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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Oct 22. 2022

언니, 워킹맘 되보니까 어때? 정말 시간이 없어?

휴, 자세히 대답할 시간도 없단다. 

우리는 모두 시간이 없다. 직장인도 시간이 없다. 자영업자 사장님도 당연히 시가닝 없다. 얼마전 평소 좋아하는 윤직원 브런치 작가님의 아래 그림을 보다가 이마를 탁 쳤다. 아, 내가 워킹맘이라서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원래 없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되기 전에도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 집에 와서 해파리처럼 흐물흐물 늘어졌던 것 같다. 후후. 하지만 엄마가 되면 원래 없던 시간이 더 없어진다. 인생 난이도가 확 올라간 느낌? 워킹맘을 "시간거지"라고들 부른다. 진짜 맞는 말이라는 걸, 통감한다. 


윤직원의 태평천하 (brunch.co.kr)


전 직장을 다닐때 굉장히 멋있는 워킹맘 선배가 있었다. 업무는 빠르고 신속했고, 후배들도 잘 챙겼다. 임원과 평소에 신뢰를 잘 쌓아둔 덕에 그녀가 배석해 주면 보고서 통과도 일사천리였다. 심지어 외모도 언제나 단정했다. 그녀처럼 멋진 워킹맘이 될 수 있을까? 반은 따라할 수 있을까? 벤치마킹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그녀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더 대단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짠했다. 


그녀는 일처리가 굉장히 빨랐다. 우선 타이핑 속도부터 굉장히 빠르다. 내가 보고 메일을 보냈다 싶으면, 몇분 만에 회신이 온다.몇 분 만에 내용 다 읽고, 피드백까지 달아준다. 화장실도 자주 가지 않았다. 전화를 받으면서도 문서를 읽고 메일을 썼다. 연차도 잘 쓰지 않았다. "전 애가 셋이잖아요. 누가 언제 아플지 몰라요. 갑자기 (육아)백업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최대한 세이브 해둬야죠." 그런 그녀가 어느날 퇴근하면서 연차를 쓰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최대한 나와보려고 했는데, 안되겠네요. 제가 고장이 난 것 같아요. 내일 커버 좀 잘 부탁합니다."라고. 안색이 창백했다. 최대한 연락 안 가게 잘 해보겠다고, 어서 들어가시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전 회사는 자차로 출퇴근하기에는 참 좋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주차란이 심하고, 한번 막혔다 하면 답도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자차를 운전해서 다녔다. "출퇴근하면서 차에서 라디오 듣는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서요. 그 시간 만큼은 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자차 포기가 안되네요." 운전해서 출퇴근하기 힘들지 않냐는 말에, 그녀는 담백하게 답했다. 나는 그때 아이엄마가 아니었기에,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경청하 했고, 공감하려 노력했으나, 깊이 있는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혼자있는 시간, 그게 그렇게 귀중하고 달콤한 것이었는지도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언니, 워킹맘 어때? 할만 해?"

"후후. 할만한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하루하루 살아내는거지."

"진짜 다들 말하는 것처럼 바빠?"

"어.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난 바빠. 정신 없구." 


얼마전 큰 폭우가 내렸던 날. 문자가 왔다. 다음 날 큰애 유치원이 휴원한단다. 회사는 나한테 출근하라고 하는데. 머리가 잠시 지끈, 했다. 이렇게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육아공백의 순간이 오면 '대체 어쩌라는 거야' 싶다. 고이고이 아껴두었던 연차를 하나 꺼내, 하루를 버텨본다.  


후후, 하지만 이런 돌발상황은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목요일 밤, 어린이집 알림장을 봤더니, "내일은 소풍을 갑니다! 엄마가 맛있게 싸준 도시락을 나눠먹어요." 라는 내용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도시락은 원에서 준비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확인한 시간은 이미 밤 열시 반인데. 김밥집도 다 닫았는데! 남편을 호출해 본다. "신랑아, 큰일 났어. 둘째 내일 소풍가는데 도시락 집에서 싸가야 한대." "헉, 진짜?" "나 너무 피곤해. 스팸김밥이라두 만들어줘." 


소풍가는 줄은 알았지만,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나. 눈 앞이 깜깜했다. 너무 피곤하다고, 남편에게 SOS를 쳤는데, 다행히 남편이 구조요청을 받아주었다. 스팸, 잔멸치, 진미채까지 야무지게 충무김밥 스타일로 준비해줬다. (밤에 재료 준비하고, 새벽4시30분에 일어나서 도시락 마무리하고, 출근했다고..)



워킹맘, 바쁘냐고? 바쁘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는 진다. 더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육아를 해야 하니, 오늘은 여기까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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