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쉘 자우너는 엄마를 생각하며 H mart에서 울었지만, 나는 춘천에서 막국수를 먹으며 아버지를 추억했다>
마라톤 대회를 위해 오랜만에 찾은 춘천.
춘천역에 도착해서 내가 바로 찾은 곳은 다름 아닌 강원도청 앞에 있는 실비막국수집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 가족이 춘천에 오면 항상 들리는 곳이다. 나에게 평양냉면의 스탠다드가 외할아버지, 어머니 손을 잡고 갔던 우래옥 냉면이라면, 춘천막국수의 스탠다드는 막국수를 처음 먹어본 바로 이곳 <실비 막국수>이다.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막국수집의 하나이기도 한 이 막국수집도, 예전만큼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단골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며,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곳이다.
춘천은 사실 나에게는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미와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내가 아기였던 시절 아버지는 춘천 발령을 받아서 몇 년간 계셨고, 아기였던 나와 엄마는 춘천을 수시로 오갔다. 물론 아기 때 일이라 전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서울로 다시 오시고 나서도 춘천을 꽤 좋아하시고 자주 가셨다. 가족들과 드라이브를 갈 때도 춘천을 갔고, 춘천 어린이회관에도 가고, 공지천에 가서 오리배도 탔다. 물론 마무리는 실비막국수 집이었다. 막국수와 빈대떡을 먹고, 차가 막히는 경춘국도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던 주말 밤 차 안의 공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가 낚시를 꽤 자주 다니셨는데 금요일 밤에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공지천에서 밤낚시를 했고 어머니와 나는 다음 날 아침 시외버스를 타고 공지천에 와서 아버지를 만나곤 했다. 그때는 우리 집에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낚시란 것을 해 봤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떻게 약속을 하고 만났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대학생이 되어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xx년 12월 14일 화요일에 입대한 곳도 다름 아닌 이곳 춘천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친구들과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춘천역에 도착해서 102보충대로 입소를 했다. 군생활을 춘천에서 하지는 않았지만, 민간인에서 군인신분으로 변하는 그 드라마틱한 경험을 한 곳이 춘천이기 때문에 102보충대에서의 2박 3일은 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군입대한 남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사복을 싸서 집에 보내는 일도 했고, 102보충대에서의 첫날밤 소복하게 눈이 내려, 다음 날 아침 새하얗게 눈이 쌓여있던 연병장도 기억이 난다.
다시, 아버지 얘기로 돌아가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근무하시던 곳이 이곳 춘천이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 파견 나오셨던 그 춘천에, 내가 군대 있던 그즈음에 다시 발령을 받으신 것이다. 원래는 아버지 직급의 초짜가 오는 자리인데, 아버지는 그 직급의 최고참인데 아버지가 그곳으로 발령을 다시 받은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나가라는 소리..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꿋꿋이 춘천으로 출퇴근을 하셨다. 사실 춘천에 관사가 나와서 그곳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당시 서울에서 야간 대학원을 다니고 계셨다. 그래서 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 관사에 머무르는 날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춘천으로 출퇴근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간암 판정을 받고 3개월의 짧은 투병생활 끝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회사를 그만둔 상태가 아니었고, 병상 중에 퇴직을 하셨고, 이모와 내가 춘천에 와서 아버지 자리를 정리하고 춘천에 있던 아버지 차를 내가 몰고 서울로 갔다. 어머니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모와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후로도 줄기차게 춘천을 왔다 갔다 했으며, 이 막국수집도 여러 번 왔는데, 아버지 생각은 났지만, 울컥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울컥했다. 다른 때는 친구들과, 혹은 어머니와 와이프와 가서 먹는데 혼자 가서 먹어서 더 아버지 생각이 간절했던 건지 모르겠다. 내일이 마라톤 대회지만 막국수와 빈대떡에 동동주까지 마셨다.
마라톤 대회 전날 동동주 괜찮은 건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마셨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말이다. 옆 테이블의 4명의 중년 남성들도 막국수, 빈대떡에 동동주를 시킨다. 귓동냥으로 대화를 들어보니 마라톤대회 참가자들 같아 보인다. 다행이다. 마라톤 대회 전날 동동주 마시는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구나,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아마 내일도 달리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출발지점도 다름 아닌 공지천이다.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