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리다.
나의 시부모님은 좋은 분들이다. 사랑이 많고 가정적인 분들이다. 신랑도 그분들 밑에서 온화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가끔 며느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 주시기까지 하는 자상한 시아버지, 늘 '애썼어,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다정한 시어머니. 나는 그분들에게 별로 불만이 없었다. 아이를 빨리 가져야 한다는 의중을 자주 표현하시는 때가 가끔 있었지만, 그래도 시부모님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큰 아이가 태어나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좋던 관계는 크게 위태로워졌다.
복직을 한 달 반 앞둔 어느 날이었다. 당시 대구에 사시던 시부모님이 아이를 보러 올라오셨다. 남편은 시부모님께서 어떻게 봐주시지 않겠느냐, 먼저 말을 꺼내실 거라고, 그때 잘 얘기해보자고 말했다. (나는 뭔가 남편이 시부모님과 나 몰래 상의를 좀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시부모님과 어떤 사전 조율, 의견 교환을 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혼자 추측한 것이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시부모님은 아이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는 하셨다. 다만, 내가 원하거나 예상했던 형태는 아니었다.
"나는 생각 같아서는 네가 한 3년 휴직하고 아기 봤으면 싶은데."
"아버님, 저 1년 단위 계약직인데, 3년 휴직은 안될 것 같은데요."
(그럼 아이를 둘 낳으면, 5년 휴직을 해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애는 엄마가 봐야 해. 아무리 다른 사람이 잘 봐줘도, 엄마가 보는 것처럼 잘 볼 수 없어."
".. 그래도 경제적 상황도 그렇고, 저도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서, 복직은 해야 할 것 같아요."
남편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중, 시어머님이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이셨다.
"직장은 나중에도 다시 잡을 수도 있잖아. 문화센터 같은 데도 요새 일자리 많다고 하고."
"... 어머님, 저, 변호사예요. 제가 6년 동안 집에서 아이 보고, 40 넘어서 문화센터에서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 안 했죠!"
"그래도 아이 정서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보다 중요한 게 있겠니. 엄마가 옆에서 항상 붙어 있었던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달라. 돈은 없는 대로 살 수 있지만, 정서는 없이 살 수 없어."
"저 어렸을 때 엄마가 밖에서 일하셔서,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는데요. 어머님 보시기에는 제가 정서가 망가진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어머님은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어머님께서 '우리 며느리가 정서가 좀 불안하긴 한데(?) 대놓고 말하면 무례하니까 아무 말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하신 것으로 짐작했다. 입맛이 썼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어머 워킹맘 밑에서 자란 아이도 나름 잘 자랐네?' 하고 생각하셔서 달리 할말이 없으셨던 게 아닐까,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무튼 그날의 대화 이후, 나는 아무리 좋아도 '시부모님은 시부모님, 시자는 시자'라는 건강하지 못한 생각에 사로잡혀, '대장님♡' '공주님♡(소녀 감성을 간직하신 분이다)'으로 저장했던 핸드폰의 이름을 '시아버지' '시어머니'로 각 변경했다. 내가 그분들의 딸이었다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네가 하고자 하는 방향이 뭐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겠다', 또는 '도와주고 싶은데 여력이 안 된다, 힘내라' 하셨을 텐데.
시부모님의 바람을 뒤로하고, 나는 6개월 만에 복직했다. 둘째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금 사정 상 맞벌이를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기는 했지만, 일을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일을 할 때의 내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고, 더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정말 나는 아이의 정서를 해치는 해로운 선택을 한 걸까?'
'이기적인 선택을 한 엄마 때문에 아이들만 고생하는 걸까?'
'육아서적마다 36개월을 말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
그 고민을 한번 내려놓을 수 있게 해 준 건, 선배 워킹맘 언니의 조언이었다.
"36개월 동안 엄마가 계속 옆에 있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때는 애가 안 불안하겠어? 더 불안할 수도 있지. 아예 그만두고 애기 초등학교 2학년 될 때까지 집에 있던가, 아니면 돌 되기 전에 나와.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주보호자를 두고, 루틴을 잘 지켜. 그게 최선이야."
수긍할 수 있는 말이었다. 몇 년이고 살림과 육아만 할 자신은 없었다. 기초자산 없이 맞벌이로 재정을 쌓아보려는 우리 사정에 그게 현명하다는 판단이 들지도 않았고. 그래서 때론 문득 불안했고, 때로는 아이가 보고 싶어서 마음이 찌르르하기도 했지만, 일을 하러 나왔다. 일을 하러 나와서는 정말 긴급한 연락이 아니면 일에만 집중했다. 이모님, 어린이집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아이들의 적응능력과 가능성을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지났다. 아이들은 장난기 많고, 활달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어린이로 자라났고, 우리 부부는 애기 엄마, 아빠에서 어머님, 아버님 정도로 성장했다. 글쎄, 36개월 동안 엄마가 붙어있어 주지는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돌봄 아래서 사랑스러운 어린이들로 잘 성장한 것 같은데. 정서도 꽤 건강한 것 같은데. 엄마가 36개월 동안 붙어있었다면 더 좋은 정서(?)를 가지고 있을까? 그건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내가 내렸던 답도 정답 중 하나라 믿는다. 내가 두 아이를 낳으며 5년간 육아휴직을 하거나 경력단절을 경험했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경력단절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행한 엄마 밑에서 5년을 보내야 했을지도 모르니까. 현재를 살아가는 어떤 엄마도, 복직할지, 전업 엄마의 삶을 선택할지를 쉬이 결정하지 않는다. 육아서든, 어른의 조언이든, 특정 선택으로 엄마들을 몰아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브런치의 맞춤법 기능이 가끔 아쉽다.
라떼를 꼭 라테-라고 바꿔줘야 하나? 난 그냥 라떼라고 쓰고 싶은데.
주보호자-를 주보/호자로 꼭 띄어쓰기 해야 하나? (도로 붙임)
육아서적-을 육아서/적으로 꼭 띄어쓰기 해야 하나? (도로 붙임)
나중에 브런지 맞춤법 검사기능 아쉬운 점을 별도 포스팅으로 한번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