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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백수 Dec 10. 2020

고양이와 함께 사는 세상

<경북매일> 연재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고양이와 함께 사는 세상


 아침 최저기온이 어느 새 0도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겨울이 온 것이다. 겨울은 누군가에게는 첫눈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신년의 설렘을 가득 담은 즐거운 계절일 수 있겠으나 우리 주변의 어떤 이웃들에게는 가혹한 계절일 수 있다. 전국적으로 100만 정도가 살고 있다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겨우내 기갈과 추위와 싸워야 할 이 이웃들의 이름은 바로 길고양이이다. 길고양이는 집고양이와 대비되는 말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길고양이가 애초에 집고양이였거나 그들의 번식을 통해 태어난 고양이들임을 감안한다면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단지 현재 그들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일 뿐이다.


 길고양이들을 일컫는 말로 ‘도둑고양이’가 있었으나 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 씌워진 말이므로 이제는 권장되지 않는다. 사실 도둑고양이라는 말도 도둑질이라는 범죄와 관련된 말이 아니라 조심조심 움직이며 사람들의 시야를 피해가는 모습에서 유래된 것일 텐데,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의 영역을 거의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길고양이가 인간에게 주는 피해는 아주 자잘하다. 먹이를 찾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찢어놓고, 발정기에 다소 신경쓰일 만 한 울음소리를 내는 정도. 그마저도 적절한 먹이주기와 중성화수술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도 않고 보행로를 배설물로 더럽히지도 않는다. 도둑이라는 별명을 붙이기에는 그들은 너무 무고하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 ‘길고양이K’는 이름 없이 살다 가는 길고양이들의 생태를 집중 조명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양이들은 다른 나라의 고양이들에 비해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심하다고 한다. 인간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더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길고양이 학대사건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져왔다. 사제 총으로 쇠못을 발사해 고양이들을 사냥한 사건이나 쥐약이 든 먹이로 고양이를 학살한 사건은 실로 충격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꼭 그 정도 수준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가하는 고양이들에 대한 위협과, 부정적인 인식들은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길고양이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길고양이들은 수명이 15년에 이르는 집고양이와 달리 평균적으로 3-4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가 성체까지 자랄 확률은 불과 30% 정도라고 한다.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스럽게 길고양이의 개체수가 조정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2008년부터 서울시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시행중이다. 길고양이들을 포획하고 중성화 수술을 마친 뒤 다시 거리로 돌려보내는 사업이다. 2017년까지 약 6만5천여 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25만 마리였던 서울의 길고양이들은 13만 9천 마리 정도로 급격히 감소했다. 굳이 나서서 고양이들을 내쫓으려 애쓰지 않아도 고양이의 개체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가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양이를 사지 않는 일이다. 도시의 많은 길고양이들은 반려동물로서 키워지다가 주인의 책임감 부족으로 방사되어 야생화 된 경우들과 그들이 번식한 경우들이다. 섣부르게 고양이를 들일 것이 아니라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갖고 여러 변수들을 고려한 다음 반려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유기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고양이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반려묘를 맞이하는 과정에서는 가급적 구매의 방법보다는 입양의 방법을 선택할 것을 권장한다. 품종묘를 구매하는 일은 품종묘의 무분별한 생산을 부추기는 일이 된다. 반면 길고양이를 입양하는 것은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이는 일이니 길고양이로 인한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게도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된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입양되는 과정을 알리기 위해 나와 나의 고양이가 만나게 된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내 반려묘의 이름은 ‘삼봉이’. 좋아하는 대하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삼봉 정도전 선생의 호에서 이름을 땄다. 재작년 이맘때쯤부터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사실 고양이를 집에 들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보다도 1년 전 정도였다. 꿈 속에서 귀여운 고양이를 만나고 처음 고양이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날, 나는 그 날부터 1년을 고민의 기간으로 정했다. 한 번 고양이를 들이면 적어도 10년은 함께 지낼 텐데, 10년간의 책임감을 위해서 그 정도의 고민 기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년이 지나서도 고양이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 고양이를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고민의 기간 동안 나는 유튜브를 통해 ‘고양이를 기르면 안 좋은 점’, ‘당신이 고양이를 키우면 안되는 이유’와 같은 영상들을 찾아보며 반려묘와 함께 지내며 겪게 될 어려운 점들을 학습했다. 


 1년의 고민 기간을 채우고서야 나는 입양할 고양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기견 유기묘 입양 어플인 ‘포인핸드’를 통해서 수많은 고양이 사진을 찾아보다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동물 보호 단체인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이라는 단체에서 구조하여 한 회원이 임시 보호를 하고 있던 아이였다. 서울에 있는 폐장된 놀이공원인 ‘용마랜드’에서 구조되어 ‘용마’라 이름 붙여진 아이였다. 내가 꿈에서 만난 녀석과 비슷하게 생긴 치즈 빛깔 녀석을 입양하기 위해 신청서를 적었다. 입양 신청서에는 입양 올 동물이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과 음식, 의료적 뒷받침을 제공할 수 있는지, 또는 동물을 악용하거나 유기할 사람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한 문항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마지막 절차로 보호 단체의 운영진이 우리 집에 방문해 고양이가 자랄 환경을 체크한 뒤, 고양이의 중성화를 위한 보증금을 납부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용마랜드에 살던 길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 집 고양이 삼봉이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값비싼 돈을 주고 품종묘를 사는 대신, 품종묘 못지 않게 예쁘고, 오히려 품종묘보다 건강한 유기묘를 입양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길고양이 문제는 빠르게 해소될 것이다.


 유기묘의 구조와 입양에 힘쓰는 분들에게 경제적 후원을 하는 것도 길고양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를 위한 비영리 단체들이 아주 많이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길고양이들을 조금 너그럽고 친절한 태도로 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길 가는 고양이를 위협한다거나 먹이를 얻어먹으러 오는 고양이를 학대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것. 추운 날 혹시 자동차 밑이나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고양이를 위해 보닛을 몇 번 두드려주는 친절, 허기지고 목마른 고양이에게 길고양이 급식소를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에 사용되는 노력을 아깝다고 여기지 않는 마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주인이 우리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길고양이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 겨울은 그런 것들이 필요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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