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갑자기 끝(?)
거의 3주 만에 드럼을 치러 갔다. (나는 왜 이따위 인간일까..)
이런 식이면 거의 한 달에 한 번 레슨을 받는 건데, 이런 것도 드럼을 배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쨌든 3주 전에 배웠던 곡을 다시 연습했다. 요즘 연습하는 곡은 슬의생 OST 인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인데 잔잔한 곡이라 우습게 봤다가 여지없이 헤매고 있다.
빠른 곡은 빨라서 힘들고 느린 곡은 느려서 어렵구나.
역시나 가장 쑥스럽고 어려운 부분은 fill in 이 들어가는 부분인데 그전까지 잔잔하게 진행되던 평화가 애드리브 구간만 오면 와장창 깨진다.
들어가기 직전부터 박자는 흐트러지기 시작해서 제대로 넘어간 적이 없다!
문제는 그 구간이 오면 반주로 깔린 노랫소리가 안 들린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전까지는 따라 부르면서 박자를 얹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소용돌이에 소리가 다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노래는 사라지고 이상한 나의 연주만 남아있다.
혼자 있고 싶다 정말.
몇 번의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자신감은 사라지고 의기소침해져서
마의 구간이 나올 때 팔이 아예 앞 쪽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fill in을 하려면 팔을 뻗어서 멀리 있는 탐(북)을 자신 있게 쳐야 한다.)
“일단 어떻게든 시작을 해야 돼요.
틀려도 되니까 시작을 하세요. 시작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데
시작을 어떻게든 해버리면 다시 박자를 맞추게 돼요.
중요한 건 틀렸다고 멈추지 않고 그냥 쭉 가는 거예요.
일단 시작을 하고 쭉 가다 보면 다시 박자는 맞춰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손을 뻗어서 어떻게든 치세요.”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시작이 쉬웠다. 그중에서도 ‘처음의’ 시작만 잘했다.
그래서 대책 없이 도전하고 시작하는 것은 쉬웠는데
fill in처럼 무언가가 꽃피우는 절정의 순간이 가까워지면 도망치기 바빴다.
모든 것에는
일의 처음을 시작하는 순간도, 계속 연습해야 하는 것의 시작도,
두려움과 어색함을 깨는 시작도 있는데
여러 가지 시작 중 제일 처음의 것만 잘해왔다.
그런데 악기를 배우다 보면 일단 그런 성질머리로는 한 곡을 연주할 수가 없다.
시작만 있는 노래가 어디에 있겠는가. 많은 시작을 극복해야 끝이 온다.
그래서 fill in의 시작도 잘하고 싶어졌다.
무조건 팔을 뻗어보는 것, 노래가 잠시 들리지 않아도 그냥 가보는 것.
하지만 그날은 결국 한 번도 제대로 fill in을 해보지 못했다.
이렇게나 성과가 없이, 한 번의 성공도 없이 학원을 나온 적이 없었는데 착잡하기는커녕
‘와 다음 주엔 진짜 학원 꼭 올 거야.’라는 다짐이 들었다.
뭔가 극복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은 사실 좋은 거구나.
주어진 시간에 다 못하면 오히려 다음을 기다리게 되는구나.
오케이. 내 드럼 라이프를 이어나갈 비결을 찾았다.
그렇게 다시 한 주가 흘렀다.
다행히 마음이 꺾이지 않았다. 오늘은 꼭 넘어간다. 마의 구간.
오후 3시가 지나도 학원을 가고 싶으면 그날은 꼭 가게 된다. 그게 수요일의 법칙이다.
나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몸이 무겁고 나른하길래 오후에 일을 하다
화장실에 간 김에
정말 별생각 없이 임신 테스트를 했다.
두 줄이었다.
응? 임신이라고? 취미 생활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글이 이렇게까지 두서가 없다고?
아 나 오늘은 진짜 가려고 했는데!
임산부가 드럼 쳐도 돼?
아무래도 쉬어야겠지?
아 진짜 가려고 했는데! 왜 기쁜데! 아냐 이건 학원 안 가서 기쁜 게 아니구
임신이라서! 기쁜 거야! 진짜루.
나는 정말로 왜 이따위 인간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