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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Dec 18. 2023

[시선2035] 중산층이라는 착각

#시선2035

착각이었다. 빚보다 코인과 주식이 먼저 올랐다. 접히는 최신 휴대폰을 쓰고, 파인다이닝을 찾아 인스타그램에도 올렸다. 명품을 구경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골프를 치는 이도 있었다. 이 정도면 중산층인 줄 알았다. 난방비가 걱정돼 내복을 껴입고, 마트에서 담은 물건을 내려놓고, 집밥을 먹으며 가스비를 신경 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은행에서 보내는 금리 변동 문자에 가슴이 내려앉기를 여러 번.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기며 위를 올려다보던 순간들. 이젠 까마득한 옛일이 돼버렸다.


난방비 고지서만큼이나 삶의 변화가 갑작스럽지만, 중산층의 위기가 새로운 건 아니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위기에 놓인 쪼그라든 중간계층’ 보고서를 보면 만국 공통현상이다. OECD는 중산층을 “험난한 파도 앞에 놓인 한 척의 배”라고 했다. 필수재인 주거와 교육의 비용이 소득보다 빨리 오르니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특권 중산층』의 저자인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는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한 많은 이들이 ‘불안계층’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난방비 문제를 고위 관료에 물으니 모두 선진국 사례를 든다. 너무 적게 올랐고, 너무 펑펑 써왔다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자신의 추위는 스스로 책임지란 뜻으로 들려 섬뜩하다. 미국과 유럽에선 한파가 불어닥치면 사람이 죽는다. 대신 넉넉한 이들은 잠시 따뜻한 곳으로 피신을 간다. 2년 전 미국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최강 한파 속 가족과 멕시코 칸쿤을 갔다가 사진이 찍혀 돌아와야 했다. 선진국식 해법은 별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도 중산층이란 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윤석열’과 ‘중산층’을 검색하면 지난해 7월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세 부담 경감안을 마련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를 다룬 뉴스가 마지막으로 뜬다. 그 뒤에도 중산층을 언급 안 한 것은 아닐 테지만, 언론에 주목을 받진 못한듯하다. 그 자리엔 대기업 법인세와 다주택자, 취약계층이 자리 잡았다. 기업을 지원하고 어려운 이를 도와야 성장을 한다는데, 그사이에 끼인 월급쟁이는 거세지는 파고를 마주하고 있다. 세금을 깎아줬는데 회장님은 왜 자꾸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인지. 부동산 규제를 거의 해제하면서 윤 대통령은 “다주택자를 중과세하면 영세 임차인에게 세금을 전가한다”고 했다. 주택시장이 완전히 비탄력적일 때나 가능한 말이다. 전셋값은 세금이 아닌 시장이 결정한다는 걸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임차인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OECD는 중산층을 한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열망이라 정의했다. 그 열망이 허무한 착각으로 끝나버릴까 두렵다.


2023년 1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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