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을 떠나보내고 25년을 마주하기
정말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정리해보자
▶︎ 한 줄 회고 : 너는 왜... 그런 걸 봐...? 왜 사서 고통받아...? 이렇게라도 고통을 채우지 않으면 안 돼...
- 올해도 CGV와 영화 스터디(넷플릭스)로 약 50편의 영화를 보았다. 이전에는 노션에서 영화 감상문을 썼는데 노션의 접근성이나 문서가 많아질 경우 버벅거림(무료 버전의 한계) 등으로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SNS 플랫폼으로 변경했다. 넷플릭스 파티를 통해서 같이 본 영화를 포스터와 함께 저장하고, 해당 게시글에 각자 덧글(멘션)을 달아 감상평을 남기는 식으로 스터디 방법을 바꾸었다.
- 작년보다 CGV 아트하우스에서 해주는 예술 영화를 많이 보고 혼자 공포 영화도 도전해 보았다.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를 찾아다녔다. 속된 말로 스불재, 혼자 머리를 깨고 다녀서 친구들이 도대체 왜 그런 영화를 보고 혼자 괴로워하냐고 놀렸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불안과 고통을 더 크게 느낄 것 같았다. 한 곳에 매몰되지 않게 자꾸 다른 곳에 정신을 흩뿌리려는 나름의 전략이기도 했다.
마음을 힘들게 했던 영화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고작 몇 걸음 차이로 비명과 화려한 꽃밭을 오가는 상황의 잔인함과 어둠 속에서 따뜻한 빛을 내는 존재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들다 위로해 주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반나절 정도 기 빨려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영화는 로봇드림, 와일드 로봇. 마침 로봇드림은 구조조정을 통해 동료들과 헤어졌을 때 보았고, 와일드 로봇은 취업 활동을 하면서 막막함과 불안을 가졌을 때 보면서 위로받았다.
큰 결정을 하게 해 준 영화는 아버지의 세 딸들. 영화를 보고 언니랑 해외여행을 결심했다.
가장 최악의 영화는 서브스턴스.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보는 내내 괴로웠다.
▶︎ 한 줄 회고 : 백수가 맞나...
- 21년부터 활동한 DND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직접 DND 해커톤을 주최해보기도 하고 그 경험으로 다른 해커톤 행사 자문을 하고, 멘토가 되어보기도 했다.
- 클래스 101에서 만난 인연들이 이어져서, 창업을 하는 분들을 도와주게 되었다. 디자이너 스킬을 살려서 요구사항을 듣고 기획 문서 작성, 디자인으로 바로 산출물을 만들어 개발자에게 넘기며 0 To 1을 진행하고, 앱스토어 출시까지 했다. 매 달 어떤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백수가 맞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일을 안 하는 게 아니었다.
▶︎ 한 줄 회고 : 재밌었다 그치
- 일본(오사카), 스페인(바르셀로나), 제주도, 대전을 다녀왔다. 대전에서는 성심당 망고시루를 먹으며 야간 등산하고, 제주도에선 서핑과 스노클링, 한라산 등반의 다양한 도전을 했다. 수영을 배운 적 없고, 친하지 않아서 물을 무서워하는데 덜컥 서핑 강습 신청하고,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 물에도 못 뜨는데 그냥 했다. 뭐 죽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근데 서핑은 꽤 잘한다는 칭찬 아닌 칭찬도 들었다. 시기가 애매해서 사람들이 없을 때 신청한 덕에 1:1 강습이 되어버려서 열심히 한 시간 정도 탔다. 처음에 일어나는 걸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전 그냥 일어나라니까 일어났어요... 끝에서 잘 착지하는 법, 파도를 읽고 보드에서 방향 바꾸는 건 여전히 무서워서 계속 실패했지만 도움을 받아 파도를 타고 일어나서 해변가까지 가는 건 문제없었다. 역시 해보면 된다고 다시 깨달았다.
- 일본은 원래 23년부터 아는 언니랑 같이 가기로 했던 여행이었다. 근데 이렇게 백수가 되어 갈 줄 몰랐지... 23년에도 한차례 구조조정으로 머리와 마음이 복잡했을 때 힐링으로 갔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이제 내가 당사자가 되어서. 같이 간 언니가 많이 도와주고 챙겨줘서 즐겁게 다녀왔다.
- 인내심이 강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라산을 오르면서 진짜 울고 싶고 포기하고 싶었다. 하루 전에 갑자기 선택한 등산이라서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무모하게 오르긴 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물도 부족했다. 운동을 소홀히 해서 체력이 떨어졌다는 걸 느끼는 동시에, 절반 이상 왔는데 또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올라갔다. 백록담에 닿았을 때는 맑은 편이었는데, 밥을 먹고 내려갈 때는 또 흐려졌다. 데크 계단이 끝날쯤에는 다시 구름이 걷히고 맑아지는 걸 보면서 산의 날씨는 정말 변덕이 심하구나. 왜 등산을 할 때 자연이 허락해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아버지의 세 딸들을 보고, 가족과 함께 하는 추억을 만들 수 있을 때 만들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니랑 일주일간 바르셀로나 여행을 갔다. 되지도 않는 영어와 번역기로 쇼핑을 하고, 내내 가우디 투어를 돌면서 유럽 여행을 했다. 도중에 네이버 불합을 받아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언니와 함께할 수 있어서 값진 경험이 되었다.
▶︎ 한 줄 회고 : 재밌었다 그치2
- 회사와 직무 선택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다. 회사를 선택할 때 인지도 있는 회사! 그리고 몇 가지 요소를 보기도 했지만 일단 내가 흥미가 있는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소신 지원했다.
