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을기억해 Oct 11. 2022

단식과 함께 떠오른 생각들

살다 보면 할 때보다 안 할 때 더 깊이 와닿는 것들이 있습니다. 새해 다짐으로 무언가를 하겠다 결심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안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요. 이번 연휴에 실천한 단식이 저한테는 그랬습니다. 갑작스레 단식을 시도한 건 얼마 전 '신체'라는 주제로 글을 쓸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단식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쓰고 나니, 단식을 다시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지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연휴 일정 중에 36시간 단식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고, 성공했습니다. 단식을 하는 동안에는 정말 놀랍게도 음식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단식을 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단식 중에 참여했던 영화 모임에서 준비해준 간식을 눈앞에 두고도 오히려 담담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BACC(필수 미네랄 성분)와 소금을 탄 생수를 들고 서울을 누볐습니다.


이렇게 잠시 음식을 끊어보는 것으로 저는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들이 얼마나 자극적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요. 한 동안 이렇게 먹지 않다가 식당에서 음식을 먹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달고 짠 맛들은 그야말로 우리의 건강이나 균형적인 영양을 고려한 식단이라기보다는 식욕을 돋우기 위해 만들어진 자극적인 요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더군요. 음식들이 서로가 '더, 조금만 더'를 외치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데만 혈안이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들의 이름 또한 자극적인 것 투성이입니다. '마약김밥', '핵불닭볶음면', '엽기떡볶이', '폭풍토핑' 같은 단어들에 대한 지적이 새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저는 이렇게 표현해서라도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자극적인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해야 하는 현실이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 것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실제로 마약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안다면 저런 상호나 메뉴명을 쓸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면서요.


무엇보다 영양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이 공감됩니다. 오히려 영양 과잉이기 때문에 생기는 질병들로 현대인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지요.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20시간 정도를 만복 상태로 지낸다고 합니다. 과거의 인간에게 굶는 시간이 존재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거의 내내 배부른 상태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단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된 지식들은 저 역시 영양 과잉 상태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앞으로의 식단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책 <자가포식>에서 저자들은 우리의 몸이 최소 18시간 이상의 공복 기간을 가지게 될 때 켜지는 유전자 스위치(mTOR)와 자가포식의 기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것들이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단, 자가포식 과정은 24~48시간 이상 공복이 되었을 때 나타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옛날에는 이러한 유전자 스위치의 전환이 자연스러웠으나, 오늘날에는 공복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해질 수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벗어나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것은 민간에 떠도는 얘기가 아니라 현대 과학이 밝혀낸 최신 항노화의 기전이자 원리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최근 들어 단식과 식단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근거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많이 먹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그중 하나가 음식 조리과정과 폭력의 분리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실제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에는 폭력의 과정이 생략, 은폐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음식을 먹으려면 그 폭력적인 순간들을 피할 수 없었지요. 무언가의 생명을 끊는 일 말입니다. 하지만 대량 생산과 분업화가 고도로 이루어진 오늘날은 다릅니다. 물고기를 사냥하고, 소나 닭을 도축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로부터 현대인들은 벗어나 있습니다. '생명다른 생명을 앗아가고, 그것을 먹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명제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는 식탁의 음식들은 그래서 예쁘고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만 보입니다. 우리가 음식으로 삼는 동물들의 도축 과정과 가공 과정, 그리고 그들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최근 30년간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요소들이 사실상 억제되지 못했다는 점에 경각심을 느끼는 한 편, 그러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가 지나친 육류의 소비라는 점과 과잉된 영양 섭취가 우리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제가 가야 할 길은 좀 더 명확해 보입니다. 일반적인 식단을 벗어나 비건으로 살아가는 것인데요. 나 하나부터라는 생각으로 지구를 아끼고, 건강을 생각하는 관점에서 시작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아직 그것을 일상적으로 잘 실천할 자신은 없지만 단계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글은 <봄을기억해> 뉴스레터 작성된 글입니다.


뉴스레터 구경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