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씨앗을 들고 인혜는 한참을 서 있었다. 따릉 따릉. 자전거가 비키라는 소리를 내기 전까지도 인혜는 갈팡질팡이었다. 그 바질씨앗은 좀 전에 장미꽃 열 송이를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바깥에 죽 늘어놓은 흰 원형 플라스틱 통에 담긴 꽃들이 보였다. 인혜는 장미향에 이끌려 무심결에 화원의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장미 종류가 많았다. 가장 눈에 띈 건 겉은 흰색인데 안쪽이 붉은 잎이었다. 꽃을 들고 옆을 보면 흰색이지만 봉오리 정면은 붉은색이었다. 그저 한 가지 색으로 피어난 장미보다는 욕심이 많아 보여 민혜는 그 장미를 열 송이나 사버렸다.
지금 인혜의 장바구니에는 토마토와 대파와 송이버섯과 마늘, 올리브오일 그리고 바스락 거리는 비닐로 둘둘싼 장미 열 송이까지 넣어 묵직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엔 공기만큼 가벼운 바질씨앗이 있다.
사실 아까 길에 서서는 바질씨앗을 버릴까 말까 했었다. 한지처럼 얇은 요만한 종이 한 겹에 겨우 싸여있는 씨앗은 그녀가 원한게 아니었다. 원하지 않았던 작은 생명. 버려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이 자전거가 지나갔고, 그녀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게 되었다.
누가 어깨를 툭툭 쳐서 보니 인혜의 어깨가 기울도록 무거웠던 그 장바구니가 보도블록에 내동댕이 쳐 있었다. 주먹만 한 토마토가 저만치 굴러가 있고, 올리브 오일이 담긴 유리병이 깨져 장바구니는 온통 기름투성이었다.
인혜는 움켜쥔 손을 펴 보았다. 하도 꽉 쥐어서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고 빨개진 그녀의 손이 보였다. 그리고 구겨진 종이 안에 오히려 더 깊이 숨어버린 안전한 바질의 씨앗이 보였다. 장미. 하얗고도 붉은 장미는 자전거에 짓이겨서 검붉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