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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의 숲 Oct 03. 2018

푸에르자 부르타, 그 새로움

  개천절을 맞아 핫하다는 '인싸' 공연을 보고 왔다. 푸에르자 부르타, Fuerza Bruta, 스페인어로 잔인한 힘. 

7월에 막을 연, 일요일이면 끝나는 공연을 이제야 보게 된건 소셜미디어에서 끝없이 바이럴되었기 때문이다. 홍보성도 아니고, 광고성도 아닌, 자발적으로 공연의 멋짐에 대해 논하는 수많은 게시물 끝에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보러왔다. 


  우선 짤막한 소감은 괜히 '인싸' 공연이 아니라는 것. 요즘 인싸라는 수식어는 가장 트렌디하고 가장 새로운 것에만 붙을 수 있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새롭다.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에서 그렇다. 


 장르부터 그렇다. 연극도 아닌 것이, 콘서트도 아닌 것이, 뮤지컬도 아닌 것이, 행위 예술도 아닌 것이, 미디어 아트도 아닌 것이, 페스티벌도 아닌 것이 푸에르자 부르타다. 왜냐면 푸에르자 부르타가 저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정말로 어떠한 장르보다는 경험 그 자체, 혹은 이름처럼 '힘' 그 자체다.  


  무대의 경계 역시 정의내릴 수 없다. 기존의 관객 참여형 연극과 콘서트, 뮤지컬일지라도 좌석과 무대의 구분은 무척 명확했다. 또 지정석 개념이 명확해서 좌석에 따라 공연의 경험도가 달라졌다. 그러나 푸에르자 부르타는 사방이 무대가 되고, 모든 좌석이 비지정석이다. 심지어는 절반 가량의 퍼포먼스가 공중에서 이뤄진다. 어디에 서있던 하늘을 똑같이 볼 수 있는 것처럼, 공연장 내 어디에 있던 그 공연에 똑같이 몰입할 수 있다. 


  편의상 공연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공연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어떻게 보면 곧 장소다. 클럽이 되었다가, 외국 어딘가의 축제가 되었다가, 영화 속 한 장면이 되었다가, 미술관이 된다. 단순히 내가 무언가를 보고 있다(watch)는 느낌을 넘어서 내가 어딘가에 있다(be)는 느낌을 준다. 공연이 아닌 장소를, 정확히 말하면 시공간을 창출해낸다. 그렇게 해서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공연 방식도 그렇다. 대부분의 공연이 '보여지기 위해' 존재한다. 공연자는 관객을 다분히 의식하고, 의식해야만 진행이 성립된다. 하지만 푸에르자 부르타의 공연진들은 관객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끼리 대화하고, '논다'. 이따금 관객에게 후레쉬를 비추고, 눈을 맞추고, 관객에게 달려오지만 그것은 관객을 위해서라기보단 순전히 자신들의 궁금증을 위해서인 것 같다. 그리하여 오히려 관객을 공연진의 행위 가운데 끼어든 관찰자로 만들고, 그것은 굉장히 오묘한 느낌을 준다. 푸에르자 부르타가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두 번째 방법은 공연진과 관객의 구별을 없애는 것이다. 공연진들이 해맑게 춤추며 호응을 구하고, 반응을 유도해도 그것은 기존의 공연자/관객의 구도라기보다 마치 마을 한 가운데서 열린 놀자판속 좀 더 잘 노는 애/그저 웃는 애의 구도에 가깝다. 공연진들은 신나게 논다, 관객과 '함께'.


 이렇게 푸에르자 부르타는 정의하기 어렵고, 다른 공연들과 다르고, 그래서 새롭다. 러닝 타임이 70분이라는 점과 사진, 동영상 촬영이 자유롭다는 점까지 요즘 인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짧고, 내 방식대로 기록할 수 있고, 핸드폰과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공연! 

  실제로 공연장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쉽고, 짧고, 직관적이고,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근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푸에르자 부르타는 신기한 서커스, 곡예일테고, 누군가에겐 신세계일테고, 누군가에겐 소셜미디어에 찍어오르기 좋은 화젯거리일테고, 누군가에겐 새로운 방식으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보여주는 철학적인 공연일테고, 누군가에겐 경이로운 예술일테다. 그 어떤 것이던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에서 푸에르자 부르타가 놀랍다. 철학적인 어떤 것이 화젯거리가 되긴 어렵고, 쉽고 직관적인 것이 오래 여운을 울리기 어려운데 푸에르자 부르타는 다 가능하다. 정말로 '힘'이다 힘. 강력하고 잔인한 힘. 

  

  단순히 관람과 감상을 넘어 동일시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푸에르자 부르타. 다음에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디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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