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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크릿 쇼

여성에 관한 미국의 입장

by coder


빅토리아(즈) 시크릿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얼마 전 유명한 패션쇼가 뉴욕에서 올해도 성대히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올해 쇼에 대한 관심은 속옷이 아니라 브랜드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에 10여 년을 넘게 살면서 나는 그동안 이 브랜드가 우리나라 '비너스'쯤 되는 속옷 가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빅토리아즈 시크릿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상당히 미국적인 면이 있고 미국 사회를 보여주는 면이 많다.


올해 쇼는 한국 밴드 트와이스의 공연 덕에 한국분들에게도 관심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은 이 브랜드를 통해 요즘의 미국을 이야기할까 한다.

최초 가게 광고문(실리콘밸리)

전성기

빅토리아즈 시크릿(이하 빅토리아)은 1977년 미국 실리콘밸리(스탠퍼드 쇼핑센터)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섹스토이를 파는 가게로 시작했다가 여성 속옷 가게로 전환하면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여성을 위한 속옷'을 파는 속옷 가게가 아니었다. '아내를 위한 속옷을 쇼핑하는 곳'이라는 콘셉트로 남성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속옷을 살 수 있도록 '남자를 위한 여성 속옷 가게'로 시작했다.


그래서 초창기 브랜드의 주 고객층들은 월스트릿 부유층의 남성들이나 실리콘밸리 사업가들이 많았다. 82년 로이 레이먼드는 이 브랜드를 레슬리 웩스너(Leslie Wexner)에게 약 4백만 달러에 팔았다.


이후 웩스너가 '여성을 위한 섹시하고 화려한 속옷'이라는 콘셉트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전환했고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매년 열리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와 엔젤(Angel)로 불리는 톱 모델들을 통해 전성기를 누렸다.


빅토리아의 추락

지난 10여 년간 브랜드는 적자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사장 웩스너는 요즘 미국에서 떠들썩한 엡스틴 파일의 주인공, 제프리 엡스틴과 친한 사이로 널리 알려지며 브랜드 세일에 더 큰 타격을 주었다.


웩스너는 엡스틴에게 수백억 달러의 집과 보잉 전세기까지 선물로 줄 만큼 그들의 관계는 가족 이상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 엡스틴이 빅토리아 시크릿과의 연줄을 이용해 젊은 모델 지망생들에게 접근하고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빅토리아 시크릿을 수십 년간 따라다닌 “여성 성 상품화” 논란과 맞물려 심각한 도덕적 비난을 받게 된다.


물론 웩스너는 엡스틴의 성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2020년 경영에서 물러났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물론 이런 브랜드 이밎 때문에만 인기가 식은 것은 아니다. 제품의 질, 온라인 상점 문제, 느린 배송, 엉터리 재고관리, 무엇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섹시함만 강조하는 촌스러운 디자인 등, 이 브랜드가 고수하고 있는 가장 미국적, 소녀적 그리고 퇴폐적인 이미지는 여성들에게,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한물 간 트렌드라는 인식이 깊다.


더군다나 회사의 이미지인 '날씬하고 키가 큰 여성들만이 빅토리아를 입을 자격이 있다'라는 고수적이고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앞세우는 회사의 마케팅이 얼마나 많은 여성 고객에게 먹힐까?


덧붙여서 빅토리아 시크릿의 전 마케팅 책임자가 트랜스젠더 모델이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은 패션쇼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경쟁사들은 긍정주의(Body Positivity)를 내세우며 다양한 인종, 사이즈, 신체 유형의 모델들을 기용해 큰 호응을 얻었다.


2025년의 화려한 쇼가 다시 빅토리아 브랜드를 섹시하게 되돌릴 수 있을까? 이것이 올해 쇼에 관해 모두가 궁금해하는 점이다.


빅토리아의 2025년 쇼

역대의 빅토리아 쇼가 그러했듯, 올해의 쇼도 역시 여러 미디아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앞서서 말했듯, 올해의 관심은 쇼 보다는 회사가 보내는 메시지에 관한 것이다.

키 크고 날씬한 여성만이 빅토리아를 입을 자격이 있다.

빅토리아의 쇼가 다른 해와 달리 좀 더 다양한 모델들, 그리고 현대적인 디자인과 젊은 여성층을 겨냥한 '여성을 위한 속옷'으로 재 도약을 할 것이다라는 업계와 대중의 기대를 깨고 빅토리아 쇼는 앞선 쇼들과 똑같은 콘셉트 - 즉, 키 크고 날씬한 여성만이 빅토리아를 입을 자격이 있다를 고수했다.


물론 한편에서는 이런 마케팅이 오히려 요즘 미국의 정치적인 메시지와 맞아떨어진다며 격찬하기도 했다.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요즘 빅토리아 시크릿이 고수한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정부에서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그 인기를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름다운 여성은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여성이다.

아름다운 여성은 날씬하고 키가 커야 한다(키 180, 허리 60, 가슴 82 몸무게 52kg).

아름다운 여성은 화려한 장신구와 레이스로 뒤덮인 야한 속옷을 입고 남성을 유혹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여성은 남성의 눈에 아름다워야 하고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밀 줄 알아야 한다.


이번 쇼에서도 역시 몇을 제외하고는 엔젤들은 아름다운 금발의 키 180의 백인 여성들이 대다수였고 많은 쇼의 티켓을 받은 이들 중에는 애프터 쇼 파티에 초대될 젊잖게 양복을 빼입은 돈 많아 보이는 남성들이 꽤 많았다.


더 이상 여성의 아름다움에는 다양성이 있고, 어떤 사이즈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으며 우리가 돈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듯,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가릴 데만 대충 가린 레이스 천조각 뒤의 몸뚱이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 가치관, 그리고 자유로움과 다양성이라는 생각은 이제는 미국에서는 패션어블하지 않은 발상이다.


대문사진은 - https://entertainmentnow.com/news/victorias-secret-2025-models-lineup-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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