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함을 욕망한다.
결혼 후 2년쯤 지났을까. 이젠 아이를 가질 때가 됐어. 이런 생각을 했다. 서른 살 이니까. 남들도 이때 쯤은 아이를 갖잖아? 하면서.
그리고 다시 일 년. 좀처럼 생기지 않는 아이에 조바심이 났고 산부인과에 갔을 땐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자궁경부암 입니다.”
아이가 급한 게 아니라 수술이 먼저라는 의사의 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왜 하필 나에게!” 하면서.
지극히 평탄하고 지극히 무난했으며 학업, 취업, 연애까지 큰 고비 없이 순탄하게만 넘어 갔던 것 같은(항상 당시엔 힘들어도 지나가면 별거 아닌 게 되므로) 나의 인생이 왜 깨가 쏟아지고 행복해야 하는 소위 “신혼”이라는 이 시점에서 “평범”하지 않게 꼬이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평범을 지극히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때론 보헤미안 같은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보편적 문화와 경제적 욕구와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런 보통의 인간. 여유와 휴식이 필요할 땐 여느 직장인처럼 일년에 겨우 일주일 남짓한 여행으로 감성 욕구를 채우는 보통의 사람 말이다.
문화란 남들 할 때 나도 하는 것이라던 내 지도교수님의 말마따나 나는 남들 학교 갈 때 학교 가고, 취업할 때 취업 하고, 결혼할 때 결혼한 대한민국 문화의 표준 분포도 안에 꼭지점을 찍을 사람인데, 자궁경부암 진단은 평범한 내 삶에 들어와서는 안 될 오점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수순대로 수술을 받았다.
회사가 일년 중 가장 바쁘다는 연말에 수술을 하고 무리하게 일을 하다 결국 크게 하혈을 하고 며칠을 몸 져 쉬게 되면서 돈오 같은 것이 왔다.
아! 세상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구나.
아무도 대신 아파 줄 수 없기 때문에 내 인생을 나만큼 절실히 소중히 생각할 사람은 나 뿐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 동안 가족 때문에, 직장 때문에 등등 남의 핑계를 대 가며 스트레스 받고 미련하게 과로했던 삶의 후회이자 반성이었다. 물론 가족은 힘든 상황에서 가장 큰 버팀이 되지만, 내 인생은 내가 중심이 아니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더란 말이다.
그리고 다시 일 년. 자궁 경부를 도려내 제 기능을 일부 상실하긴 했으나 임신은 가능하다는 진단에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기로 했다.
여기서도 벗어나는 나의 평범 루트.
직장을 다니면서 시도한 인공수정은 실패했고, 결국 휴직을 결정했다. 한 번 아파 봤더니 이 까짓 회사 그만 두라면 그만 두라지 하는 심정으로 제출한 휴직계가 승인이 났다.
매일 매일 뱃가죽에 제 손으로 주사 바늘을 많게는 다섯 방씩 꽂으면서 하는 일년의 과정은 고됐고, 무엇보다 난임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랄까. 나의 자괴감 이랄까 그런 게 참기 힘들었다.
남편은 시험관은 두 번은 안 한다며, 이번에 아이가 안 생기면 그걸로 끝. 회사도 그만 두고 집 정리해서 당분간 세계 여행이나 하자고 했다. 나도 아이가 내게 오지 않는다면 그러하겠노라 했다. 진심으로 그럴 작정이었다. 어차피 아이를 갖는 평범함이 내가 갈 길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아이를 갖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의 소원은 다행히 이루어져 나는 지금 세 살 아들을 둔 대한민국 워킹맘 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요즘 블로그나 지면에 종종 부부가 함께 세계 여행을 하고 일상을 벗어난 행복을 말하는 글들을 접할 때가 있는데, 만약 저 시점에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내가, 내 남편이 저 글 속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마 이 글도 이러저러한 계기로 세계 여행을 떠난 어느 부부의 여행기가 되었겠지.
남편이 얼마 전 내게 “그 때 아이 없이 세계 여행을 하며 살아가는 삶과 지금 일과 육아에 허덕이는 나의 삶을 다시 선택하라면 어떨 것 같아?” 하고 물었다.
“세계 여행 백 번 보다 지금 우리 아들을 얻은 게 더 행복해”
나는 평범함을 욕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