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밸리 콘퍼런스에서 느낀 점
지난 금요일, 리얼밸리파크 콘퍼런스에 초대돼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일이 있었다. 미국에서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목요일 저녁 6시에 내려서 경기도 하남시까지 오니 8시. 시차 때문에 잠을 5시간가량 자고, 불야불야 아침이 되자 콘퍼런스 장으로 향했다.
내 강연은 11시부터였지만, 10시부터 콘퍼런스가 시작이라 욕심을 내서 일찍 갔는데 아침부터 시간을 내서 오신 분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강연을 기다리고 계셨다.
11시부터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한 30분의 강연을 끝내고 내려와서는 1시간 동안 인터뷰를 끝냈다. 그리고는 저녁 7시부터 네트워킹을 하는 자리였는데, 워낙은 시간이 너무 터울이 져서 근처 호텔에서 방을 잡고 좀 쉬었다가 올 계획이었는데 이분 저분 너무 많고 좋은 분들을 뵙고 나니 욕심이 생겨서 저녁 9시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그리고는 뒤풀이.
저녁 11시 반쯤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자리를 떴다. 호텔로 갈까 잠깐 망설였지만, 그냥 경기도 하남시까지 지하철을 타고 들어가니 새벽 1시가 넘어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아침, 이번 콘퍼런스에 보고 싶은 분들이 또 많은 날이어서 아침부터 서둘러 동생과 아침을 먹는 도중에,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무언가 좋지 않은 감정이 몸을 흔들었다. 이런 기분은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일이라서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도 없었다. 잠깐 누워있으면 되겠지 하고 몸을 눕혔는데, 웬걸 명치끝이 답답해지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잠이 엄습했다. 대짜 고자 정말 졸음이 쏟아져서 더 이상은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침대로 가서 누웠는데, 누우면 배가 아파지고, 서있자니 졸려워서 정신을 가눌 수가 없었다. 참 이런 일도 처음.
우선은 침대에 앉아서 깜빡 졸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쯤 졸고 다시 일어나려 하니 속이 울렁거려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대로 다시 쓰러져서 잤다.
자고 일어나면 시계를 보고 이제는 정말 가야 하는데.. 했다가 결국 4시쯤 되어서 콘퍼런스 행사 PD님에게 못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친절하시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푹 쉬라고 연락을 받고도 7시까지는 어떻게 해서 문만 나서서 찬 바람을 씌면 좀 나아질 텐데 하면서 창문을 보고 한숨만 쉬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달게 잠을 잤다.
다음날도 결국은 침대에서 하루종일을 보냈다. 이러다가 병원에 가면 의료보험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걱정만 하다가 잠이 들었다.
드디어 월요일 새벽 4시에 배가 고파서 잠에서 깼다. 그리고 나니 갑자기 화가 나더라.
그냥 참고 갔으면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다 볼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많이 들었다. 내 책에 사인을 해서 드리려고 했던 카피는 아직도 가방 속에 그대로다.
내가 컨프런스 연설에서 마지막 장 했던 말이 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한 사람만 차지할 수 있다.
나도 이런 좋은 기회가 왔는데 나를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해서 이런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참 안타깝다. 사람들이 '준비' 또는 '열심히 하는 것'에 공부나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을 꼽지만, 나이를 좀 먹고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살고 일하다 보니,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렇게 큰일이 있을 때마다 느낀다.
얼마 전에도 미국에서 발표를 할 일이 있었는데, 같이 발표를 하기로 했던 사람이 편두통 때문에 오지 못해서 내가 그 분량까지 소화해 내느라 마지막에 애를 썼던 적이 있다. 물론 나에겐 더없이 큰 경험이었으나 한참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시작된 편두통 때문에 결국은 비행기를 타지 못한 내 파트너는 얼마나 낙담했을까?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워라밸'이라는 말은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도 칼퇴근, 무제한 휴가등 여러 가지 화려한 수식어나 기발한 혜택으로 포장되지만 결국 여러 가지 정신적,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도 많은 이들이 자신을 갈아엎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낀다.
금요일 뒤풀이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어떤 분이 묻더라.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우리에게 친근한 이 '주량'에 관한 질문은 한국에서만 하는 질문이다. 외국에서는 이 질문을 들을 수도 없지만, 참 이상하게 들린다. 그런데 어제 아프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질문은 정말 의도하는 것은 - '자기의 한계를 알고 한계에 닫기 전에 끝내라'라는 좋은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이를 먹고도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너무 설쳐서 갑자기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