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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삶 Aug 17. 2019

스위스 초등학생이 날 보며 합장했다.

같은 사람들끼리 왜 그래요?

남편과 나는 스위스에서 여전히 스타벅스를 자주 간다. 첫째로는 영어로 된 메뉴가 있는 탓에 음료나 음식을 주문하기에 좋고, 두 번째로는 이미 아는 맛이라 어떤 곳을 가든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고, 세 번째로는 차가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위스에서 차가운 커피를 찾기는 생각보다 꽤 어렵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요즈음에 우리가 살기 시작한 우리 마을에서는 적당한 카페가 스타벅스가 다인지라 종종 콧바람 쐬러 밖에 나가서 커피 한잔과 브라우니 혹은 라즈베리 치즈케이크를 먹고 온다. 어제도 딱 그런 날이었다.


남편의 퇴근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에 아기를 데리고 카페를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별히 어제는 블루베리 머핀을 사 먹었다. 이제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아기는 일인용 체어에 엉덩이를 깊숙이 넣고 앉아 자기 몫으로 시켜준 얼음물을 마시면서 그 자유(사실은 엄마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긴 하다.)를 누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퇴근을 한 남편이 카페로 도착했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불금을 카페에서부터 시작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불금이란 말 쓰나요?)






저녁식사를 할 때가 가까워 왔고, 쾌적한 시간을 보낸 이후 우리 가족은 카페 주위의 마트에서 저녁거리 장을 볼 생각으로 스타벅스를 나왔다. 내가 아기를 안고, 남편은 내 가방과 자신의 회사 가방을 들었다. 문을 딱 열고 밖을 나가자마자 그곳에서 무리 지어 수다를 떨고 있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마주쳤다. 그 사이로 걸어가는 도중에 그중 한 명의 장난기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아이는 나를 보고, 혹은 우리를 보고 갑자기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합장하는 자세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처음 보는 인사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인종차별의 한 표현임을 알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때 지은 내 표정은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로부터 굉장히 차가 워 보인 다고 많이 듣던 얼굴이었으리라.) 그리곤 너 잘못한 거야,라고 말했다.



아이는 바로 자기의 친구들 뒤로 숨었다. 그러자마자 옆에서 다른 한 남자아이가 해당 아이를 다그치는듯한 행동을 하며 우리를 보고 미안하다고 영어로 말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 모든 것이 거의 2초 안에 일어난 것 같다. 내 남편은 그 아이를 보고


"그거 인종차별적인 행동이야, 너 굉장히 잘못된 행동을 한 거야."


라고 영어로 말했다. 잘못한 아이는 뒤로 숨어있어 그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가 우리를 보면서 자신도 자기의 친구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을 충분히 알고 있고, 자신이 주의를 주겠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 난 그 아이를 불러서 직접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어른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 풀려 그만뒀다.



카페 건너편의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도 그 아이가 합장하는 모습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소에 자존심이 센 편인 나에게 그 어린아이의 (모르고 했을 수도 있는 장난 섞인) 행동은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아이에게 그런 일을 겼었다니, 생각만 하면 속에서 부글부글 뭔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이 없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나이 어린아이가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것이 너무 화가 나는 것이었다.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해도, 어린아이의 장난 섞인 행동이라 해도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혹은 내가 좀 덜 성숙한 어른 임이기도 했다.)






벌써 해외에 나와서 산지가 2년이 넘었다. 첫 2년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인 서부에서, 그리고 올해부터는 스위스에서 일상을 보냈다. 생각해보자면 실리콘밸리에서는 워낙 다양한 인종이 있는지라 그런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동양인이 더 많이 있었어서 가끔은 여기가 미국인지 아시아에 있는 어떤 도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스위스에 온 지 두 달만에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나는 그렇다 쳐도 이런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자라 가야 할 검은 머리의 내 아이가 괜스레 짠해졌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런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며 바른 어른으로 잘 성장해갈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트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이 백인 위주이던 사람들에게 괜히 마음이 닫히는 기분이었다. 그 전에는 서로 지나칠 때 모르는 사이더라도 웃으며 "그뤼찌"(스위스식 '안녕')라고 인사하는 것이 참 기분이 좋았는데,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괜히 불쾌해졌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경험하는 이런 인종과 관련된 이슈를 이제야 마주 보고 그 비참함을 알았다니, 스스로에게 '외국 살면서 이런 일도 없을 줄 알았어?'라고 되묻는다. 그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나는 겪지 않았다고 인종차별에 대해 큰 경각심이 없이 살았던 그 시간들이 부끄럽기도 했다.


'지구촌 시대'라고 불리는, 지구 반대편까지 반나절이면 가는, 비단 서양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서로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문제가 이제야 내 삶에서 뭍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겪지 않는 일이니까.' 하며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모습이었더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이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다시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내 아이가 언젠가 이런 일을 겪고 상처를 받는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Image copyright ©️ Bowdoin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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