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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Mar 07. 2022

포르투, 2019

그리고 좀 이상한 여행의 이유

도시 살이 하는 보통의 성인에게 가장 자주 쓰는 앱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탑 3안에는 네이버 혹은 카카오 맵이 들어간다. 내비게이션과 다양한 길 찾기 맵의 가호를 받는 현대인은 ‘마지막으로 길을 잃어본 게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물어볼 일도, 질문을 받는 일도 희귀한 경험이 됐다.


손 끝으로 몇 번 두드리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LP 판을 찾는 것처럼 길 잃기의 경험도 이젠 사치의 영역에 속한다. 길을 꼭 잃고 말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가지고 스마트폰을 치워버리거나 애써 못 본 척해야만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 경험. 나는 팬데믹 바로 직전의 2019년 9월 포르투에서 이 호사를 원 없이 누려봤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읽고 영감을 받아 계획한 여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종이지도를 피고는 눈대중으로 오늘은 여기서 저기까지 둘러보면 되겠다, 하고 길을 나섰다. 심카드를 빼서 숙소에 두고 나갔다. 사진을 찍거나 소리를 녹음하는 것 제외하면 현재 위치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일절 도움을 거절한 1주일. 여행을 다녀와 ‘그래서 뭐가 좋았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그 책 속의 한 문장처럼 끝없는 현재에 머물러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처음 보는 골목, 예상치 못한 발견에 기뻐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렇게 여행 자체가 목적지가 된 (Journey is the destination) 경험을 예찬하는 글을 종종 본다. 이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이따금씩 내비게이션을 멀리 해야 한다고 그 글들은 말한다. (언젠간 의도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길을 찾아 인도해주는 내비게이션 기능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달 여행차 찾은 낯선 도시에서 스마트폰 배터리가 0%가 되어 발을 동동 구른 경험을 한 후 나는 여기에 내 생각을 하나 얹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길 잃음의 경험은 ‘자유의 감각’과 닿아 있다. 내비게이션은 교통상황의 변수까지 고려해 분단위로 경로를 제안해준다. 그 과정을 나 스스로의 판단이 아닌 스마트폰에게 맘 편하게 일임하고 누릴 수 있는 편안함. 그 속에서 우린 오로지 목표의 달성을 위해 변수나 오류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게 되는, 말하자면 ‘최적화의 함정’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포르투에서 맘껏 길을 잃으며 내가 느낀 즐거움이 단지 예상치 못한 상황과의 만남뿐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즐거움은 세렌디피티보단 해방감에 기인하고 있었다. 정해진 목적지와 약속시간의 부재 속에서 어느 길로 가도 결국 모든 길은 이어진다는 사실. 쭈뼛쭈뼛하던 나의 발걸음은 조금씩 대담해지고, ‘별 일 있겠어?’ 하며 낯선 골목으로도 거침없이 향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나는 결국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행지가 허락한 일시적인 상황이란 걸 알면서도 내면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무언가를 느끼며 계속 걸음을 이어간다.


이런 여행의 경험은 실제 생활의 감각과도 밀접하게 닿아 있다. 최적화에 대한 강박은 나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있다. 선택은 한 번뿐이라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 길을 잘못 들면 다신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강박. 그래서 여행지에서 몸으로 체득한 생생한 길 잃음의 감각은 ‘가끔은 내 의지를 맘껏 따라가도 내 삶은 생각보단 괜찮을 거라는’ 어떤 믿음 같은 걸 심어준다. 가장 깊숙한 층위에서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자유의 감각이 아닐까.


올 한 해는 매달 최소 한 번씩 서울 밖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이 도시에 가면 꼭 가봐야 한다는 맛집들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나는 매달 내게 주어진 2박 3일을 맘껏 길 잃는 데에 사용해볼까 한다. 맘 내키는 대로 걸어가도 생각보다 여행은 괜찮고, 일상으로 돌아온 내 삶도 아마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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