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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화 Mar 13. 2024

어복쟁반에 복어가 없다고??

말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한 처방

티빙에서 하는 드라마 <LTNS>에서 '어복쟁반'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며느리가 은밀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어복쟁반 먹고 싶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복귀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때 '어복쟁반'이 무엇일까 궁금증이 들었지만, 긴박한 사건 전개에 따로 찾아보지는 못했어요. 그런 음식이 있구나 ~ 정도로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 이후에 어쩌다 회사에서 회식 장소를 정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어요. 평소 맛집이라고는 찾아다니지도 않고, 가던 곳도 줄이 서 있으면 나와 버리는 저에게는 시련에 가까운 임무였습니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분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런저런 주변 맛집들을 전수 받았습니다.


추천 받은 맛집 중에 '어복쟁반' 가성비 맛집이 있었어요. TV에도 소개된 곳이며 오랜 시간 인정받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메뉴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막 샘솟았어요.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호기심이 발동하며 적극적으로 추론했어요. 당연히 '생선'이 들어간 음식이고, 쟁반 위에 있으니 회와 비슷한 비주얼이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입밖으로 꺼내기는 민망해서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경청했어요.


충격적으로 '어복쟁반'에는 생선이 들어가 있지 않았어요. 물고기 어(魚)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쇠고기 샤브샤브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큰 내색은 하지 않고 폭풍 검색을 했어요. 음식 백과에는 '놋쟁반에 갖가지 고기편육과 채소류를 푸짐하게 담고 가까운 사람끼리 둥글게 모여 앉아 육수를 부어가며 먹는 추위를 이기게 하는 일종의 전골이자 온면으로 의리있고 인정 많은 평안도 사람들의 기질이 잘 표현된 음식' [네이버 지식백과] 어복쟁반 (아름다운 우리 향토음식, 2008. 3. 15., 정재홍)고 되어 있었어요. 그래도 쟁반은 맞았습니다. 어복은 소의 뱃살인 '우복'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러니 좀 이해가 되죠.



 이런 새로운 지식을 혼자 알고 있기 아깝지 않습니까. 절친한 친구에게 슬쩍 물었습니다.

*나: 어복쟁반'이 뭔지 아니?

*친구: 그럼, 알지! 내가 옛날에 요리 게임 했었는데 거기서 만들었었어.

*나: 오 진짜? 어떻게 만들어?

*친구: 복어 있잖아. 얇게 썰어서 쟁반 위에 갈면 돼.

*나: ... 그 배 빵빵한 복어? 그거 비싸다던데.

*친구: 응. 그래서 엄청 고급 요리잖아.

*나: ... 그거 독 있지 않아?

*친구: 응. 그래서 고급 요리겠지.

*나: ... 그렇구나. 그 게임 재밌었어?

*친구: 응. 어릴 때는 열심히 했지. <천하일품 요리왕>인가 그래.

*나: ... 그렇구나. 나중에 먹으러 가자.

*친구: 너 생선 좋아하나? 알았어, 그럼.


우선 매끄럽게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생각했습니다. 한 번 먹어봐야 끝나는 게임이겠구나. 불필요한 논쟁으로 사이가 멀어지느니 따뜻한 전골 국물을 먹으면서 스스로 깨닫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음식점에서 친구는 어복쟁반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반하장으로 왜 알면서도 바로 정정하지 않고 그냥 듣고 있었냐고, 나를 바보 취급했었냐고 날뛰었어요. 그리고 게임 속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그 요리는 '복어회'로 수정했습니다. 게임은 진짜 했다고 하더라고요. 심성이 나쁜 친구는 아니라 악의적인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착각한 것이죠. 그렇게 세 번째 굴욕적인 뇌피셜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친구는 오씨라서 '오복쟁반 사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유쾌한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지만, 시어머니가 "어복쟁반 먹고 싶다~" 했을 때, 시장에서 '복어'를 사간다면? 말귀가 어둡거나 살짝 모자란 사람처럼 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이 상황을 분석하며 재발을 방지하는데 힘쓰려고 해요.


첫째, 친구는 왜 '복어회'가 떠올랐는가?

친구는 복어회를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배경지식이라고 하죠. 하지만 '어복쟁반'은 모릅니다.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때 기존의 배경지식을 활성화해서 추론합니다. '어복'을 거꾸로 하면 '복어', '쟁반'은 회를 놓는 그릇. 이렇게 머릿속에서 연결이 된 것이에요. 잘 연결되면 적절한 추론인데, 잘못 연결되면 '뇌피셜'이 됩니다. 왜곡된 기억을 만들어 버리죠. 적절한 배경지식을 꺼내어 연결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둘째, 친구는 왜 아는 척을 하는가?

성향의 문제도 있지만, 능력으로 풀어서 살펴볼게요. 내가 아는 지, 모르는 지를 판단하는 것은 중요한 능력입니다. '메타인지'라고도 하는데 조금 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나의 상태를 바라보며 판단하는 능력이에요. 앞에서 추론하기 전에 이 단계가 발동하면 좋습니다. "내가 정확히 아는가? 모르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확신의 단계를 척도로 나누는 것도 중요해요. 모르면 깔끔하게 찾아보면 되니까요. 섣불리 반응하지 않고 꾸준히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셋째, 어떻게 잘못된 배경지식을 수정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오류를 자주 범해요. 중요한 것은 그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선 상대방의 오류를 발견했을 때, 직접적으로 지적해줄 수도 있어요. "어복쟁반이라는 것은 말이지~" 여기서는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하지만 쉽게 얻은 지식은 쉽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고집 센 성인들은 새로운 자극을 거부하기도 해요. 금방 까먹었다고 하는 분들도 많은데, 망각도 거부의 방식 중 하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직접 찾아 보고, 체험하면 오래 남습니다. 누군가에게 설명해줄 기회가 있다면 더 좋고요. 이때 잊지 않고 나의 배경지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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