- 나름 서류합격은 잘 되었다. 주변에 좋은 분이 많아 추천인이 되어주거나, 커피챗 연결도 많았다. 덕분에 정말 어지간한 회사 커피챗/면접은 다 보고 다녔다... 1,2차 면접을 계속 보면서 세상 참 힘들구나 다시 느꼈다. 채용 시장이 칼바람 분다는 말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느꼈다. 상반기 결산에서도 적은 것처럼 면접에서 나름의 상처도 받기도 했고 지원 전 이미지와 면접으로 이미지가 많이 바뀐 곳도 있었다. 꼭 가고 싶었던 곳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이유를 고민하고, 주변 시니어와 HR관련 분들에게 상담하니 몇 가지 이야기와 피드백을 들려주셨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어 웃기도 하고, 나름 억울하기도 했다. 어떤 분께서는 '할시는 거기 떨어진 게 오히려 잘된 거 같은데요? 그 회사 컬처핏이랑 정말 안 어울려요ㅋㅋㅋ'라는 말로 위로와 함께 타인이 보는 내가 추구하는 분위기나 태도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 내가 바라는 것,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동안의 경험을 타협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24년 동안 다양한 미련을 갖지 않고 계속 조율하고 나를 찾아갈 수 있는 도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이나 면접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수 있고, 커리어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 사전 과제를 받거나, 최종 합격을 받았지만 망설여지는 곳도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했다. 후회하는 건 아닌가, 그냥 회사에 들어갔어야 했나?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옳은 선택이었다. 후회는 없다.
- 최종으로 함께 하기로 한 회사는 25년, 1월부터 출근을 하게 되어서 참 타이밍도 좋게 정리되었다.
▶︎ 한 줄 회고 : 심장이 뛰는 운동을 다시 하자
- 상반기까지는 헬스장을 다니고, 농구도 계속했는데 하반기에 대외활동이나 면접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하지 않았다.
- 하반기에 홈트로 집에서 매일 버피 200개를 시작하기도 했었다. 예전엔 그런 걸로 근육통이 생기지 않았는데 이젠 근육통이 생긴다. 근손실이 얼마나 일어난 걸까...?! 경악하면서 얼른 취업해서 다시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야겠다 다짐했다.
1월부터 3월까지 열심히 회사에 일했다. 그리고 정리했다. 정리되기도 하고.
4월부터 5월까지 친구나 동료에게 위로를 받고, 일본 여행을 갔다. 이때는 나도 많이 힘들어서 늦잠도 자고, 무엇을 새로 하기보단 이미 정해진 이벤트나 생일, 여행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처음으로 일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냥 흘러갔다.
6월부터 7월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 영어 학원을 다녀보았다. 죽는 줄 알았다. 이제 공부하는 게 힘들다... 체력을 꽤 많이 쏟는 일이구나 느끼면서 다른 걸 집중하는 게 힘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창업을 도와서 기획과 디자인을 계속했다.
8월부터 9월까지 해커톤 자문이나 대외활동을 열심히 했다. 언니네 강아지가 아파서 24시간 케어를 하면서 지내기도 했다. 제주도를 다녀오고, 추석을 보내니까 9월이 끝났다.
10월부터 11월까지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했다. 거의 매일 커피챗이나 면접을 보기도 했다. 서류 합격 소식을 들으면 기뻐하고, 불합격을 받으면 슬퍼하면서 나름 행복과 불안이 오가는 시간을 보냈다. 이때, 영화를 많이 보면서 취업에 대한 불안을 분산시키려고 하기도 했다. 사전 과제를 하면 시간이 참 빨리 가기도 하고, 와중에 언니와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바르셀로나로 1주일 여행을 가기도 하며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12월에는 시국이 시국이라 다른 의미로 정신없었다. 주말에 여의도와 광화문에 나가기도 하고, 여유가 생긴다면 후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취업 활동도 계속하다가 최종으로 내가 함께 할 곳을 정했다.
헤매고 방황하는 만큼 내 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의 세계가 다른 때보다 더 넓어진 한 해였다.
커피챗과 면접하며 많이 배웠다. 단순히 직무에 대한 정보와 지식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개인의 삶에 대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그런 고민을 계속 생각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다. 내 부족한 점을 돌이켜보고, 회피하던 약점과 불안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무작정 나열해 기록해 본다. 스노클링이나 서핑을 하면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 있는데 그것도 성공했잖아요. 다른 게 뭐가 무서우신 거죠? 대기업에 갔어요. 그다음에는요? 지금 당장말고 그 다음, 두 번째 커리어를 생각해 봐요. 회사 이름만 남기는 선택 말고, 자기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걸 선택해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 감사하고 감사했다. 불안과 방황을 하는 나를 계속 챙겨주고 인정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행복하게 24년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갖고 쉴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이렇게 쉬어갈 때가 있어야 다음에 또 열심히 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초반에는 취업을 하지 않은 것도 있다. 누구보다 후회 없이 놀았고 도전했다. 당장 그날에는 불안하고, 우울하고, 슬퍼서 울기도 했고 행복해서 웃고 해가 뜰 때까지 놀기도 하면서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했다. 행복이 높아진 만큼 불안도 깊었지만 그만큼 즐거웠다. 롤러코스터의 높이만큼 즐거움과 공포도 높아지듯.
그렇지만 돌아오는 25년에는 롤러코스터보단 회전목마를 타고 주변을 즐기는 삶을 보내고 싶다...
이번에는 줄글이 아니라 표로 만들어보았다.
25년, 조바심을 버리고 여유 있게 나를 완성하는 한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