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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May 18. 2023

기억을 지우려 기록을 지우는 우리

언젠가 겨울 백운호수를 뒤로한 채 취중 산행을 감행했습니다. 지난밤의 취기가 몸에 밴 터라 어떻게든 빼내야 했어요. 해물 자장면 한 그릇을 해치운 탓도 컸습니다. 면발이 위장에서 알코올과 접선해 춤을 추는 형국. 산 공기를 마셔야 했어요.


바라산 초입 휴양림에 차를 댔습니다. 청바지와 면바지 차림새로 남자 넷이 산을 올랐습니다. 주말 겨울 산은 한산했어요. 숲길에 깔린 볏짚 멍석 아래로 눈이 덜 녹았는지, 걸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습니다.


등산객은 남자 넷이 전부. 그땐 8평 자취방에서 탈출한 취준생 신분. 신난 취준생은 다른 셋을 제치고 선발대를 자청했습니다. 마치 캥거루처럼 뛰어다녔던 기억입니다. ‘돌격 앞으로’를 연신 외치다가 이내 제풀에 지쳤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후발대로부터 어림잡아 20미터 정도 앞선 게 전부였습니다. 선발대의 의지는 저질체력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통나무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를 때가 돼서야 체력이 빠르게 고갈되는 몸뚱이를 기억해 냈습니다. 이 사실을 거의 잊을 뻔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저질체력 몸뚱이는 틈만 나면 걷습니다. 습관 같은 것. 이 습관은 호찌민 푸미흥 3년과 군생활 2년을 거쳐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완성됐습니다. 푸미흥은 좁은 동네였어요. 낮이고 밤이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걸었어요. 군대에서는 군화가 닳도록 걷고, 걸어서 30분 반경이었던 더블린 생활권에선 버스보다 경보가 빨랐습니다.

 

하루 수천 보씩 걸어야 비로소 뇌가 가동됩니다. 뇌에 내린 서리는 그제야 녹습니다. 산책 시간 대부분을 머릿속 클라우드 폴더들을 휘젓고 다니는데 쓰기 때문일까요. 외장하드 속 사진들을 정리하듯 기억들을 분류합니다. 기억들이 나뉘면, 각각에 나름의 해시태그가 달립니다. 생각은 해시태그들을 연관검색어 삼아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집니다.


증발하거나 미화된 기억에 미련을 두진 않습니다. 되레 허접한 뇌세포를 탓할 뿐이에요. 클라우드 구석에서 갑자기 등장한 기억에 세렌디피티를 느끼거나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복기하기도 합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가 독해요. 복기에 들어서면 늪에 빠져 발을 빼내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죠. 하지만 어쩝니까. 기억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을. 의지대로 기억을 삭제시킬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꿈꿉니다.      


바라산에 오르기 전, 옆자리 친구가 친구 목록을 정리하던 모습이 기억나요. 방구석 여포처럼 옆에서 지켜봤네요. 보아하니, 무언의 기준에 따라 한 명씩 숨겨지거나 삭제됐어요. 친구는 찰나의 순간을 고민하다가 처리하기도, 가차 없이 처단하기도 했습니다.


관계 다이어트인 셈일까요. 디지털 숙청은 몇 분 만에 끝났습니다. 준엄했던 표정은 이내 아메리카노 한 모금으로 풀렸습니다. 숙청된 데이터들은 사이버 생활권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어요. 기록의 시대에 사는, 흔한 우리 모습일까...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기록 세탁은 누군가에겐 일상일까요.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사진을 지우고, 팔로우를 끊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보냈던 메시지를 상대가 알아채기 전에 사라지게 만듭니다. 어젯밤 정신 상태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삭제한 사실이 남지만, 차선책이라도 택해야 하는 법. 기록을 지우는 행동은 슬프게도 이제 어색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기록은 기억을 스크린에 박제시켜 그것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고 한데요. 그 의지의 강도가 어떻든지 간에, 기록은 꽤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쪼록 행복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기록된 기억에 종언을 선언하는 결단은 간단합니다. 그래서 잔인해요. 기록은 터치 몇 번만으로 완성됩니다. 같은 이유로 삭제도 간편해요. 그러니 기록에 안녕을 고하는 모습은 얼마나 잔인한가요. 영겁의 기억이 단 몇 초에 증발하는 셈.


기록 삭제의 결과는 지우는 사람과 지워진 사람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하지만 결과에 슬퍼하는 관점이 각자 달라요.


지워진 쪽이 아픈 이유는 기록 지우기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겠죠. 삭제 과정은 오랜 시간 고민에 말미암아 이뤄집니다. 술기운에 종언을 선언했더라도, 삭제 버튼을 누르는 찰나의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져요. 잊고자 하는 결심을 먹을 때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려요. 조엘이 기억의 끝자락에서 발버둥 쳤던 이유도 같겠죠. 클레멘타인이 야속할 따름입니다.


반면 지운 쪽이 슬픈 이유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사라진 기록은 되살릴 수 없잖아요.  

     

우리는 기억을 지우려 기록을 지웁니다. 지우는 사람에게나 지워지는 사람에게나 가혹한 처사. 이는 돌이킬 수 없어요. 한 번 지워지면 그날로 끝입니다. 0과 1의 세계에는 슬프지만 예외가 없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다행히도 머릿속 클라우드는 예외를 품습니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끔 쓸만해요. 그러니 지우는 사람이나 지워지는 사람 모두 아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 통나무 벤치에 앉으면 기억이 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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