 생각에 머리를 싸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샀다. 멀쩡히 있으면 짜증이 더 할게 분명했다.


취기가 오르니 수학선생님의 말이 맴돌았다. '후회하는데'. 인생의 첫 직장이 후회로 점철되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게다가 학원 선생이 된다면  그때의 결정을 주야장천 옹호하며 살아갈 내가 생각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자연스레 돈 생각도 옅어졌다. 다음날 실장 선생님께 조만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이유를 캐물으며 주말만이라도 나와서 일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하지만 계속 일한다면 꼼짝없이 진짜 '쌤'이 될 것 같아 가족을 핑계로 댔다. 


2년이 지난 아직 내 직업 선택의 준거에 돈은 없다. 밀린 관리비를 한 번에 내야 하거나 3차로 향할 술값이 부족한 순간엔 가끔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다만 아직까진 괜찮다. 하지만 계속 맘에 걸리는 건 10대를 벗어난 내 삶에 시나브로 때가 묻었듯, 어느새 내 가치의 부등호도 돈을 향해 입을 벌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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