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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 스토리텔러 Feb 28. 2023

한국밥이 너무 그리워

고장 난 밥솥

1년 반 전에 밥솥이 고장 나서... 밥 짓는 것을 포기했다. 

남편은 밥보다 빵을 좋아하니 아쉬울 게 없지만 난 밥 없으면 안 되는 사람;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냄비밥을 짓기로 마음먹었다.(한국에서 냄비 밥을 지어볼 일이 없지 않은가;) 

처음엔 남편이 밥을 해주었고,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직접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냄비밥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난 포르투갈에 전기밥솥이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기에 당연히 냄비밥을 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우연히 대형마트에 갔다가.... 밥솥을 발견했다. 

아련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아주 오래전 기억...

그래, 맞아 한국에도 저런 밥솥이 있었어. 이곳에도 있었구나. 

완전히 신나서 구입했다. 그럭저럭 냄비밥보다 편리함에 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매식사 때마다 밥 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인가. 

하루치 정도는 한 번에 해서 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니까... 하루 치를 한 번에 했다. 

하지만.... 하지만.... 문제는 밥을 갓 지어먹으면 이상이 없지만.... 

2시간 이상 두면... 밥이 완전히 쌀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아.... 이런.... 자동으로 누룽지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코드를 뺐다. 

그러면 다시 쌀로 돌아가기 일쑤다....

아, 어쩐다; 이거 참......


그것을 보던 남편이 또 아이디어를 냈다. 이번에 찜기용 냄비를 사 왔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식은 밥을 다시 데우는 방식으로 연명(?)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불현듯 한국밥이 너무 그리워 고장 난 전기밥솥에 밥을 해보고 싶어졌다. 

창고로 갔다.(아직 밥솥을 버리지 않고 짱 박아둔 것을 한 달 전에 발견한 터라....ㅎㅎ)


꺼내어 먼지를 털고 닦고 실험해 볼 량으로 물만 끓여보고 싶었지만, 

조급함이 올라와 될 것이라 믿고 쌀을 씻어 안쳤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기적적으로 뚜껑이 닫히고 뭔가 끓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혹시 빵 하고 터져서 전기사고가 나지는 않을지 마음을 졸이면서 빌었다. 

제발~~~!! 밥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8:37분에 앉혔는데  8: 58분이 되니까 익숙했던 벨소리와 함께 치지직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뜸 들이기에 들어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아.... 정말 밥이 되는구나.... 이제 한국 밥을 먹을 수 있구나.... 안도의 숨을 쉬고 기다렸다. 9:11분이 되니까.... 다 되었다는 소리가 났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함에도..... 마지막 약간의 몇 분을 참지 못하고 뚜껑에 손을 댔다. 

"앗! 열리지 않는다;" 

'아! 맞다.... 이거, 뚜껑이 안 열리기 시작했었지'

그때 고장 나기 전에.... 그래서 밸브가 잠김이 되지 않아서 밥이 되지 않았던 거지.... 그렇다면 어떻게 열었지? 옛 기억을 더듬어 열을 식히는, 아니 김을 빼주기 위해서 주걱을 뚜껑 밑에 넣었다. 그리고 한 20여분을 더 기다렸다. 그런데도 열리지 않았다. 

아... 그렇다면 이번에는 무조건 돌려보자. 

이거 머 영화에서 보던 금고 따는 것 같은 상황과 비슷하다. 오른쪽으로 돌렸다 왼쪽으로 돌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마주 돌리다가..... 이러다 완전히 고장 날 것 같아서 멈췄다. 그리고 "제발! 열리게 해 주세요!" 잠시 두 손을 모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찰칵 소리가 들렸다. 어? 왼쪽으로 돌리니 찰칵, 오른쪽으로 돌리니 찰칵 그래서 뚜껑을 들어보았더니 놀랍게도 열렸다. 아주 맛있는 한국 밥과 함께. 

그래그래, 이 감을 기억해야겠다. 무조건 돌리는 것이 아니라, 6시 지점이 열림이고, 3시 지점이 잠김이라는 것을. 

'아... 다음에도 밥이 되면 좋겠다' 

"플리즈~~~!!!" 


오늘도 교훈을 배웠다. 있을 때 귀한 줄 알고 소중하게 다루자고. 함부로 막 다뤄서 미안해 밥솥아.....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기분이 좋아져서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불렀다. 모처럼 문을 열었다. 

화단에 동백꽃과 수선화(?)가 눈에 들어온다. 

레드와 옐로라~~~ 음. 그럼 오렌지지~~~!! 지족의 칼라! 


그래그래 그래요.  

지금의 시간, 지금의 환경, 지금의 상황까지 모두 모두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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