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는 어떻게 무언가를 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몰디브는 말이 좋아 휴양지지, 시설 좋은 감옥과 다름없어요.
- 어느 블로거의 몰디브 리뷰 중
영화 <더 메뉴>를 아시나요. 드라마 <퀸즈겜빗>에서 체스 천재로 열연을 펼친 ‘안야 테일러조이’가 주연으로 나오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는 외딴섬으로 12명의 손님들을 초대하는 씬으로 시작해요. 그 섬에는 미슐랭 스타로도 평가할 수 없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요리를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린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에요. 다이닝 가격은 무려 180만 원. 작품 같은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지만, 문제는 그 외딴섬에 초대받은 이상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거죠. 영화는 레스토랑을 마치 시설 좋은 감옥처럼 묘사합니다
몰디브는 1,192개의 산호섬으로 이룬 나라예요. 모든 섬의 면적을 더해도 파주시나 강화도 수준이죠. 100곳이 넘는 리조트가 섬 곳곳에 있다고 하네요. 몰디브에 도착하면 배를 타고 각 섬에 들어가요. 달리 이야기하면, 섬을 나오려면 다시 배를 타고 탈출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몰디브의 즐길거리는 각 섬, 그리고 리조트가 보유한 콘텐츠가 전부예요. 바다, 숙소, 야자수, 술, 하늘, 모래사장, 그 밖의 액티비티 정도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앞서 적은 리뷰가 나온 듯해요. ‘시설 좋은 감옥, 몰디브’.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 몰디브는 그런 환경이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소음이 사라진 공간에서 무한히 시간만 흐릅니다. 여유, 쉼, 휴식 같은 말이 어울리는 공간이죠. 반대로 우리 생활엔 언제나 해낼 거리가 즐비해요. 출근을 하려고 대중교통을 타러 가거나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거, 주말 점심 메뉴를 고르는 거, 약속 장소를 선택하는 거, 코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엑셀 숫자를 다루는 거 등등. 각각의 선택을 할 때마다 자극이 가득합니다. 우리 생활이 풀자극의 공간이라면, 몰디브는 무자극의 공간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그렇다면 무자극의 공간에서 5일 동안 워크숍을 보내며 어떤 기분이 들어야 할까요. 단순히 ‘무자극 속 쉼에서 오는 편안함’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편안한 건 내 방 침대지, 12시간을 날아가야 뉠 수 있는 몰디브 리조트 침대는 아닐 수 있잖아요. 대신 저는 ‘쉼은 다시 일할 수 있는 도움닫기'라는 말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게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잖아요.
그런데 여유, 쉼, 휴식이 다시 일할 수 있는 도움닫기라면, 왜 그 쉬는 시간들이 도움닫기가 될 수 있을지 파헤쳐보고 싶었어요. 단순히 ‘일에서 멀어지면 일할 워동력이 생긴다’는 결과론이 아니라 ‘일에서 멀어지면 왜 일할 원동력이 생기는지’가 궁금했어요.
그 이유를 저는 '무능에서 오는 패배감’이라고 예상해요. 무언가를 해내지 못한다는 패배감이에요. ‘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라는 생각이 들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 나태하거나, 게으르다고 우리가 표현하는 것들이요.
이걸 두고 350년 전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인류의 문제는 방 안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무능함에서 비롯됐다’라고 했다네요. 사람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거죠.
이런 실험도 있어요.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티모시 윌슨(Timothy Wilson) 심리학 연구팀이 진행했던 일명 ‘생각의 시간’ 실험인데요. 연구팀은 책이나 스마트폰 등 심심풀이가 될만한 물건을 모두 없앤 빈 방에서 대학생 피실험자들이 6~15분 동안 홀로 앉아서 자유로이 자신의 생각을 즐기도록 하고 그 반응을 살폈어요. 심지어 일부 실험 참가자들의 방엔 ‘전기충격장치’도 설치했습니다. 연구팀이 낸 논문에선 이렇게 실험 결과를 소개했어요.
“놀라운 점은 자기만의 생각을 하며 15분 동안 홀로 앉아 있기가 너무도 피하고 싶은 것이기에 많은 실험 참가자들이 자신은 피하고 싶다고 이미 밝혔던 전기충격을 스스로 자신에게 가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이번 몰디브 여행은 그 본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어요. 몰디브에서 돌아왔을 땐, ‘아 그래도 나라는 인간은 뭔가를 해야 하는구나’하는 감상이 남길 바라면서요. 이 감상이 ‘다시 일할 원동력’이라면, 그 감상의 시작점은 ‘왜 일(또는 그 어떤 것이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게으를 자유가 필요해요.
게으름은 참, 우리에게 천대받았습니다. 게으름 그리고 나태함은 기독교의 일곱 가지 죄악에 포함될 정도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나쁘다고 여기는 관습이 있어요. 그리스 사상가 히포크라테스도 ‘나태함과 하는 일 없음은 악을 향한다. 아니 악으로 질질 끌려가도록 만든다’고 비판했네요. 현대인들에게 이런 비판은 조금은 지나친 말일 수 있어요. 게으름을 죄라고 여기진 않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우리 역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좋다고 여기지 않아요.
결국, 게으름의 순기능을 이번 여행에서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게으름에 순기능이 있다면, 제 생각엔 앞서 말한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을 선택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인간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는 기회.’, ‘왜(Why) 일을 해왔는지 잠시나마 몸으로 느끼는 경험.’ 이 경험을 제게 선물하고 싶어요.
다른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트 카뮈가 말했듯, ‘게으름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