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만드는 마음
논문을 쓰며 ‘책’에 대해 모두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고, 읽는 동기, 구입하는 동기가 다른 것도 알게 됐다.
그럼 책 만드는 마음도 모두 다르겠지. 그래서 써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정말 좋아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몇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오래오래 생각해온 주제니까. 왜 책이었을까.
어렸을 때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난 청각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는 대신, 언어, 추론은 좋은 편이라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것보다 활자로 된 책이 훨씬 이해하기 편했다. 책을 통해서 사람을, 세상을 배웠다. 난 용돈 들고 서점 가던 초등학생이었다. (와 나 완전 대단한데?) 읽을 책이 없으면 집에 있는 각종 전집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잘 읽으니 엄마는 전집을 아낌없이 들였다. 수능 지문으로 나온다는 영업사원 말을 듣고 엄마가 산 한국 중단편소설전집도 난 재미로 몇 번씩 읽었다. 그땐 읽을 게 없어서 본 거 또 보던 시절.
고등학교 때, 꽤 지속적이고 교묘한 괴롭힘을 당했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학폭을 넘어 형사처벌 수준인데.. 그땐 왜 방법이 없어 보였지) 자퇴는 부모님 억장 무너뜨릴 것 같아 생각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방학 때마다 책 속에 숨었다. 그때 나를 살린 건 스칼렛이었다. 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말고 후속작 알렉산더 리플리 <스칼렛>의 스칼렛. 나에게는 강인한 롤모델이 필요했고, 덕분에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여름방학 어느 오후, 책을 읽다가 편집자라는 직업이 있는 걸 알았다. ‘와! 이런 직업이 있다고? 작가랑 같이 책을 만든다니.. 출판사에서 일해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잡코리아에 들어가 이력서를 썼다. (생각하면 일단 실행하는 사람) 자기소개란에는 딱 한 줄 적었다.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 외에 딱히 쓸 말도 이력도 없었던 게, 난 편집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방금 알았으니 준비된 게 있었을 리가.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을 뽑고 있는 출판사가 딱 한 곳 있어서 이력서를 제출했다. (딱 한 곳이었던 이유는 보통의 편집자 구인공고는 잡코리아 말고 다른 곳에 올라온다. 난 그조차 몰랐다)
그곳은 인문서를 많이 내는 전통 있는 출판사의 서브브랜드였고, 그 팀의 편집자가 자주 그만뒀던가.. 아님 학력 이력 좋은 분들을 뽑아도 뭐가 안 맞았던가.. 하던 찰나에 웃기는 이력서가 하나 들어온 것이다. 국문학과도 아니고 졸업도 안 했고 자격증이라곤 운전면허밖에 없는 애. ‘얘 얼굴 좀 보자’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 자기소개 덕에 일단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그간 닥치고 이것저것 많이 읽은 건 사실이었어서 대화가 됐다. 내 입장에선 책만을 주제로 한 대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면접이었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아.. 면접 3시간 본 이유를 지금 깨달음. 책 이야기가 신난 대학생이 면접관을 붙들고….)
나는 출판사가 궁금했고 복학까지 3개월 남짓 딱히 할 일이 없었고, 그곳도 차비 수준의 열정페이만 줘도 일하겠다는 알바생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서로 별 기대 없이 그렇게 출판계에 발을 들였다. (첫 직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땐 몰랐다..)
워낙 일손이 없어서 입사 첫날부터 편집 실무에 투입됐다. (와 이것도 운 좋았..) 방학이 끝날 때쯤 그 팀에서는 계속 편집자로 일해달라고 했다. 난 인건비가 저렴하고 하루에도 열 번씩 편집장님을 찾아가 궁금한 걸 물어대는 눈치 없지만 열정적인 신입직원이었으니까. 하루에 열 번씩이나 찾아가 모르는 걸 배우면 실력도 쑥쑥 올라갔겠지. 난 남은 한 학기 수업 일부를 야간으로 옮기고 북에디터가 되었다. (그리고 한 3년은 아주 가끔 후회했..다 직업을 이렇게 정해버리다니)
책이 사람 인생을 바꾼다고 믿는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동아줄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걸 경험한 나는 책을 절대 대충 만들 수가 없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