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주 Jul 22. 2023

헤어짐을 마주하는 자세

매일 퇴사를 외치던 그녀, 결국 남는 자가 되었다

안녕, 동료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의도치 않게 바뀐다. 자의와 타의가 섞인 마지막 인사를 경험했다. 떠나는 분들의 범위가 광범위해서 이름만 아는 분부터 가장 많이 일하고, 이야기 나누었던 동료도 떠났다. 원래 공감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없이 슬퍼지고 슬퍼졌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니까, 이런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라는 주변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몇 번을 겪어도 적응할 수 없을 거라고 이 글을 쓰면서 확신이 들었다. 적응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날들의 고군분투 기록을 남기며 정리해 본다.


내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

    떠나는 사람들에게,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평소라면 전혀 사지 않을 꽃을 샀다. 추억을 남기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정리하는 마지막 날에 예쁜 꽃 한 송이, 감사함을 담은 마음 하나 더 가져가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꽃이 시들어 형체는 사라지더라도, 내가 전하는 감사함은 오래 남게 될 수도 있으니까 슬그머니 퇴근하는 길에 꽃을 예약했다. 그래서 떠나는 사람들의 마지막 날 혹은 인사할 수 있는 날에 꽃을 선물했다. 


매일 퇴사를 외치던 그녀, 남는 자가 되었다

     인사가 이어졌다. 갑자기 티타임이나 점심을 먹자는 연락이 오면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슬퍼졌다. 싫어요. 그런 거라면 같이 밥 안 먹을래요. 우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마지막 티타임을 하기로 한 동료가 보낸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은 '매일 퇴사를 외치던 그녀, 남는 자가 되었다'였다. 티타임 혹은 점심 약속을 받을 때마다 슬펐는데 이 티타임 제목을 읽고 웃었다. 그러게, 나도 내가 남을 줄 몰랐어요. 마지막까지 위트 있게 인사하는 자리를 마련한 동료가 고마웠다. 한동안 티타임이 가득했다. 점심 약속이 줄줄이 있기도 했다. 떠나기 전,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를 이야기했다. 같이 울고 웃고 차마 말 못 했던 것도 털어두었다. 


다음에 또 만나요, 다음에도 같이 일해요! 꼭 연락해요! 

    직접 만나지 못했다면 메신저라도 남겨주며 함께한 여정의 인사와 앞으로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같이 일하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동료에게 다음에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았다는 게 기쁘면서도 슬펐다. 인생의 목표 중 나와 일하는 동료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함께 일하고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걸 이뤘다는 검증이 되면서 내가 더 많은 퍼포먼스를 냈다면,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주변도 같이 인정받고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자주 들었다. 물론 그런다고 지금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과거를 되짚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보면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자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를 대하는 태도와 나아가서는 앞으로 내가 어떤 PM이 될 건지도 많은 고민을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목표에서 한 발 더 포함해서 지금 동료에게 최선을 다해서 감사함을 표현하자, 고민이 있어 보이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옆에서 들어주고 도와주자는 다짐도 많이 했다. 표현에 인색할수록 후회만 남고, 할 수 있는 걸 상상만 하고 안 해주는 게 후회로 돌아오기도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하지 못한 약속들도 아쉬웠고 슬펐다. 여러 가지 슬픔 속에 내가 못해준 것들이 떠올랐다. 

    가장 나를 슬프게 했던 건, 웃으면서 인사한 동료들의 빈자리였다. 빈자리가 많아지고 나와 아침 인사를 나누던 동료, 일을 하면서 의견을 나누고, 개발을 함께 고민해 주던 동료들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이때 동료를 아주, 많이, 엄청 사랑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그렇게 사랑하는지 몰랐는데! 이전 회사에서 이직을 할 때도 웃으면서 인사했고, 이렇게 슬픈 일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일만 했고 사람 간의 관계는 깊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일만 한다고 했지만 모든 게 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저도 쉬다 올게요.

    도망이기도 했다. 동료들이 정리하고 떠나는 기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어수선한 시간과 그 공간을 버티면서 일을 할 수 없겠다 싶어서 리드에게 잠시 쉬고 오겠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주변에 휘둘리는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초기에는 할 일은 해야 한단 생각으로 일을 했는데 나중에는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를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서 떨어져서 나를 돌아보고, 회복하고 싶었다.

    그동안 달려오면서 지친 것도 있으니 다른 사람도 일 할 수 없이 혼란이 가득할 때 쉬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 연차를 털었다. 

    그렇게 금요일 오후, 당장 다음 주 휴가를 내고 집에 가는 길에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친구들과 고민하다 토요일에 일어나서 비행기표를 끊었다. 월요일 밤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와 여행 일정동안 무엇을 할지 정리했다. 국내 여행도 아니고 해외여행을 이렇게 가버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흘러가는구나

    살면서 마주 해야 할 일에서 도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딱 한 번, 대학교 3학년을 마칠 때였다. 3학년이 되어서 학과 학생회장을 맡으며 너무 힘들었고, 더 이상 학교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휴학했다. 4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이기도 해서 총학생회와 졸준위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쉬기로 했다. 그때도 그렇게 스트레스의 원인과 멀어져 휴학을 하고 일을 하고 홀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었다. 다양한 환경과 문제에 시달렸던 그 시절과 비슷한 스트레스였구나 싶으면서 그때보다 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인생에서 다시없을 만큼 이런 가격에? 하는 값비싼 비행기를 끊고 여행을 갔다.

