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 Nov 15. 2019

엄마의 등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편찮으셨던 아빠를 대신해 엄마는 일찍부터 일을 하셨다. 별다른 지식도 기술도 없는 여느 아낙처럼 엄마도 몸으로 하는 험하고 궂은일을 하셨다.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그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신다.



그 에너지는... 그 악착같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제 자식들도 다 취직, 결혼 다 시키고 엄마 혼자 먹고 살 만큼은 재산도 일궈 놓으셨는데 선뜻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연세에 크게 편찮으시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되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편히 쉬시면 좋겠는데 하루 일하면 일당이 얼만데.... 그 계산에 시간이 허락되는 한 일을 하러 가신다.



살가운 성격도 아닌 데다 우리 가족은 각개전투로 각자 살아가는데 익숙해서인지 여느 엄마와 딸처럼 매일 전화를 한다든지 자주 찾아간다든지 하지는 않는 조금은 매정하고 건조한 딸이다.



이번 주말에 오랜만에 친정을 찾았다. 새로운 곳에 가면 더욱 흥분하고 사고 치는 진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는 것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일이다. 친정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진현이가 어릴 때야 엎어버리거나 안고 있으면 제어가 되었지만 이제는 나만큼 커버린 아들을 제어하려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한다.



자고 가라는 친정 엄마의 말에 혼자 자는 엄마가 외로울까 그러마 했지만 사실은 우리 집이 훨씬 편했다. 예상대로 진현이는 집에서보다 더 설쳐댔고 연휴 3일째가 되어가는 시기라 나는 지칠 대로 지치고 예민해질 데로 예민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다음날 아침 일을 하러 나가셨다. 진현이와 둘이 친청 집에 있는데 진현이는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징징거리고 내 몸과 마음은 더 가라앉기만 했다.



점심때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엄마는 내가 집에 갈 때 싸서 보낼 반찬을 한다며 엉덩이 한번 붙이지 못하시고 부엌에서만 서계셨다.



그 와중에 진현이는 베란다 운동기구를 하겠다며 나에게 잡아달라고 소리 지르고.... 돌이켜 보면 별일도 아니었다. 다만 연휴 3일 동안 잠시도 진현이와 떨어져 있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인내심이 바닥이 난 나는 진현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진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걸 들은 엄마는 반찬을 만들다 말고 베란다로 오셨다.


"크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왜 이리 엄마 속을 썩이노? 늘 장애 애 데리고 다니던 엄마가 애 시설에 보냈는지 혼자서 다니더라... 진현이를 시설에다 보낼 수도 없고...." 하며 울먹이셨다.



그 말에 울컥였다. 애먼 엄마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누가 반찬 만들어 달라고 했나? 나 힘들어 죽겠다고. 진현이 좀 봐주면 안 되나? 반찬은 사 먹으면 된다고!!!"


"내가 뭐 매일 애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여기 오면 더 힘들다고!!!"



"그렇게 힘들면 사표 쓰고 진현이 봐라. 애를 제대로 키워야지. 돈 그거 아무 소용 없다."


엄마도 지지 않고 맞받아치셨다.



그런 엄마가 야속했다. 5년 휴직 후 독박 육아로 진현이를 키우면서 직장에 다녔다. 내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엄마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사표를 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정작 엄마는 왜 악착같이 일하러 다니시는지...



엄마한테 하지 않아도 될 말, 엄마에게 할 필요 없는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나 힘들다고, 너무 힘들다고!! 누가 반찬 만들어 달라고 했나!!!"



마치 참았던 힘듦과 서러움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미친년처럼 울부짖었다. 비싸게 주고 일주일에 한번 하는 상담실에서는 토해지지 않던 감정들이 일순간 밀려 나왔다.



그래. 나는 힘들었다. 버거웠다. 지쳤다.



아닌 척 혹은 이겨내는 척했었지만 나는 힘들었고 버거웠고 지쳤고 그래서 우울증이라는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엄마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는데.....



갖가지 반찬, 소고기국, 소고기 등심, 과일들, 진현이를 위한 간식들.... 엄마가 준비하고 있던 모든 것을 두고 나는 진현이만 데리고 친정집을 뛰쳐나오듯 나와버리고 말았다.



운전을 하는데 계속 눈물이 나왔다. 너무 힘들고 서러웠다. 나는 어디에 기대고 싶은데 그럴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외로웠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 늙은 엄마에게 이런 모습이나 보여주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더 눈물이 나왔다. 종합 짬뽕적인 느낌에 사로잡혀 눈물이 줄줄 났다.



모두 자신만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한다. 친정엄마는 나에게 갖가지 반찬과 돈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다. 나도 돈을 버는데 꼭 돈을 주신다. 나는 돈보다 반찬보다... 그냥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데....



집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남편에게 전화했다. 반찬 가져가라고. 가지 않겠다는 남편을 종용해서 반찬을 가지고 오게 했다.



그렇게 패악을 부리고 그냥 가버린 딸이 뭐 그리 예쁘다고 온갖 반찬을 빠짐없이 싸서 바리바리 보내셨다.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돈 오만 원까지 함께. 그 오만 원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입으로는 "내가 돈이 없나!!!" 하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장애아를 키우는 딸이 얼마나 안쓰러울까....



이제는 엄마의 사랑 방식을 받아들여야겠다. 나는 늘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하고 서운했다. 



우리 모녀는 왜 이리 박복할까? 엄마는 40대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억척스럽게 자식을 키워냈고... 그 딸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느라 족쇄에 묶인 삶을 평생 살아야 한다. 그냥 다 불쌍해졌다. 엄마도 나도....



늘 엄마의 등만 봤던 것 같다.


싱크대에서 부엌에서 나에게 줄 것들을 준비하느라 나는 늘 엄마의 등만 봤다.


나는 그 등이 싫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하지만


먼 훗날 엄마를 떠올리면 그 등이 생각날 것 같다. 엄마의 등으로 엄마를 인정해드려야겠다. 이제 그만 엄마의 등과 화해를  해야겠다.



여전히 엄마 앞에서는 아이 같은 나.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속이 좀 후련은 했다.


어디서 그렇게 울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 엄마 앞에서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하자.



볼 때마다 사그러지는 듯 여위어 가는 엄마에게....


내가 도움은 못 될지언정 짐을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조금 더 자라는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자식 공부 안 시키고 내 공부 하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