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을기억해 Oct 05. 2022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인가요?

캔들라이트 공연에서 쇼팽 곡을 연주한 이누리(Nurry Lee) 피아니스트

한 동안 저는 글쓰기가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감정이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건반을 찾아 그것을 내가 생각하는 순서대로 누르면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상상해본 것이지요. 그러한 표현이나 단어를 채집하는 일은 글 쓰는 이에겐 숙명과도 같은 일이고, 열심히 채집할수록 내가 누를 수 있는 건반의 개수는 점점 늘어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피아노 연주회에 가서, 쇼팽의 곡을 듣고 연주회 그 자체에 매료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제가 건반을 단어에 비유한 것은 그저 비유일 뿐이고, 실제로 피아노 건반을 오가며 흐드러지듯 피어나는 연주 그 자체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독 그날의 장면이 제게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평소에도 클래식을 아예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가끔씩 유튜브를 통해서 클래식을 틀어놓고 글을 쓰거나 사진 작업을 진행하곤 했었으니까요. 다만 제게 그것은 여느 때처럼 실시간 인기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재생하는 정도로,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듣기 좋은 음악이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으로 클래식 음악을 받아들였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던 중 그날따라 유독 클래식이 깊은 인상을 남긴 것 마치 누군가 내게 보내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제 귓가에 대고 "음악이란 바로 이런 거야"하고 말하는 것처럼요. 저는 그것이 쇼팽의 곡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다른 장르의 음악이 아닌 클래식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날 연주를 담당한 이누리 피아니스트가 혼신의 연주를 다했기 때문인지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누리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넘기는 모습

분명한 것은 쇼팽의 음악에는 어떤 종류의 감정이 담겨있고, 연주가 시작되면 그 감정들이 제게 다가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듣는 내내 쇼팽이 "나는 이런 감정 상태야. 넌 이 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음악을 통해 저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쇼팽이 내던지는 질문에 저 또한 감정의 오르내림을 느끼게 되었고, 한 발 더 나아가 그곳에 모인 이들 모두가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로 비슷한 감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피아니스트에게 필요한 자질은 그 곡에 담긴 감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달하느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피아니스트의 역할은 곡이 가진 본연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해서 머나먼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다시 한번 그 감정을 펼쳐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시대를 넘어서조차 전해질 수 있는 생생한 감정이란, 신기하지 않나요? 이누리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감상하는 우리

이누리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모습

의 마음조차도 두드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저는 제가 악기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네, 들인 돈이 아깝지 않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요. 저는 느릿느릿 멋지게 흘러가는 이 순간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무언가 하나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서 빠져드는 것이 오랜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은 자꾸만 몰입을 방해하는 일들로 가득하잖아요? 갑작스레 걸려오는 전화, 새롭게 떨어진 상사의 지시, 협조를 요청하는 메일, 결제를 통보하는 알림을 비롯해 무수히 자신을 봐달라고 몸부림치는 앱들의 향연. 그런 점에서 온전히 감상에 빠져드는 1시간은 그야말로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예술이 밥 먹여주냐'고 할 때 예술이 밥을 먹여준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채워주는 것이 예술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예술로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지 않으면서 그저 '먹고사니즘'에 입각한 삶이 우리의 최선이라면, 우리의 삶 속에 상상력과 여유가 차지할 공간이 남아있을까요. 내 존재와 인생, 세계, 세상에 대한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술이나 철학의 영역이 아닌가 싶거든요.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런 것들을 향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구나 생각을 합니다.


한 편으론 이제 제가 예술에 왜 이끌리는지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느낀 희로애락이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던 부분이 과연 많이 달라졌을까요? 시대마다 가진 풍경은 다를지언정 다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삶이라고 해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지요. 우리처럼 웃고 울었을 겁니다. 기술의 진보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고, 삶에서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게 현대인의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물음이 가야 할 방향은 더더욱 명확해집니다. 각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이 삶에서 느낀 것들은 무엇이었고, 그중에서도 무엇을 시대를 넘어서까지 남기고 싶었는지 궁금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닐까요? 거기에 새로운 물음을 더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제가 예술을 찾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예술가들을 찾아 그들을 감상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술가들의 생각이나 감정에 동조하고, 때로는 시대의 정서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구나를 느낄 수도 있을 거고, 어쩌면 거기에 새로운 의견을 보태며 저도 뭔가를 남기고 싶은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인가요?


캔들라이트 콘서트는 대중에게 친숙한 클래식 경험을 위해 만들어진 공연 프로그램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90여 개 도시에서 약 300만 장의 티켓을 팔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9월 14일부터 세빛섬 공연을 시작으로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공연장 곳곳에 양초가 함께해서 공연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줍니다.
제가 갔던 곳은 정동 아트센터라는 곳으로 덕수궁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연 무대를 둘러앉아 볼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고, 가까운 자리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 글은 <봄을기억해> 뉴스레터 작성된 글입니다.


뉴스레터 구경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