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 법칙
산을 오르다 보면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누군가는 정상만 보고 숨을 몰아쉬고, 누군가는 중턱에서 바람을 느끼며 웃는다.
나는 오래전 한 산행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그날은 내 인생을 조금 바꿔놓은 날이기도 하다.
그날 산은 유난히 안개가 짙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길도 흐릿했다.
초입에서 만난 첫 번째 사람은 배낭을 무겁게 메고,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왜 그렇게 힘들어 보이십니까?”
그가 답했다.
“이 산이 생각보다 험하네요. 길도 잘 안 보이고, 혹시 잘못 가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의 걸음은 조심스러웠고, 한 발 한 발이 고민이었다.
그때 옆에서 한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산은 원래 그런 거요. 너무 깊게 생각하면 길이 더 안 보이는 법이지.”
노인은 작은 물병 하나만 들고 있었다.
걸음은 가벼웠고,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산은 올라가는 게 아니라 그냥 걷다 보면 올라가 있는 거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날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해석’에 영향을 받는다.
같은 상황도 누군가는 문제로 보고, 누군가는 과정으로 본다.
무겁게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짐이 되고, 가볍게 바라보면 대부분은 지나가는 바람이 된다.
우리는 종종 필요 이상으로 생각을 붙잡고 늘어진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낼 줄 아는 태도에서 가벼워진다.
조금 더 올라가니 두 번째 사람이 보였다.
그는 계속 다른 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앞사람의 속도에 맞추고, 앞사람의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왜 그렇게 따라가십니까?” 그가 말했다. “저 사람은 경험이 많아 보입니다.저보다 잘 알겠죠.”
그때 뒤에서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길은 알려줄 수 있지만, 걸음은 대신 걸어줄 수 없어요.”
그는 혼자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속도도 다르고, 방향도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편안했다.
우리는 타인의 말에 너무 쉽게 흔들린다.
조언은 참고해야 할 방향일 뿐 정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길은 그 사람의 시간과 선택이 만든 결과다.
그걸 그대로 따라간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얼마나 믿느냐다.
내 선택을 신뢰하지 못하면 계속 남의 기준으로 살게 된다.
결국 인생은 남의 해답을 맞추는 시험이 아니라 내 해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정상에 가까워질 즈음 세 번째 사람을 만났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괜찮은 척 웃고 있었고, 혼자 있을 때는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게 익숙해졌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게 살면, 어느 순간 진짜 내가 사라집니다.”
그 말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싫은데 웃고, 힘든데 괜찮다고 말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겉모습은 남아 있지만 속은 점점 비어간다.
다르게 산다는 건 특별해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진짜 나로 살 때 비로소 삶은 내 것이 된다.
그날 나는 정상에 올랐다.
안개는 여전히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앞이 잘 보였다.
아마 길이 보인 게 아니라 생각이 정리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방향은 있다.
가볍게 살고, 나답게 살고, 다르게 살자.
이 세 가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잃지 않게 해준다.
우리는 완벽하게 살 필요가 없다.
남보다 잘 살 필요도 없다.
단 하나, 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지금도 산을 오른다.
그리고 가끔 그날 만났던 세 사람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안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가볍게, 그리고 솔직하게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