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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nt Kim Aug 19. 2024

"빨리" 노노, "언젠가는"을 새기기

한국의 속도, 미국의 속도가 다르고, 우리는 미국에 와있다. 

이번 유학 말고, 2006년, 학부 때 잠깐 캘리포니아에 살았을 때다. 


처음 갔던 식당에서 주문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모두가 모른 척한다. 한참을 기다리니, 서버가 와서 "뭐 마실래?" 물어보길래 난 "콜라주세요"라고 하고 바로 주문을 하려는데... 쌩 하고 가버리더니 한참을 있다 음료를 들고 와서는 그때 주문을 받는다. 여기까지가 한 20분 걸렸던 기억이. 


2020년에 다시 유학을 왔고 (팬데믹...), 이젠 어느 정도 미국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행복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새 학기가 시작할 즈음엔 신입생들이 들어오고, 종종 이들의 적응을 도울 때가 있다. 대부분 똑똑한 사람들이 유학을 오니, "내일은 은행 가서 계좌 트고, 면허 만들고, 소셜 넘버도 빨리 신청하려고요." 벌써 계획이 딱딱 있다. 오자 마자 지도교수님과 미팅도 잡고, 차도 구매하고... 


어쩌면 한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 편리하고 efficient 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고 제때에 나의 스케줄에 (최대한) 맞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예를 들면, 비대면 은행 서비스도 핸드폰 인증 하나로 가능하고, 행정서비스도 온라인으로 가능, 창구를 찾아가서도 손이 빠른 공무원이나 직원분들이 착착착해주시니. 물론, 이 과정에서 서비스 소비자와 제공자 간의 간극이 종종 문제가 될 때가 있으나, 그건 여기서 논의할 이야기는 아니고. 


하지만 미국의 속도는 개인 각자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기에, 내가 원하는 서비스의 제공자들이 나의 시간에 맞춰주지는 않는다. 앞의 식당 서버의 사례도 그렇고, 학교 행정직원들도 본인들이 당장 관리하는 다른 행정 일과 함께 내 일을 처리해 줄 뿐이지 나를 집중케어해주지는 않는다. 은행도, 정부 기관도. 아, 물론 공식적인 '급행료'를 지불하면 좀 빠를 수는 있다. 그야말로 인건비의 소중함(?) 자본주의의 매운맛(?)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 


2020년부터 근 4년 동안 십 수 명의 유학생들의 정착을 도우며 느낀 건, 정말 내 뜻대로 상쾌하게 한 번에 스무스하게 처리되는 행정일이나 기타 잡일은 정말 적고, 같은 은행이나 행정 오피스에 방문하더라도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서 같은 서류를 가지고도 일 처리가 되는 경우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전제는, 모든 노동자들이 일을 꼭 잘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의 능력차가 있고, 그걸 이곳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기다려 준다는 것. 


내 예상과 달리 일 처리가 되지 않았을 때 그 열받음과 낭비되는 시간 때문에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 적이 많다.  


곧 새 학기가 시작한다. 운전면허증, SSN, 유틸리티 신청, 차량, 가구 구매 등등 해야 할 일이 참 많을 것이다. 하나는, 너무 한 번에 빨리 셋업을 하려다 보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종종 있을 건데, 그건 내가 운이 나빠서도, 내가 밍그적거려서도 아니고 그냥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속도가 지금까지의 내가 익숙하던 것과는 다를 뿐이라는 것, 그것에 좀 더 너그러워지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무려 팬데믹을 뚫고 만들었던 SSN/운전면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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