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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Sep 27. 2023

기부는 널리 알려야 제맛

맞는 것 같기도...

엄마! 우리가 이거 다 모으면 필드 트립도 갈 수 있고 재밌는 거 많이 할 수 있대! 이거 빨리 하자~ 제발?


응.. 그렇겠지. 돈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지. 근데 우리 PTSA 가입하면서 기부 이미 했거든? 담임선생님 아마존 레지스트리 들어가서 또 기부했거든? 이건 또 뭐래니.


기부 목표치와 달성 시 상품에 대한 친절한(?) 안내


개학하고 2주 정도 지나자 아이가 웬 봉투와 안내문을 들고 와서 신나게 말했다. 이걸 빨리 해야 한다고. 슬쩍 보니 기부하라는 거 같은데 우린 이미 했으니 그냥 넘어갈까 싶었다.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더니 누구누구는 오늘 프라이즈를 받았다고, 본인도 프라이즈를 받고 싶다고 졸랐다. 안내문을 다시 들여다보니 기부받은 아이에게 점심시간에 선물을 뽑을 기회를 준다고 진짜 쓰여 있었다. 뭐지 이게. 자고로 기부라 함은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기부를 해도 떠벌리지 않고 어쩌다 알려지기라도 하면 손사래 치며 겸양의 자세를 보이는 게 미덕 아니었던가. 그것은 너무나 한국적인, 그리고 오래된 마인드였나 보다.


기부는 알려서 독려하는 거야


안내문에 적힌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가입한 뒤 아이 정보를 등록했다. 친척이라곤 아무도 없으니 내 계정으로 가입해서 남편한테 기부요청을 보냈다. 어차피 셀프기부라 그 사이트에서 바로 기부하고 싶었는데 꼭 이메일을 보내서 이메일을 받은 사람이 링크를 열어서 기부해야 한단다. 하라는 대로 따라가 보니 80달러는 모자랄 것 같은데 120달러를 내는 게 어떠냐(목표치 달성을 위한 1인당 평균 기부액 100달러)고 은근 종용하고 있었다. 참 센스가 있네. 회사에 기부 매칭 프로그램이 있는 경우 기부하는 금액만큼 회사에서도 기부를 해주니 활용하면 좋을 것 같고, 세금공제 영수증을 발행해 주길래 잘 간직해 두었다.


기부한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밝은 얼굴로 본인이 받아 온 장난감을 자랑했다. 점심시간에 호명되어 당당하게 나가서 골라왔다고 한다. 덕분에 집에 가서 선물 받고 싶다고 할 아이들이 또 생겼겠구나. 아직까진 이런 부분이 약간 거부감이 든다. 애들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기부받으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도 기부를 또 하게 됐으니 아주 잘 먹히는 전략임은 틀림없다.


이번 Orange Ruler는 무난하게 기부 목표액을 달성할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이 마감 하루 전인데 확인해 보니 99%를 찍었다. 안타깝게도 아이 반의 기여도는 조금 낮지만. (그렇다. 여긴 반별로 누가 더 기부 많이 했나 모두 공개한다. 이것도 나중에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부유한 지역의 어느 학교는 유람선을 빌려 기부 경매를 한다고도 하니 이 정도의 행사는 아주 평범한 축에 드는 것 같다. 한국사람인 우리만 좀 놀랐을 뿐. 무상교육이지만 절대 무상이 아닌 미국학교를 제대로 경험해 보며, 늘어난 재정으로 아이들의 일 년이 더 다채롭고 즐거워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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