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사회
나는 이공대 출신이지만, 코딩은 하나도 못하는 자연돌이이기 때문에 업무에의 기똥찬 아이디어가 있어도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너무 답답한 나머지 간단한 코드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시간만 조금 들여 공부하면 이렇게 편해지는 걸 여태 왜 안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문제 해결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을 더 좋아해 실행을 먼저, 각론을 나중에 배우는 편이다. 때문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조금만 변주가 있어도 끙끙대며 문제를 풀곤 한다.
오늘도 그랬는데, 보통의 개발자라면 오분이면 끝낼 스크립트를 삼십 분을 낑낑 거리며 짜고 있었다. 이유도 별거 없었다. 매일 아홉 시 반까지 해야 할 보고를 스프레드시트를 참조하여 자동으로 쏘고 싶었다. 물론 주변 수많은 개발자에게 요청해도 괜찮았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최근 간단한 자동화 몇 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기에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그 와중에 Chat GPT가 코드를 고쳐준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고, 워낙 간단한 코드였기 때문에 시험 삼아 도움을 청했다. Chat GPT는 특정 메소드가 잘못된 객체에서 호출되고 있다고 하며 구체적으로 코드를 수정해 주었다.
이것도 꽤 놀라웠지만, 그다음이 더 인상적이었다.
코드 오류는 수정됐으나 문자열만 출력되고 데이터 변수를 출력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다시 질문을 던지니, 아래와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 메소드는 2차원 배열로 반환하고, 첫 행을 헤더로 인식을 하여 실제 데이터가 있는 범위는 두 번째 행부터 시작하니, 인덱스를 확인해 보라'
이때부터는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래처럼 추론이 필요한 방식으로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0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내가 쓴 범위에 데이터가 없을 수 있다는 거지?'
Chat GPT는 놀랍게도 내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아래와 같은 답변을 주었다.
'맞습니다, OOO 메소드로 데이터를 가져올 때는 0행 0열부터 시작하는 2차원 배열로 반환됩니다. 열 제목(헤더)이 있는 경우, 데이터의 첫 행은 0이 아니라 1이 되며, 열의 경우도 첫 열은 1이 아니라 0이 됩니다.'
생산성을 높여주는 좋은 동료를 만난 듯 한 생각에 흥분되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Chat GPT의 대답은 '어떻게 하면 루틴한 업무를 줄일 수 있을지'라는 사람의 질문에서 촉발되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이 정해준 배경과 방향 안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만약 내가 정확한 질문을 하지 않고, 적절한 배경과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더라면 Chat GPT는 기본적인 수준 이상의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점점 더 '좋은 질문'이 중요한 사회가 되어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적절한 질문을 한다면, 인공지능은 효과적인 답을 굉장히 빠르게 제공할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빼앗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인공지능을 잘 다루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들이 무서워졌다.
비즈니스에서는 모호한 수준의 경쟁 우위는 더더욱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의 민족의 탁월한 고객 기반, 토스가 수년을 쌓아온 금융 관련 데이터베이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원가경쟁력처럼 절대적 시간이나 정보, 돈으로 구축된 경쟁우위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처럼 보인다.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뺐을 순 없겠구나'라는 생각은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인공지능이 나보다 내 일을 더 잘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 십장의 품에 WD-40을 몰래 찔러 넣어주며 편한 일을 구걸하고 있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