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바라보는 아홉가지 시선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을 읽고

by 봄을기억해

[제목 : 여행을 바라보는 아홉가지 시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전하는 여행을 위한 조언들]



김영하 작가가 쓴 <여행의 이유>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것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이 책을 통해서 그가 직접 경험한 날 것의 이야기들을 슬쩍 엿볼 수 있을 거라고. 그가 겪은 여행의 경험 속에서 작가 특유의 관찰력으로 찾아낸 어떤 것에 대해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될 거라고 말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작가가 들려주는 여행담만큼 진귀한 게 또 어디 있나? 타고난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한다는데 말이다. 평소 알랭 드 보통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독서'라는 정신적 여행을 감행했다.


여행은 처음 기대한 것과 다른 것을 얻어오는 여정이라 했던가? 결과적으로 내 기대는 딱 절반만 맞았다. 내밀하게 쓰여진 알랭 드 보통의 여행기를 기대하고 간 것인데, 여행기 대신 여행이라는 테마로 만들어진 전시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꾼이 들려줄 재간 넘치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객석에 앉았는데, 정작 그는 전시관에서 만난 도슨트처럼 자꾸 다른 이들을 소개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보들레르요? 이봐요. 알랭 드 보통씨, 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구요. 하지만 절반의 책임은 내게도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여행담'도 아니고, 여행의 '이유'도 아닌 여행의 '기술'인 까닭이다. 그는 여행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나누고자 했던 것이고, 그것을 풀어내는 수단으로써 안내인들을 지정해 자신의 생각을 확장해나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도 나름의 여행기이긴 하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기가 아니라 그의 여행 방식에 영향을 끼친 이들에 대한 여행기에 좀 더 가깝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에드워드 호퍼가 나왔을 때쯤 안내자들로 가득한 이 정신적 여행에 흠뻑 빠져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느덧 나는 알랭 드 보통이 에드워드 호퍼를 통해 펼쳐 든 군중 속의 고독과 외로움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동 판매식 식당> 그림의 여인을 비롯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문장들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적인 사유의 확장이나 창조적 영감을 받는 것에 '새로운 공간'이나 '음악'이 영향을 미친다는 말에 대해서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대놓고 하얗게 비어있는 캔버스도 그렇고 반대로 너무 빽빽하게 채워진 경우에도 오히려 상상력이 발붙이기 어려운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글에서 주장하듯이 여행이나 음악은 현실의 일부만을 채워냄으로써 상상력이 물꼬를 트고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는 느낌이 분명히 있다. 알듯 말듯 오묘한 힌트가 주어진 십자말풀이 퍼즐처럼 말이다. 이렇게 보면 창조적 영감을 끌어내는 동력은 적당히 느슨하게 엮인 사실들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의 각 장에서 안내자들의 생애나 그들 자신의 입을 빌려 여행에 대해 펼치는 이야기는 과연 알랭 드 보통다웠다. 여행으로 투영된 그의 생각은 하나하나 나름의 깊이를 품고 있었고, 나를 반긴 문장들은 그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낼 단어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라 완성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자가 말한 것처럼 알랭 드 보통이 조금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사람일 수 있겠지만, 바로 그런 사람이기에 이런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후반부 파트였는데 아무도 표현한 적이 없는 '본질'을 나타내고자 노력했던 반 고흐,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던 존 러스킨, 그리고 침실 여행을 통해 주어진 공간을 의도적으로 '낯설게 하기'를 고안한 사비에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러한 내용들은 여행을 다양하게 음미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대상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것은 내가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에 열렬히 공감하는 디테일 맹신자이기도 하며, 사진을 통해 세상을 색다르게 조망하는 것에 취미를 붙인 아마추어 사진가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관찰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줄 알게 해 주고, 그것을 통해 확장되고 발견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사진이 그러한 찰나의 순간을 재빠르게 포착해내는 것에 맞춰져 있다면, 존 러스킨이 말하는 데생은 그 본질을 신중히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찰의 중요성에 누구보다 공감하는 나이기에 그가 '보는 법'을 알리기 위해 데생을 가르친다는 말이 와닿았다. 타고난 예술가였던 반 고흐는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알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는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고흐의 그림에 관심이 없었는데, 알랭 드 보통이 설명해주는 고흐의 그림을 보니 그가 사물로부터 느낀 점을 드러낸 표현력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다.


반면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침실 여행이었다. 사비에르처럼 집에서 침실 여행을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침실 여행에서 제시하는 원칙들은 내가 우리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스냅사진을 찍을 때의 마음가짐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곳곳에 숨어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머나먼 타국의 여행지에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늘 다니던 곳일지라도 새롭고 낯선 광경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면 색다르고 아름다운 풍경은 얼마든지 눈에 띄기 마련인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런 점을 설명한다. "우리는 우리 동네에서 흥미 있는 것은 모두 발견했다고 자신한다"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침실 여행에 얽힌 이야기들은 내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사진 촬영이 여행이 주는 설렘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책의 초입 "기대의 관하여"에서 알랭 드 보통은 위스망스의 사례를 통해 '실제 여행'보다 '상상력'을 통한 여행이 더욱 흥미로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에 대한 상상이나 기대는 우리가 여행지에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들과 순간들로만 취사선택하여 채워낼 수 있는 반면, 두 다리로 땅을 딛고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하는 여행의 현실은 그러한 '편집(취사선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족할 것으로 기대하는 경험 외의 것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며, 취사선택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 또한 마찬가지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동시에 새삼 느낀 것은 우리가 쓰는 글 또한 그 상상력을 통한 여행만큼이나 편집적이라는 것이다. 당장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만 해도 그렇다.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과 내 이야기를 취사선택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알랭 드 보통이 9시간 30분 간의 여정을 말할 때 "오늘보다 긴 목숨을 부여받는 장면은 딱 하나뿐이다"라고 얘기했듯이 살아남는 순간이나 문장은 대개 인상적인 것들밖에 없는 듯하다.


이 정신적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것이다. 그 어떤 완벽한 날씨나 아름다운 것들이 넘치는 일정들이 준비되어 있더라도 감정적/심리적 요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조금도 기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M과의 다툼으로 불행해진 알랭 드 보통은 오히려 이 모든 환경과 일정이 자신의 기분을 모욕하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그가 유일하게 보여준 내밀한 여행기의 일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에게 사회적 관계와 정서적인 유대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새로움으로 가득한 여행지에 대한 무수한 관찰과 기쁨과 탐미가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곁에 함께하는 타인에게도 동일한 수준의 관심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동시에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만큼 잘 알고 있어야 하기도 하고 말이다. 본질을 바라보고 탐구해야 할 대상은 세상 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들 자신의 내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끝으로 이번 여행을 마칠까 한다. 여러모로 여운이 남는 긴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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