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의 주식 시장이 심란하게 느껴질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상황을 뚫고 기록적으로 상승한 주식 시장이 최근에는 주춤하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춤하는 정도가 아니라 여차하면 크게 하락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마저 주는 요즘이다. 코스피 지수 3,000이라는 숫자는 기본인 줄 알았는데 2,900이라는 숫자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장이 좋지 않은 것일까?
전의 글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주식 시장은 장차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야 오를 수 있다. 주식이 하락하거나 상승하지도 않고 하락하지도 않는 보합 국면이라는 것은 오를 것을 기대하고 사려는 사람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의 주식 시장 모습이 그런 셈이다. 작년만 해도 꽤나 올랐는데 올해는 왜 그럴까? 코로나19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고 완전하지는 않아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들이 나타나는 데도 말이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주요하게 꼽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테이퍼링 이다. 테이퍼링? 지금 미 연준은 코로나 위기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풀고 있다. 미 연준이 돈을 푸는 방식은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무지막지하게 사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양적완화'다. 이러한 양적완화를 중단하는 것이 테이퍼링이다.
사실 테이퍼링의 시작은 진작부터 이야기되었었다. 여름 정도부터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니 시중에 유동성을 푸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혹은 멈출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꽤나 자주 흘러나왔다. 최근 공개된 미 연준의 의사록만 보아도 올해 테이퍼링이 시작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인듯하다.
테이퍼링이 시작된다는 것은 금리가 장차 오를 것이라는 신호와도 같다. 통상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은 기준금리나 지급준비율 조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데 이 중 가장 강력한 것은 기준금리 조정이다. 돈의 가격을 의미하는 금리를 사실상 결정하는 기준금리의 조정을 통해 중앙은행은 시중의 통화량을 관리하고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양적완화는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기준금리를 제로로 만들었는데도 원하는 정책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시작된 정책이 양적완화다. 금리를 낮추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중앙은행이 대놓고(?)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는 것이 양적완화인 셈이다. 그리고 테이퍼링은 그러한 양적완화 정책을 끝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극히 단순하고 직관적인 논리로 시중의 유동성을 줄이려는 정책이 시작되면 주식 시장에 사람들의 태도는 공격적이기보다는 수비적으로 되기 쉽다. 전보다 돈의 가격이 비싸지면 리스크가 큰 주식 시장에 투자하지 않아도 예전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고, 무엇보다 유동성 회수는 경기를 가라앉힐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테이퍼링은 유동성 회수를 시작하겠다는 신호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준금리 인상과 같은 유동성 회수와 동의어는 아니다. 유동성을 풀지 않겠다는 것이지 유동성을 회수하겠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 전망을 먹고사는 주식 시장에 유동성 회수를 위한 사전 작업의 시작은 유동성 회수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외국인을 포함한 기관 투자자들은 그에 관련해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이미 어느 정도 조정해두었을 것이다.
위의 그래프는 2009년 이후 외국인의 국내 상장주식 보유액과 비중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파랗게 질렸던, 2020년 3월 약 450조 원 정도로 떨어졌던 외국인의 보유액은 2021년 8월 기준 약 800조 원 정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이보다는 조금 더 떨어져 있거나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관련해 살펴볼 만한 포인트는 외국인이 전체 상장 주식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다. 2009년 이후 그 비중은 30%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35% 가까이 갔던 비중은 최근에 계속 하락해 현재는 20% 후반 정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의 주식 보유금액은 늘어났는데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중이 줄어도 주식 보유금액이 상승했다는 것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올랐다는 것이다. 맞다. 작년 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주식은 많이 올랐다. 그런데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것도 올해 초부터 비중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같은 기간 보유 금액은 오히려 늘어났지만). 만약 주식시장이 더 폭발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면 비중도 늘었을 텐데 그렇지는 않다. 사실 외국인은 올해 초부터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테이퍼링에 대한 이야기가 올초부터 언급되면서 이미 외국인은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외국인의 순매수 데이터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관련해 최근 외국인의 순매수는 더 줄어들지는 않는 느낌이다. 덕분에 지수는 지금처럼 횡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 왔다 갔다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냥 필자의 느낌에는 2,800~3,100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2,800이 무너졌을 때는 어떤 양상이 나타날지는 모르겠다. 외국인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 같은데 한동안 주식시장을 떠받쳐온 개인 투자자들이 해당 지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는 잘 모르겠다. 특별한 거시 변수의 변화가 없다면 2,800이 무너졌을 때 확인할 수 있는 주식시장의 모습이 그 이후 주식시장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테이퍼링이라는 변수는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주식은 여름 정도에 보여주었던 완만한 상승 대신 완만한 하락 내지 보합하는 국면을 보이고 있다. 테이퍼링에 대한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조정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지 모르지만 다른 주체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개인 투자자는 더욱 그럴 수 있다. 테이퍼링이라는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변수의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는 이미 끝났을지 모르지만, 마구 올라버린 주식시장에는 누군가는 이미 경고했던 것처럼 떨어질 핑계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테이퍼링은 그러한 핑곗거리가 되기 좋은 이벤트다. 게다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유가 상승을 비롯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망 이슈에 기반한 인플레이션까지. 내려갈 일이 많다는 인식이 있는 상태에서 주식 시장이 오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테이퍼링의 영향력은 끝난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인플레이션 이슈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이슈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한동안 지속된다면 테이퍼링은 더욱 큰 폭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기준 금리 인상 또한 예상보다 일찍 일어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테이퍼링이라는 이벤트의 주식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아직 유효하다.
11월에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테이퍼링이 미 연준의 의사록대로 월에 150억 달러 씩 줄여나가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모르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테이퍼링의 속도와 폭이 확대된다면 아마 주식 시장은 한 번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플레이션 이슈는 내년 봄이 되어야 진짜 인플레이션 조짐이 있는 것인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생각한다. 즉 그전까지 테이퍼링 또한 지금 정도 수준에서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상과 전망은 그저 추측과 예언에 불과하다. 앞날에 일어날 일들의 대부분은 가늠이 되지만 가늠이 되지 않는 작은 몇 가지 일이 세상의 양상을 바꾸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테이퍼링이 주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계속해서 주시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실제 인플레이션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연준을 민감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한 민감성이 높아진다면 지금 나온 테이퍼링 계획보다 크고 빠른 테이퍼링 진행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1월에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빠르면 내년 1~2월 정도에 최초 계획을 수정하는 형태로 말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해당 시점에 주가가 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아직은 단정하기 어렵다. 좀 생뚱맞은 언급이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 발생과 상관없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강해지면 그 믿음에 반대하는 정책을 미 연준이 펼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