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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삶 Jan 06. 2019

세탁기 없는 미국집에 살았었는데요,

빨래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우리 부부는 아기가 태어나고 난 이후,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집들 중에 나름 현대식 아파트라고 불리는 곳으로 새로 이사했다. 집에 아기를 돌보고 재우는 장소와 우리 부부가 쉴 수 있는 장소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이 집에 굉장히 만족하면서 살고 있지만 이 전에 살던 집이 가끔씩 생각날 때가 있다.


2017년 6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약 9개월 정도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Mountain View라 불리는 작은 마을의 한 콘도에 살았다. 미국의 집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미국 집'이라고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일반 주택을 Single family house라 부르고 이 외에도 나름 적은 수의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Town house, 그리고 한국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는 아파트 형식의 집인 Condominium (줄여서 콘도라고 하겠다.) 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순서대로 보통 Single family house 가 가장 비싼 집에 속하고 Condominium이 가장 저렴한 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미리부터 미국에서 일 년정도 살고 있던 남편은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라 혼자 벌고 혼자 사는 비교적 풍족한 삶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열심히 찾아본 끝에 1960년대에 지어진 작은 콘도를 임대해서 살고 있었다. 그 집은 Studio였고 특별히 방이 따로 있지 않은,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작은 거실 겸 방이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약간 넓은 원룸이라 부를 수 있는 집이었다. 결혼 직후 미국으로 가게 된 나는 그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내 성격상 특별히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사는 편도 아니었고, 넓거나 삐까뻔쩍(?)한 집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었으므로 그 집을 보고 '와- 미국 집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진 채 그곳에서 소소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의 집은 기다란 거실 중앙에 우리의 침대와 1인용 작은 소파가 있었고 그 소파에 앉게 되면 보이는 벽에는 큰 맘먹고 산 삼성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 텔레비전의 바로 옆에는 복도와 이어진 우리 집의 작은 현관이 있었다. 기다란 거실을 쭉 걸어가 침대의 머리맡을 지나면 작은 부엌이 있었고 왼쪽에는 2인용 식탁 테이블과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넣어 놓는 선반이, 오른쪽에는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조리대와 싱크대, 그리고 콘도에서 기본으로 함께 제공하는 냉장고가 있었다. 그때의 우리 집은 한 명이서 살기에는 널찍한, 짐이 별로 없는 두 명이서 살기에는 딱 맞는 그런 크기였던 것 같다. 이런 집에서 우리는 지지고 볶는 신혼 기간을 지냈는데, 그중에서 특별히 우리 부부에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어떤 우리만의 작은 숙제가 있었다. 빨래.


어렸을 때, 미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세탁기와 건조기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방에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빨래를 하러 갔다가 다른 (운명의) 사람을 만나곤 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에는 왜 저런 곳에 빨랫감을 가지고 가서 세탁을 할까 했는데 미국에 와 보니 그때 보았던 장면들이 이해가 갔다. 미국의 작은 집, 특히나 옛날 식 콘도의 경우에는 집 안에 세탁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콘도의 어떤 공용공간에 입주자들을 위해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두고,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곳이 있다. 이런 공간을 Laundry room이라 하는데, 우리가 살던 콘도의 경우에도 집 바로 밑에 세탁실이 있었지만 매번 돈을 가지고 가서 세탁을 하고, 건조기까지 돌리기엔 적게 나가는 그 한두 푼이 귀찮기도 하고 괜스레 아까운 마음도 들만 했다. 그래서 남편은 결혼 전부터 회사에 있는 세탁실에 일주일 정도 모아둔 빨랫감을 가지고 빨래를 하고 오곤 했다. 그 습관이 자연스럽게 내가 결혼하여 미국에 가고 나서도 이어졌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는 임직원들을 위해서 세탁실이나, 운동하는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 그래서 내가 가끔 따라갔던 남편 회사의 세탁실에서 그 지역에서 IT 회사를 다니며 싱글로 살고 있는, 우리 부부처럼 세탁기가 없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와서 무료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하는 모습을 매우 자주 볼 수 있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모두 이용한다면 걸리는 시간은 약 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서너 번 회사의 gym을 가서 운동을 했는데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빵빵해진 우리의 세탁 가방을 들고 가서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운동을 30-40분을 한 뒤, 다시 가서 건조기에 세탁된 빨랫감을 넣었다. 그 이후에 건조가 완료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내가 참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기분 좋게 운동해서 땀도 흘렸고, 빨래도 했고, 보통 우리 부부는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 운동을 갔으므로 사람이 없는 남편 회사의 시원한 저녁 바람도 참 기분이 좋았다. 건조가 다 되기를 기다리는 약 삼사십 분의 시간 동안 나는 남편을 따라서 회사 주변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고, 남편의 오늘 회사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내기를 하면서 탁구를 치기도 했고, 가끔은 가만히 앉아 조근조근 우리 부부의 미래 계획을 그리기도 했다. 낮에는 다양한 인종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남편의 회사가, 빨래가 마르기를 기다리던 그때에는 우리만을 위한 공간이 된 듯했다. 남편은 회사에 있는 작은 음료수나, 초콜릿 등을 내 손에 쥐어주면서 자신의 회사에 나를 데려온 것을 자랑스럽게, 뿌듯하게 생각하는 듯한 모습으로 쉴 새 없이 조잘대면서 여기저기 소개해주거나, 생각했던 거리들을 이야기했다.


가끔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한국 예능을 보던 날에는 굳이 빨래를 하기 위해 차를 타고 회사로 가는 것이 너무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빨래를 기다리면서 했던 그때 우리의 소소한 대화가 모이고 모여 우리 부부관계가 더욱 단단하게 되는 것에 일조를 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물론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굉장히 자주 빨래를 하게 될 것으로 예상해서 세탁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이때의 소소한 즐거움을 다시 누리진 못하지만. 지금도 종종 남편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우리의 작은 대화거리가 바로 일 년 전, 빨래 세탁을 위해 남편의 회사를 누비고 다녔던 그 추억들이다.


새해가 되어 바뀐 내 나이를 세다가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가 결혼한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그 2년 동안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미국-한국 장거리 연애를 포함하여 6년 이상을 연애하다가 결혼했고, 나는 꿈 많은 직장인에서 갑자기 주부, 심지어 미국에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 동안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서 한 아기의 엄마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끔은 우울할 정도로 삶이 변한 2년 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결혼하길 정말 잘했어' 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듯 꾸준하게 나눠왔던 남편과의 속 깊은 대화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런 대화가 더 깊어지고 뭉글어지기를 소망한다. 빨래가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재잘댔던 우리의 소소한 그때의 대화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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