    사실 망설임도 많았다. 이 가격에...? 하는 가격이고 준비도 없었다. 목적이라곤 그냥 한국, 회사에서 떠나고 싶다. 망설이다가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이고, 왜 망설이는지 정리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도전이기도 했다. 결국 친구가 좋았다고 하는 여행지를 골라서 애매했다. 회사에서 하루를 30분 단위로 할 일을 적고, 일주일 단위로 큰 계획을 나누면서 일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이렇게 가도 될지 친구들도 걱정했다. 모든 게 도망이자 한 편의 도전이었다.

    근데 또 흘러갔다. 영어를 못 하지만 그래도 주문도 하고, 길도 찾고, 관광지도 돌아다녔다. 모래 썰매도 타보고, 배를 타고 나가서 돌고래도 직접 봤다. 모래 썰매는 대부분 3-4번 탄다는데, 10번이나 타고 왔다. 가이드분이 자기가 본 여자 여행객 중에는 최고 기록이라고 했다. 뿌듯했다. 와인 농장에 가서 와인을 시음해보기도 하고, 오페라 하우스에서 인생 첫 오페라 '아이다'를 보기도 했다. 영화에 나올 법한 대학교 가서 대학생인 척 커피와 빵을 사서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루에 2-3만보를 걸으면서 공원을 걸었다. 시드니를 걸어 다니면서 한국을 잊었다. 가능할까 싶었던 게 다 가능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호의를 받아보기도 했다. 잠시 몇 시간 만나서 같이 투어를 한 사람들과도 여러 이야기를 하며 같이 웃고 떠들었다. 막상 하기 전에는 무섭고 겁먹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풀렸다. 

    사실 여행을 가서도 일을 했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까 남기고 온 일이 걱정돼서 먼저 메신저를 통해 종종 업무 연락하며 일을 했다. 대신 짧게 메신저로만 가끔 일하고, 해외라서 그런지 걱정이나 슬픔도 없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할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깊고 많은 고민을 하진 않았다. 잠시 다른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을 찾아 회복했다. 

    여행 내내 오늘도 내가 해냄! 자존감과 자신감을 얻고 왔다. 결국 세상은 다 흘러가고, 겁을 내거나 두려워해도 다 해결된다. 도망간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을 수 있다. 도망간 곳에 낙원은 없겠지만, 낙원으로 갈 수 있는 힘을 회복할 순 있다. 인생은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기회와 도전의 연속이고 이제 다시 시작이다. 


시드니 여행 내내 많이 들었던 노래 

직면할 시간

    한국으로, 회사로 돌아왔다. 남은 사람들이 이제 해야 할 일을 마주할 시간이다. 무슨 문제인지 정의하기도 어렵고 여전히 혼란스럽다. 여행 내내 온갖 생각을 끝내서 답을 정했다!라고 말하기엔 여행만 즐기고 왔다. 

    현재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심리적으로는 예전보단 나았다. 여행에서 완벽한 답과 정리를 하고 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도망가고 싶단 생각은 안 들었다. 다시 웃음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한 번 가보자고' 상태가 되었다. 

    돌아오니 소속 팀이 변경되고, 원래 맡고 있던 도메인을 내려놓게 되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리드에게 어느 조직과 새로운 도메인 모두 상관없다고 말해서 변경된 내용을 듣고 그렇구나~싶었다. 그러면 이제 무슨 일을 할지 생각했다. 주변에서 괜찮겠냐고 물어보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문제와 사람을 만날 텐데, 새로운 도전과 문제를 겁내는 무의미하지 않나 싶어서 회사가 필요한 곳에 이동시켜 달라고 한 거라서 괜찮다고 안심 아닌 안심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조직에서 적응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회복 탄력성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단 사실도 깨달으면서 나는 어떤 PM이 되고, 동료가 될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예전에도 고민하던 질문이지만 이번에는 앞으로 일을 하면서 실무와 피플 매니징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가져갈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더 깊은 고민을 할 수 있게 돼서 어떤 면에서는 좋고, 이런 경험 자체를 했다는 부분에서 여전히 괴롭기도 하다. 


다시 동료들에게 인사할 수 있도록

   다들 뛰어난 사람들이니까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서 열심히 하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주변에서도 IT 업계는 좁으니까 다시 만난다고 말해주면서 위로해 주었다. 그러니 나중에 다시 인사할 수 있길 바라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항상 문제는 존재하고, 그걸 풀어나가는 게 내 할 일이고 선택이다. 그러다 보면 다시 만날 거라고 믿는다.




    혹시나 나의 동료였던 이들이 이 글을 본다면 다시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함께 일해서 행복하고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저도 다시 같이 일하고 싶어요! 꼭 다시 만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6개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