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가 바꾼 나의 하루

경비 아저씨의 내게 건넨 한마디.

by starka

유난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날이 있다.


엊그제가 꼭 그런 날이었다. 코로나 19가 전국에 퍼진 이후로 하루도 피곤하지 않은 날이 없지만 그 날따라 더 몸이 무겁고 힘들었다. 알람을 5분 단위로 두어 번 맞춰놓고 샤워를 미루고 미루다 겨우 일어나 갈아입을 속옷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오늘만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따스한 물이 정수리부터 흘러내려와 발끝까지 적시니 조금이나마 잠이 깼다. 왜 이렇게 피곤한가 생각해보니 아마 코로나 19 때문에 방문객이 없는 업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진단을 내렸다. 원체 예민한 성격과 육체를 가진지라 알게 모르게 받은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달했을 것이다.


게다가 잠에서 깨자마자 확인한 휴대폰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혼선으로 인해 처리해야 할 업무를 담은 내용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수정하면 될 것을 피로가 극도에 달하니 머리도 안 돌아가고 신경 써야 할 것을 생각하니 '아 짜증 나'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정도였다.


샤워를 끝마치고 간단하게 아침으로 먹을 과일을 챙겨 일층으로 내려갔다. 겨울의 끝자락에 다 달한 것 같은데, 아침 날씨는 왜 그리도 쌀쌀한지 지하주차장이 협소한 것이 또 나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세대에 0.5대 정도 일 것 같이 좁은 주차장에 너도 나도 주차를 하다 보니, 나처럼 늦은 밤에 퇴근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차를 댈 곳이 없다. 요즘은 세대당 최소 2대씩은 차를 보유하고 있으니 주차난에 대해 더 말하면 입이 아프다.


아파트 뒤편에 마련된 지상 주차장으로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을 치는데 경비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경비 아저씨가 나오셨다.


나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까딱여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이 구부정하게 숙여졌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짝씩 들리는 옷 사이로 한기가 숭숭 들어와 어깨를 움츠렸다. 빨리 차에 들어가 히터를 틀어야지 했는데, 경비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추우시죠? 날씨가 풀리는가 싶더니 또 추워졌네요."


나는 '그러네요'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웃는다고 생각했지만 티 나도록 억지웃음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한 해 한 해 갈 때마다 표정관리가 쉽지 않다. 나이가 먹을수록 이기적인 마음이 가면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


그 날은 몸도 피곤하고 조그만 일에도 짜증이 솟구치던 날이라 경비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나에게 말을 건 경비아저씨는 평소에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분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밤 11시에 마감을 하고 퇴근을 하면 집 주차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다. 헤드라이트가 어두웠던 아파트 주차장을 잠시 비추고 들어갈 때면 그 경비아저씨는 어김없이 경비실 문을 벌컥 열고 나와 누구 차인지 꼭 확인을 하러 오신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마치 손주를 기다리느라 문고리만 달싹여도 버선발로 뛰어나가는 시골 할아버지를 연상케 해 안쓰러워 보이다가도 매번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 괜히 도둑 주차를 하려다 걸린 사람처럼 불편해졌다.


집에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가족들 역시 '그 아저씨 좀 이상해'라는 말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차들이 주차하러 들어올 때마다 일일이 나와서 확인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경비아저씨도 매번 나인 것을 확인하러 헐레벌떡 오시는 게 민망하셨는지 '이렇게 안 하면 하도 불법으로 주차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사실 아파트가 한 동뿐이고 동네가 차가 많은 곳이 아니라 불법주차랄 것도 없지만 나는 '네 괜찮습니다'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컨디션이 안 좋은 그 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짜증스러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억지웃음이라도 지어 보이고 갈 길을 가려고 몸을 반 정도 돌렸을 때 경비아저씨가 던진 한 마디는 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오늘 꼭 엄청나게 좋은 하루가 되세요!"


경비아저씨가 건넨 그 한 마디를 들은 순간 짜증스러움과 몸을 바닥까지 끌고 가는 것만 같던 피로감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사람에 대한 따뜻함과 부끄러움뿐이었다. 가족과 연인 이외에 이토록 따스한 말을 들은 지가 언제였던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나는 누구에겐가 이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있던가? 아니다. 나는 위로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일에 열심인 사람이 신경을 거스른다며 마음 한편에 증오의 싹을 키우고 있었다. 경비아저씨의 따뜻한 마음과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납덩이처럼 무겁던 몸과 마음을 한순간 가볍게 풀어줬다.


물론 피곤함이 전부 가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몸이 피곤해서 짜증이 나려고 할 때면 경비아저씨가 아침에 내게 건넨 말을 상기하고는 다시 기운을 차려 일할 수 있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옛 말처럼 말 한마디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내게 말 한마디로 타인에게 무한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경비아저씨께 소소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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