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ka Mar 21. 2024

이 정도면 이웃사촌인가

여기 와서 생기다니

mid-winter break 첫날, 종일 아이와 놀다가 4시쯤 다 같이 자유수영을 하러 갈 계획이었다. 수영복까지 다 입고 남편이 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시동이 걸리질 않았다. 점프스타터를 꺼냈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배터리가 반 밖에 없었다. 일단 사용을 해봤는데 차에 전원이 잠깐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버렸다. 점프스타터를 충전기에 꽂아놓고 아이에게 일단 저녁을 먼저 먹으면서 다 충전되기를 기다릴 건데 너무 늦으면 수영장을 못 갈 수도 있다고 하니 크게 실망을 했다. 아이의 실망하는 모습에 가만있지 못하는 아빠는 갑자기 A(아이의 동네 친구)네 가서 스타터를 빌려보겠다며 나갔다. 아니, 저 이가 저럴 사람이 아닌데 아빠란 대단하구마.


A네에도 스타터가 없다면서 돌아왔는데 A의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남편(A의 아빠)이 곧 퇴근해서 오는데 그 차랑 연결해서 시동을 걸어줄 수 있으니 차를 차고 밖으로 꺼내놓으라고. 하지만 우리 집 남자는 시동이 안 걸리는 차를 움직이는 법을 몰라서 얼마 뒤 도착한 A의 아빠가 요렇게 저렇게 해서 차를 꺼냈다. 그러더니 시동을 걸어줬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A네 덕분에 그날 수영장 가서 잘 놀고 우리 집 어린이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어느덧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6년이 넘었다. 결혼하고 살아본 지역 중 가장 길게 살고 있는 셈이다. 살다 보니 인사하는 이웃도 생기고, 아이 친구네라서 더 긴밀하게 지내는 집도 생기고, 한국어가 통해서 괜히 마음이 가는 사람도 생겼다. 어떤 날엔 우리 집에 놀러 온 지인의 차를 보고선 바퀴 공기압이 너무 낮아 보인다며 건너편 집 아저씨가 기계를 가져와서 직접 공기를 넣어 주기도 하고, 잘못 배달된 우리 집 택배를 몇 번이고 가져다준 고마운 먼 이웃도 있었다. A는 심심하면 우리 집 벨을 누르고 같이 놀자고 하는데 어떤 날엔 A를 데리러 온 A의 오빠도 들어와 같이 놀기도 했고, 엄마가 한국인인 E는 꼬꼬보다 어리지만 자동차카트 운전을 잘해서 꼬꼬를 태우고 동네를 누비곤 했다. 처음엔 너무 낯설고 무섭고 긴장되어 아무도 나를 아는 체하지 않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다. 시골 주택가라 그런지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 동네랑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어서 가끔은 여기가 미국인 걸 잊기도 한다. 아이가 없었다면 여전히 투명인간처럼 살고 있을지도 아니 애저녁에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는데, 아이가 있어서 부모라는 옷을 입고 이 사회에 섞일 수 있었다.


떠날 마음을 먹으니 좋았던 것들이 더 떠오르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물론 있었다. 우리를 무시하는 불편한 이웃도 있고 집 앞에 개똥을 자꾸 두고 가는 몰상식한 이웃도 있다. 그래서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좋은 사람만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앞으로 우리의 발자국이 어디로 향하든 이곳 생활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우리 가족의 희로애락이 가득했던 이 시절을.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라도 가야만 할 것 같은 방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