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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은 생겼지만

북카페 대책회의 창업기

by 수필버거

폰알림이 울렸다.

잔금날이다.

자다 깬 눈으로 폰을 슬쩍 보고 이불을 끌어 덮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림이 또 울린다. 이중 삼중으로 설정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폰 화면을 쓸어내려 11월 28일 날짜를 확인하는데, 카톡 알림도 떠있는 게 보인다. 목공방 동생이다. 전화 달라는 내용. 이른 아침부터 웬일일까 생각과 예감 같은 불안이 동시에 일었다. 신호 한 번에 바로 받는다. 뭔 일 있냐는 말에 머뭇거리며 손등뼈에 금이 가서 깁스를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뒤통수가 서늘하다.

오른? 왼?

오른손이요.

아... 일단, 알았다. 뭐.. 우째 되겠지.

큰일 났다는 말은 속으로만 했다.


보증금과 권리금 잔금을 송금하기로 한 날이다. 중개인은 냉난방기 작동 확인 했다는 톡을 보내왔다. 앞 세입자는 카톡으로 정리된 공간 사진을 보내며 키를 놔둔 위치를 알려주었다. 송금 완료. 한창 작업 중인 11월 납품 물량을 계산하고 12월 3일에 입고하겠다고 통지했다. 발주가 늦어서 미안하다는 내용과 3일까지는 꼭 부탁한다는 답이 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도 걸러가며 작업해서 포장실에 넘기고 공방 동생과 함께 김광석 길로 향했다. 벽체를 덮고 있는 합판 벽을 철거하는 작업이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동생은 장비 작동법을 열심히 알려준다. 벽을 30cm 단위로 잘게 잘라서 뜯어내는 일이다. 익숙지 않은 장비, 빠르게 진동하는 톱날. 요령 없이 힘으로만 하면 톱날이 날아가 얼굴이나 몸이 크게 다칠 위험이 있단다. 천천히, 천천히. 힘을 빼야지 생각해도 낯선 장비를 다루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땀이 나기 시작한다. 사방으로 날리는 나무 가루. 이사 할 때, 묵은 먼지로 인해 생겼다가 약 먹고 조금 잠잠하던 인후염이 도진다. 연신 기침을 해대며 끙끙 낑낑 자르고 뜯고 못 뽑는 일을 반복했다. 4시간 걸려 겨우 벽체 하나 뜯어냈다. 합판으로 막혀있던 벽과 기둥 사이 빈 공간이 보이니 속이 뻥 뚫린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해거름 창밖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힘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철거도 철거지만, 책장과 가구 제작은 또 어쩌나. 동생 깁스는 이달 말이나 돼야 푼단다. 금이 크게 갔는지 반깁스 사이로 부어오른 손등이 보인다. 엄지 검지 사용만 가능하다는데, 그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각종 도구 사용법을 배워가며 지시를 받아서 내가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애초 계획은 12월 15일 개업이다.

되겠나?

글쎄요...

의자는 구매하기로 하고, 동생은 서가와 테이블 설계를 최대한 단순하게 해 보겠다고 했다. 마치 의도한 심플함처럼.

거, 참. 말이 쉽지. 그쟈.

글치요.

둘이 허허 웃었다. 큰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저녁 햇살에 그림자가 길게 진다.


어제 오전에 납품차를 띄우고 오후 두 시부터 시작한 철거는 저녁이 돼서야 끝이 났다. 계약직으로 일하다 잠시 쉬기로 해서 낮시간이 빈다는 다른 동생 한 명과 나, 둘이서 나무 폐기물을 잘게 부수고 3층에서 내려 내 카니발에 한가득 싣고 구청 환경과에서 소개해준 재활용 업체로 실어 냈다. 업체 문 닫기 10분 전에 간신히 도착해서 부랴부랴 내려주고 정산을 했다.


일당 겸해서 도와준 동생과 족발집에서 술잔을 나누며, 참으로 큰일 난 상황이고 진짜 비상 상황인데도 그 와중에 글감 생겼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말을 우스개처럼 했다. 이왕 북카페 대책회의 오픈 과정을 글로 남기기로 했으니, 그럴 바엔 고생이 가미되고 기막힌(?) 사연이 더해지면 좋은 일 아니냐고 말하며 함께 낄낄댔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이미 사방은 캄캄했다.

개업까지 남은 여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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