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워킹맘이 마주한 현실
1년 2개월간의 휴직 후 복직한 지 딱 6개월이 지났다.
홍보마케팅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온지 어언 10년 차.
비바람은 있었지만 잔잔한 바다 같던 삶에 폭풍우가 휘몰아쳤던 6개월이었다.
직무 변경부터 부서 이동까지.
초보 워킹맘이 마주한 녹록지 않은 현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1. 복직 두 달 전
팀장으로부터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커피챗을 하자고.
사무실로 오라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당시 아기가 어린이집에도 가지 않는 상황이라 시간을 내서 회사에 가긴 어려웠고 줌 미팅을 진행했다. 일부러 육아에 지친 험한 몰골로, 아기 보면서 마음 좀 녹이라고 잠깐 인사도 시켜줬다.
팀장이 미팅을 신청한 요지는 내가 복귀할지 확인하고, 돌아온다면 업무가 변경될 거라는 걸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내 주력 업무는 언론홍보와 콘텐츠 개발, 오가닉 리드 창출이었는데 그 업무들은 이미 다른 팀원들이 나눠가져 갔으니 돌아오면 CRM, 웹사이트 분석을 주 업무로 맡게 될 거라고 통보했다.
당시에는 사회생활 한다고 웃으면서 “예~ 데이터 공부 좀 해가야겠네요, 하하” 했지만 미팅을 끝내고 눈물이 났다.
조금이라도 양해를 구하는 뉘앙스가 있었다면 그 정도까지 서럽지는 않았을 텐데. 육아휴직 들어갔다 왔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거라는 그 말투와 태도가 힘들었다.
2. 복직 첫 주
복직 첫날. 팀장은 내가 오기만을 1년 동안 기다린 사람처럼 해야 할 일들을 쫘르르 나열했다. 한두 달은 적응하라고 해놓고 바로 실무에 투입되기를 원했다. 모든 걸 빠르게 소화해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가 최고치였다.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에 조급했다.
3. 복직 1~3개월 차
팀에서 처음 진행하는 업무를 맡았기에 제안 작업들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결국 팀 내부에서만 결정하면 되는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는데 팀장은 일부로 계속 내 한계를 시험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기대효과 측정하기. 부서장 보고를 위함이라고 했지만 결론적으로 부서장은 그 숫자에 관심도 안 가졌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는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내가 입사 초기부터 3년 동안 기반을 쌓아온 언론홍보의 꽃과 같은 첫 행사에 나는 하나도 인볼브 되지 않았다. 팀장이 참관조차 못 하게 조치해서 박탈감을 가장 크게 느꼈다.
4. 부서 이동 통보
3개월 동안 팀에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 작업을 해 나갔고 드디어 첫 번째 서비스를 최종 도입하기 첫 주.
팀장과 부서장이 갑자기 회의실로 소환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경영진으로부터 현재 팀의 실무자 3명 중 1명을 인력 충원이 필요한 다른 팀으로 보내도록 통보를 받았는데 어찌어찌한 연휴로 '내'가 선택됐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때 그 순간의 모든 공기와 그들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 네..? 저요?"
뒤통수를 가격 당한 느낌으로 당황해 있다가 몇 분 뒤 사태를 완전히 이해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9년 동안의 회사 생활에서 가장 상처받은 순간이었다.
그들은 내 경력이 가장 그 팀에 적합하고, MBTI까지 진지하게 들먹이며 나를 선택한 이유를 구질구질하게 설명했지만 단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복직자에 대한 터무니없는 불이익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옮기는 팀은 회사에서 가장 업무 강도가 높고 팀장이 또라이로 유명한 곳이어서 더욱 심난했다.
5. 퇴사 결심을 접다
당시에는 퇴사할 생각이 200% 였다. 주변 사람들 모두 퇴사해도 충분히 이해하는 상황이라고 했지만 극강 T이자 노무사이며 워킹맘인 친구의 뼈 때리는 조언을 듣고 ("지금 퇴사하면 너만 손해야!") 조금 버텨보기로 했다.
3주의 유예 기간이 있었는데 첫 주는 아기가 수족구 판정을 받아서 병가를 쓰고 아기를 돌봤다. 남편까지 아파서 체력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둘째 주부터는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고 반차를 쓰고 마사지도 받고, 가고 싶었던 서점도 가고, 찻집에서 혼자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도 가졌다. 일기도 많이 쓰고, 소중한 친구들과 통화하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6. 부서 이동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이동한 팀의 팀장은 나름 나이스했다. 여러 팀원들을 떠나보낸 자신의 지난 과오를 돌이켜보고 있으며, 바뀌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걸 매번 강조했다. 온보딩 시간도 길게 가져갔다.
새 팀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어렵다. 너무 복잡하고, 광범위하며 그때그때 들이닥치는 일들도 많다. 다시 신입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팀장은 나와 동갑이며, 나보다 연차가 5년 이상 낮은 기존 팀원들에게 일을 배우고, 서포트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니 팀장이 조금씩 본색을 드러낸다. 갑자기 화나서 자기 분을 못 삭여 메신저나 미팅에서 화를 분출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잘못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가스라이팅!) 묘한 재주가 있다. 아주 미묘하고 애매하게 사람의 신경을 긁는다. 쌓이고 쌓이면 병이 날 것 같다.
7. 복직 후 6개월
10월, 남편의 육아휴직이 끝나면서 단축근무를 시작하고, 아기 등원을 전담하게 됐다.
(단축근무는 부서이동 통보 후 될 데로 돼라~ 마인드로 신청했다.)
하원은 엄마가 도와주는데 퇴근 직후 아기밥을 준비하고 먹이는 게 가장 피곤하다. 아기가 밥을 잘 먹으면 좋은데 대부분 입을 꾹 닿고 안 먹으려고 한다.
육아휴직 후 복직.
내가 마주한 현실은 혹독했다.
연차는 쌓일 데로 쌓였는데 새롭게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상황.
지금까지는 적응 기간이라 꾸역꾸역 던져지는 업무들을 어떻게든 쳐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더 굵직한 업무와 책임이 주어지게 되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야근이 많고, 익숙하지 않은 데이터를 많이 보고, 분석해야 해서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과연 그들이 부서 이동을 통보했을 때 가스라이팅했던 것처럼 업무 확장의 기회로 봐야 하는 걸까?
그리고 자책하게 된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업무 공백이 있었고 회사가 편의를 봐줬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건가?
내가 커리어 욕심이 없어서 이 사달이 난 건가?
커리어 욕심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직무가 변경되는 걸 막거나, 그게 안 됐다면 이직을 했겠지?
결국은 내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