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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 Rosa Kwon Oct 23. 2018

[Camino] 4.(2) 낯선 곳에서의 익숙한 냄새

여기가 한국인지 스페인인지

20170305. Day 4 론세스바예스 > 주비리 (6h 30m, 21.8km)


산림욕을 하는 듯 소나무 숲 속을 한참 오르내리다 보면 지나온 마을이 저 멀리 아래에 보였다. 사실 길만 봐서는 이게 한국인지 스페인인지 헷갈릴 정도. 마을을 지날 때는 장작 타는 냄새와 가축들의 구수한 냄새가 묘하게 섞여 우리의 시골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따뜻해 보였던 바


멀리에서도 들리는 흥겨운 노래를 따라가니 마을 입구에 바가 나타났다. 바에 도착한 시간이 거의 10시 30분쯤이었다. 우리 이전에 한 쌍의 순례자가 있었고 다 먹을 때쯤 순례자들이 우루루 들어오는 것을 보니 기가막힌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페니쉬 오믈렛을 시키자 감자를 넣은 계란케이크 모양새의 달달한 음식이 나왔다. 2.5유로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바게트와 오믈렛으로 훌륭한 한 끼를 먹었다. 뭐라도 맛있었을 타이밍이긴 했지만.


내가 시킨 오믈렛과 A오빠의 스파게티


그 이후 걷는 길은 오르막길 두어번, 그리고 지독한 내리막길이었다. 아름답게 닦아놓은 돌길과 계단이 있었고, 나무 혹은 철로 만든 문을 6개정도 통과했다. 희뿌연 안개와 문을 지나면서 도깨비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들을 경험했다. 내리막길은 진흙뻘, 작은 자갈, 젖은 낙엽의 콜라보여서 아주 조심해야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삐끗하기 십상일 정도로 미끄러웠다. 걷던 속도보다 더욱 천천히, 1km넘게 내려왔다.


하루종일 가오나시 같았던 날


그렇게 울창한 숲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그렇게 몇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 마침내 주비리에 도착했다.


이 다리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오면 주비리가 등장!



주비리에 도착하면 묵으려고 미리 알아본 알베르게가 있었다. 생장 순례자 협회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 때 받은 알베르게 목록에 의하면 12명 밖에 묵지 않는, 저렴하고 평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아침 식사를 포함해 기재된 것보다 가격이 50%더 비쌌다. 내 뒤를 이어 하나둘 도착한 순례자들도 이 곳을 탐내다 가격을 듣고는 갸우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 아저씨가 영어를 하지 못해서 난감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려고 독일인 바스티안과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봤지만 알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묵었던 숙소. 싹싹하고 재치있는 아가씨의 영업에 넘어가고 말았다.


결국 근처에 있는 다른 숙소에 가게 되었는데 레이디라는 이름의 19세 아가씨가 열심히 영업을 했다. 무료 와이파이, 전자렌지, 빨래서비스, 8인 1실 그리고 10유로. 공립 알베르게도 겨울이라 문을 닫았다고 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발목이 아파 길에서 주운 지팡이에 의지해 내려오던 C씨까지 침대를 잡아주고, 일요일이라 3시에 문닫는다는 식료품점에 갔다. A오빠와 C씨와 함께 저녁으로 데워먹을 피자와 파스타를 구입하고 내일 아침으로 먹을 하몽, 치즈, 식빵을 사서 돌아왔다. 부엌이 있다면 뭐라도 해먹을텐데 오늘은 패스. 간단하게 식사를 한 뒤에 따뜻한 차까지 한 잔 마시고 마을을 가볍게 돌아보니 3분이면 다 볼만한 작은 마을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신발 속에 신문지를 뭉쳐서 넣어두었다. 날이 궂어서 신발을 말리기 위한 용도였는데, 우리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외국인들이 금세 따라하기 시작했다.


첫날 13km, 둘째날 14km, 오늘 21.8km, 내일은 23km 정도로 조금씩 걷는 양을 늘리고 있는데 제법 몸이 적응을 잘 해가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은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대도시이자, 스페인의 대학교를 볼 수 있는 팜플로냐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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