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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현 May 07. 2024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내는 것

친구가 나의 뒤통수를 쳤다. 친한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직장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서운함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무리 조심해도 생길 수밖에 없는 서운함. 나 역시 많은 서운한 상황을 겪었고 마음의 상처도 받았다. 그때마다 인간관계의 혐오를 외치면서 자신의 굴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스스로 왕따가 되기 원했고 외톨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치유는 인간관계에서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도 믿지 마라. 아니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인간은 상호교류해야 발전할 수 있는 존재다. 두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첫째 나 자신을 믿어라. 둘째 상대를 포용해라.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싶지 않다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라. 왜 나를 서운하게 하였는지 그 이유는 나와의 관계보다 본인의 이득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눈이 정확하다 하고 싶겠지만 사실이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점을 이런 순간에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상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동질감을 느껴 인간적 교류를 나눈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완벽하게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한다면 그건 본인과 맞지 않는 부분에서 마찰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은 자기 주관적이다. 인간은 ‘간사하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간사 한 것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 뛰어난 것이다. 가라앉는 배와 친하다고 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 친밀은 감정이다. 우리가 어떤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고 끌린다는 것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말투, 행동, 생각 등 본인과 비슷한 점을 무의식 중이나 은연중에 알아챈다면 호감도가 상승한다. 그리고 상승한 호감도를 바탕으로 ‘친밀감’이라는 감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감정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가라앉는 배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데 이런 선택과 행동은 친밀감과는 거리가 있다.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판단을 앞세운 행동은 우리가 상대에게 친밀감을 느낀 요소와 부딪히는 순간을 만들어 내고 양쪽에 서운함을 안겨 준다. 현실적인 판단을 한쪽에서는 자신의 선택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반대의 경우 같은 이유로 서운함을 느낀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에게 계속 이용을 당한다는 느낌이 들거나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사람과 친밀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한쪽이 결핍을 느낀다는 것은 다른 한쪽이 감정을 덜 쓴다는 것이다. 상호 관계에서 동등한 위치일 경우 감정은 동등하게 소진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울어진 시소처럼 소진하는 감정의 무게는 다르게 측정된다. 그리고 많은 감정을 소진하는 쪽이 현실적인 상황에서 상처를 더 크게 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타인과의 교류에서 감정을 소진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 스스로가 우선 바로 서야 남을 판단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다.  자신을 내가 믿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존하게 되어 자신을 믿기 위한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앞서 말했지만 타인에게 감정을 많이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실, 실망을 겪는다.


나는 학창 시절 사회성이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혼자 자란 탓인지 모르겠지만 무리 속에 속해 있는 소속감이 좋았다. 하지만 소속감이 깊어질수록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친구들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내가 무리에서 친한 친구와 다른 친구가 친하게 지내면 난 과감하게 친한 친구와 사이를 정리하고 그 무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른 무리를 찾아갔는데 언제나 마지막은 비슷한 결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어떤 서운한 일도 참으며 그 무리에서 지냈다. 하지만 남은 건 너덜너덜한 내 마음이었고 결국 무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다른 무리를 만나게 되었고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어울려 지냈다. 그때 내가 쓴 방법은 ‘거리두기’였는데 어느 정도 친밀도가 쌓이면 그 친구와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인간관계에서 오는 서운함은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많은 책에서 말한 듯 내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남들이 뭐 라건 간에 나의 능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예전보다 높아졌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회생활 중 만난 무리에서 서운한 감정을 덜 느끼게 되었고 나아가 나에게 서운함을 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서운함을 겪는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한 원망과 실망감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며 서운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사회는 개개인이 모여 이룬 집합이다. 나와 생각이 마음이 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하물며 가족도 부모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생판 남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런 사회의 구성원으로 많은 다양한 다른 구성원을 만나고 또 그 내부에서 집단을 만들고 또 그 집단에서 무리를 구성한다. 그 가운데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면 친밀감을 느끼게 되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감정과 상황을 공유하며 친분을 쌓는다. 친분을 쌓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친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에 대한 적적한 대처가 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서 서운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다만 힘겹게 쌓은 친분관계를 서운함이라는 감정으로 무너트리지 말고 친분은 유지하되 서운한 감정이 덜 발생하도록  자신을 성장시킨다면 친분도 유지하고  자신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말한 방법이 정확하고 올바르다고 감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서운함으로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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