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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Mar 09. 2022

국적, 상실, 신고서

대한민국 국민이 국적을 바꾸기 위해 대사관에 제출해야 하는 문서의 공식 명칭은 '국적 상실 신고서'다. 이 단어들의 조합 속 아이러니를 한번 곱씹어보시길. 국적, 상실, 신고서.


상실을 신고하라니..! 분명 내가 내 의지로 대사관까지 걸어가서, 문서를 작성해 내 손으로 제출하는데 나는 국적을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실과 포기 사이에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큰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포기가 의지를 수반하는 자발적인 행동이라면, 상실은 수동적이다. 어떤 외력의 개입을 암시한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상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그 단어를 선행하는 단어가 '국적'이라니 나의 마음은 더욱 서글퍼진다. 말 그대로 나라 잃은 사람이 된 기분. 2015년 봄, 베를린 한국 대사관 문을 열고 나오던 내 기분이 딱 그러했다. 나는 이 단어가 주는 아이러니를 단물이 빠지도록 곱씹었다. 왜 하필 이 문서는 이런 이름인가. 국가 공식문서를 허투루 지었을 리는 없고 분명 여기엔 어떤 의도, 선언이 숨어있다.


말하자면 그날 국가는 내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너는 자발적으로 나라를 버린 놈이야. 그러니 우린 너에게 포기할 권리 같은 걸 줄 수 없다고, '우리'가 '네게서' 대한민국 시민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와 그간의 너의 역사 모두를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날 날씨가 지나치게 맑았고 나는 민족의 배신자라도 된 비통한 심정으로 쿠담(Kudamm) 거리를 투벅투벅 걸었다.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닌데 여전히 한국인이었다. 겨우 서류상의 차이일 뿐인데. 어딜 가도 이방인 같다는 내 자조 섞인 고백은 이날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여담이지만 1년 후 운명의 장난처럼 나는 상실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내 컨트롤을 벗어난 정치적 상황에 휘말려 유럽 시민권을 빼앗기고 그냥 영국 시민이 되어버린 것..�)


만약 국가의 의도가 정말 저런 것이었다면 그날 이후 일종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나의 삶은 그들이 성공했단 증거일 것이다. 재외동포로서 누리는 혜택 사실 별거 아니라고, 대출도 잘 못 받는다고 애써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낄 때. 군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왠지 모르게 위축될 때, 나는 내가 거리낌 없이 칸막이 너머로 쓱 내민 국적상실신고서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 책 #빛속으로 를 읽으면서 김사량의 삶을 깊이 생각했다. 친일/월북으로 몰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 청년. 나에겐 생소한 작가였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친일이나 항쟁 같은 프레임을 떠나 온전히 격동의 시대를 온 힘 다해 살아간 날카로운 정신의 소유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의 서울과 도쿄, 만주의 모습을 생생히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덤.


요즘 무슨 책을 읽어도 결국 '정체성'이란 주제로 생각이 가 닿는다. 해당 주제에 관심이 생겨 찾다 발견한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박홍 의 #마이너필링스 - 원서로 읽고 싶어 킨들로 샀는데 왠지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것 또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번역본도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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