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란한 여자

by starka

11.


-술은 한 종류만 마시는 게 좋다. 만약 섞어 마시게 된다면 낮은 도수에서 높은 도수로 바꿔야 한다.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시다가 낮은 도수의 술을 마시면 취기가 확 올라온다. 소주 몇 병을 잘 마시다가 마지막에 '맥주 한 잔만 더 하자!'해서 맥줏집에 갔더니 500 한 잔에 토악질을 하는 경우가 도수의 역순으로 술을 마신 결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를 사주며 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커가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까지 가슴에 박혀 장면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저것이 유일하다. 그 이유가 아버지가 가르쳐준 다른 것들이 특별히 쓸모없거나 무익했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에게 있어서 술이란 미지의 세계였고, 탐험하고 싶은 열망의 무인도였다. 술의 세계로 떠나기 전, 당연히 선배 항해사가 설명해 주는 주의점을 하나하나 새겨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 성격이 게임을 할 때도 튜토리얼을 성실히 수행하는 유형이라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우리는 골목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었다. 경쾌한 발걸음은 아니었지만 방금 전 술집에서 나눈 대화가 우리를 좀 더 친밀한 관계로 만든 것은 분명하다. 서로가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10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말없이 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내 오른 소매를 잡으며 '얼마나 더 가야 돼?'라고 물었고 나는 소매를 털어 사라의 왼손을 잡고는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말했다.


5분 정도 더 걸었을 때 [bar souvenir]라고 적힌 보라색 네온 간판이 보였다. 나는 손을 들어 '저기'라고 가리켰다.


"이쁘다."


"그치 나도 어쩌다 길을 잘못 들었다가 간판이 너무 맘에 들어서 들어가 봤어."


"오, 의왼데?"


"뭐가?"


"그냥 왠지 시키는 음식만 매일 먹을 것 같았는데."


"뭐야. 매일 다른 것 시켜 나는."


"정말?"


"아니 사실 먹던 것만."


"거봐."


우리는 실없는 소리를 나누며 간판 밑에 입구로 내려갔다. 지지직거리는 네온의 소음마저 편안하게 들렸다.


"어머, 문고리 좀 봐."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엔 갈기가 멋진 수사자의 얼굴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거의 실물에 가까운 크기였다.


"나도 첨에 놀랐는데 사장님이 직접 가져다 다신 거래."


"직접?"


"응.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에 사자가 사나?"


"나도 몰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카운터에 서서 유리컵을 닦던 사장이 우리를 흘긋 쳐다보고는 마저 컵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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