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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 Rosa Kwon Jun 21. 2018

[Camino] 1. 도피를 결심한 워커홀릭

졸업과 함께 서쪽의 땅, '세상의 끝(Finisterre)'으로 떠나다

  2017년 2월, 기나긴 대학교 학부생활 6년의 마침표를 찍었다. 6년은 부지런한 누군가가 대학교에 입학해 멋진 석사 학위까지 받을 정도의 긴 시간이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상당히 바빴다. 인류학과 경영학을 공부하며 온도차가 있가지 관점을 익혔고, 청소년들을 위한 비영리민간단체 '드림컨설턴트'를 운영했으며, NH농협은행 산하의 봉사 단체 'N돌핀'을 창단했다. 대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는(물론, 공식적인 표현은 아니며 우리 학교는 확실히 4년제다) 친구들과 함께 청소년 진로교육 회사를 창업했고 운영했다.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무척 많았다고 자부한다. 여전히 잘 연락하고 지내는 소중한 인연들을 얻었으며 과분할 정도로 사랑받았고 사랑했다. 좋은 뜻을 함께하고 싶어하는 똑똑한 사람들, 그들은 언제나 내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내가 대학교에서 얻은 것은 정말 '선한 의지를 가진 멋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다보면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생기게 된다. 덕분에 나의 달력은 언제나 테트리스같이 빽빽한 일정들로 가득했으며, 오죽하면 '사람이 자동으로 숨을 쉴 수 있지 않았다면 언니는 숨 쉬는 것도 잊어버렸을거야'라는 농담을 종종 듣곤 했다. 돈이 안 되는 활동을 하는 동안 일의 강도에 대한 맷집을 쌓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일에서 금전적 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와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나도 확신할 수 없는 중요한 사업적 의사결정을 끊임없이 내려야 했다.


  2016년 6월부터 머릿속에 경고음이 드문드문 울리기 시작하더니, 가장 바빴던 여름을 지나 10월에 이르러서는 손에 쥐고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이 시기를 회고하는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여기서는 한 줄로 요약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고민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채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만 했으며, 이것이 정말 내가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일이라도 내 예상과 어긋나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고, 그 화를 참을 수 없어 밤마다 엉엉 울곤 했다. 번아웃(Burn-out)이었다.



  멀리 도망가고 싶다



  무력함과 좌절감에 오락가락하던 그 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순례길'로의 도피를 불현듯 꿈꾸게 됐다. 재수를 했던 2009년, 삼수를 했던 2010년, 그렇게 마음이 힘들 때마다 떠올렸던 곳이었다. 종교 없는 내가 가도 될까, 800km를 걸어야 한다던데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던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무심코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면서 모두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인천 - 파리 간 대한항공 직항 왕복 티켓 70만원 짜리가 눈에 들어온 것은 정말 신의 부름이었지도 모른다. 12월 7일, 그 티켓을 지르고 말았다. D-DAY는 졸업식 일주일 뒤였다.


  도피할 수 있는 곳이 생기자 떠나기 전까지 조금 활력이 솟았다. 아량이 넓고 친절한 파트너사 플링크 이사님들의 도움으로 두 달 동안 코딩의 세계를 조금 맛볼 수 있었고,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악산 둘레길을 오르는가 하면 한강 공원을 달리기도 했다. 4월에 돌아오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스타트업 관련 채용 사이트를 설렁설렁 찾아보다가 더팀스를 발견했고 내 프로필을 등록했다. 우연찮게 눈에 띄어 Patrick 이사님과 캐주얼 미팅을 했으며 제안해주신 덕분에 자그마한 프로젝트도 했다(더팀스 합류기는 여기에서). 그렇게 성큼성큼 3월이 다가왔다.


나를 너무 잘 아는 친구들이 만들어준 졸업 현수막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로 갑니다.

2009년 처음 알게 되었고, 2016년 가장 마음이 복잡할 때 다시 이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력하던 마음에 다시 발갛게 불이 들어오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간 힘들었던 일들은 사실 준비하며 대부분 마음 속에서 정리가 잘 되었고, 이제는 next step에 대한 고민을 온전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는 없지만 순례길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 더욱 의미있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깨달음을 기대하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상 생활에서는 너무 바빠 미처 듣지 못했던 마음 속 소리를 듣는다면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지 않고, 누군가의 평가와 악의없이 내뱉는 말에 쉽게 상처받지 않고 용기있는 모습으로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7년 3월 2일, 위와 같은 짤막한 글을 별그램에 올리고 나서 홀로 800km의 여정을 떠났다.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이어지는 순례길은 포르투 길, 마드리드 길, 은의 길, 북쪽 길 등 여러가지가 있다. 3월 초는 늦겨울이자 비수기였고 아무래도 여자 혼자서 걷는다는 게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잘 알려져 있으며 정보가 많은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을 걸어보기로 결정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고, RER을 타고 Saint-Michel-Notre-Dame 역으로 이동했다. 밤기차를 탈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눈부신 노트르담 대성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방문객들 때문에 내부에 들어가서 무사귀환 기도를 할 수는 없었지만, 위엄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용기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의 위엄

 

어떻게 찍어도 화보같은 파리


  14kg에 육박하는 배낭에 익숙해지겠다는 심산으로 밤기차를 타는 Gare'd Austerlitz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오르세 미술관 자리에 새로운 역이 생기면서 기존의 명성을 잃어버린 불운의 역이라고 하는데,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곳에서 침대 열차(밤기차)를 타고 바욘(Bayonne)이라는 남부 도시로 이동해 버스나 기차를 타고 두세 시간 가면 '카미노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의 시작점인 생장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밤기차 출발까지 두시간 정도가 남아, 평소에는 잘 가지 않아도 여행지에서는 왠지 꼭 들리게 되는 맥도날드에서 끄적끄적 일기를 적었다. 생경하고 조금은 불안했지만 온전히 혼자라는 자유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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