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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Feb 23. 2022

오그라드는 마음

나를 생략하고 이어지는 눈빛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일




내가 애써서 말을 붙이고 관심을 보여야 시작되는 대화가, 그들 사이에선 너무나 쉽게 몇 마디 주고받으며 계속되는 걸 볼 때 마음이 오그라든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를 열심히 들으며 표정으로 반응을 해봐도 그들의 눈빛이 나를 없는 듯이 뛰어넘고 이어질 때 '여전히 나는 바깥에 있다'라는 서늘한 느낌에 마음을 벤다. 애써서 오그라드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던 힘도 빠지고 그렇게 마음이 닫힌다. 외국 살이 5년을 꽉 채우고 6년 차를 향해 가는 오늘도 이 느낌은 무뎌지지가 않고 매번 아프다. 누구도 악의를 가지지 않고 그저 자신의 말로 편안하게 대화하다 보면 일어나는 일이란 걸 알기에, 누구의 탓도 아니기에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결국 가장 만만한 나로 향한다. 내가 좀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노력을 해야지.


사실 언어가 해결된다고 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나랑은 끝까지 눈 한 번 맞추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외국 살이 3년 차 까지는 언어가 부족해 맥락을 놓쳐서 남들 웃을 때 왜 웃는지 모를 때가 많았기에  '내가 바뀌면 될 거'라고 믿었다. 5년이 지나고 언어 수준이 어느 정도 고급에 들어서자 맥락이 읽혔다. 무슨 얘길 하는지, 왜 웃는 건지, 누구 욕을 하는 건지. 그래도 '대화의 밖에 있는' 느낌은 수시로 찾아왔다. 정신을 집중해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다가도, 어쩌다 내가 모르는 그들 사이에만 아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애써 부여잡고 있던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대화 밖으로 튕겨나갔다. 다시 '그게 누구야?', '무슨 얘기 하는 거야?'라고 물어보며 다시 대화에 비집고 들어가려 노력해 봐도 그저 '그렇구나'라는 정보 습득에서 끝날뿐 나는 대화의 흐름에 다시 낄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들만의 대화가 시작되면 핸드폰을 쳐다보면 내 시간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운 습관이 됐다. 내가 대화 밖으로 나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있거나 둘이 대화하는 상황에선 외롭지 않았다. 그럴 땐 안과 밖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각자 다른 언어를 쓰는 (이곳에서의)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괜찮았다. 혼자 밖에 있는 느낌은 셋 이상이 모이고, 그중 둘 이상이 같은 언어를 쓰는 상황에서는 여지없이 시작됐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더 외롭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해외 살이 초반 회사에 다니던 2년 동안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내가 홀로 섬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참고 참다가 집에 와서 울며 외로움을 쏟아내곤 했다. 그러다 참지 못할 만큼 외로울 때면 나는 내 마음을 닫았다. 업무상 필요하지 않으면 사람들과 대화하려 애쓰지 않았다. 어떤 날은 업무상 대화할 일도 없어서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사무치게 외로웠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적었다. 그렇게 나는 외로움과 사람들의 대화 밖에 머무는 일에 적응되어갔다.


이후 인원이 적은 회사로 옮기고, 모든 사람과 1대 1로 대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자 오히려 나아졌다. 내 언어 수준은 변한 게 없는데 더 이상은 회사에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회사 동료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 일은 별로 없었고, 거의 매일 싸우고 지지고 볶아야 하는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기에 대화 중에 소외된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마음이 다시 오그라 드는 느낌을 다시 느낀 건 회사를 그만둔 후 프랑스 인이 절반인 고급 언어 코스에 등록하고, 취미로 외국인이 나뿐인 수업에 등록해 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였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맥락으로 주고받는 대화들 사이에서, 나는 끼어들 수 없는 눈빛의 교환 속에서 나는 다시 대화 밖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익숙한 외로움이 몰려왔다. 습관처럼 마음이 오그라드는 걸 느꼈다. 다시 상처받고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습관처럼 마음을 닫고 싶어 지던 그때, 내 안의 다른 내가 오그라드는 마음을 붙잡았다. '저 사람들에겐 너를 소외시키려는 아무런 의도도 없다고, 그저 그들 사이의 평범한 대화일 뿐이라고, 너를 스스로 소외시키지 말라고' 그렇게 마음이 약간 오그라든 채로, 그러나 닫지는 않은 채로 그저 그 순간을 흘려보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나 이래서 오늘 밖에서 마음이 좀 외로웠어. 그러니까 오늘은 내 얘기 좀 들어줘."라고 조잘조잘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던 그는 자기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다며 "그 모든 게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나를 위해 부서진 마음에서 흘러나온 슬픔이 내 마음을 연고처럼 감쌌다. 대화 끝에 서로를 꼭 끌어안고 마음을 충전하는 동안 오그라든 마음이 펴졌다. 몇 년 전이었다면 상처받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울면서 외로움을 토로했을 터였다. 슬픔이 더해져 외로움은 더 증폭됐을 것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이젠 똑같은 상황을 훨씬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대견했다.


상황은 바뀐 것이 없었지만 내가 바뀌었다. 외로움은 전처럼 나를 집어삼키지 못했다. 외국인으로 사는 이상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소외감과 외로움에 마음을 베는 일은 피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마음이 베이면 마음이 더 다치지 않도록 아예 마음을 닫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닫으면 삶에서 다가오는 다른 모든 것들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더 이상 상처받는 두려움에 마음을 닫지 않기로 했다. 순간순간 대화 밖으로 튕겨 나오고, 마음이 오그라 드는 일도 수없이 반복되겠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계속해서 활짝 피어 햇볕도 쬐고, 비도 맞고, 바람도 쐬고, 벌도 나비도 만날 것이다. 그렇게 변해가는 계절을 즐기고, 지고, 어딘지 모를 세상에서 또다시 필 것이다.





오지은 - 서울살이는


서울살이는 조금은 외로워서

친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조금은 어려워서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지 몰라


서울살이는 조금은 힘들어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앞에 앉은 사람

쳐다보다가도 저 사람의 오늘의 땀

내 것보다도 짠맛 일지 몰라


광화문 계단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면

사람들 수만큼의 우주가

떠다니고 있네 이 작은 도시에


서울살이는 조금은 어려워서

하나를 얻는 사이에 두 개를 잃어가

외로움의 파도와 닿을 줄을 모르는 길

높기만 해서 막막한 이 벽


새벽의 라디오 디제이

목소리 귀 기울여 들어보면

사람들 수만큼의 마음이

떠다니고 있네 전파를 타고서


서울살이는 조금은 즐거워서

가끔의 작은 행복에 시름을 잊지만

서울살이는 결국엔 어려워서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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