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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삶 Jan 06. 2020

그렇게 그 부부는 한밤중에 눈물을 닦았다.

아내의 관심을 바라는 남편과, 그것조차 벅찬 아내의 해외생활 투병(?)기

"흥. 너무한 거 아니야?"


시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매일 밤마다 잠에 들기 전에 부부간에 의례처럼 해 왔던 "하나, 두울, 세엣, (입으로 내는 '똑'과 동시에 불 꺼짐)"을 하지 않고 침대 머리맡의 램프 불을 껐다는 것에 대한 남편의 애교 섞인 삐죽 거림이었다. 나는 속이 뻔히 보이는 남편에게 괜히 우쭈쭈 해주기가 싫었다. 그래서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우리 어제도 이거 안 하지 않았어?" 하고 넘기려고 했다. 사실 이런 남편의 행동에 무엇이 특효약인지는 훤히 알고 있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벌써 10년이다. '헤헤'하고 웃으면서 다시 불을 켰다가 '하나, 둘, 셋!'에 맞춰 불을 끄면 서로 기분 좋게 웃으며 밤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평소에도 자주 그렇게 하며 웃다가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조차 하고 싶지 않고, 괜히 촐랑거리기도 싫었으며, 피곤하게 느껴졌다. 거기에다가 남편의 투정은 내 마음을 무겁게, 막히게 만들었다.



사실 이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약 3년간 지속되고 있는 해외생활로 인한 일상적이고 만성적인 피로함과 주부, 엄마라는 정체성의 무게가 최근 들어 무겁게 느껴졌던 것이 그 이유였다. 결혼 후 해외생활을 시작하며 아기를 임신해서 낳고, 갑자기 육아라는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숙제를 매일매일 해오면서 그것이 주는 작은 피로감이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서 버겁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많은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내 정체성은 희미해져 가는 것만 같고, 그로 인해서 최근에 시작한 해외 취업준비로 내심 부담감을 받았었나 보다. 내 24시간, 내 하루는 '아기를 보는 시간'과 아기가 잘 때 했던 '취업준비와 영어공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최근엔 어떤 순간에도 머리와 생각은 쉬지 못했고 그것들이 어느새 고름처럼 곪고 터져 남편에게 슬그머니 내비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 상황이 남편에게는 가족으로서 받아야 할 위로와 관심의 부족으로 나타났고 그래서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삐지며 입을 삐쭉빼쭉대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남편에게 이것을 말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기 싫었던 마음에 그날 밤에는 남편의 투정에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자기 딴에는 용기를 내어서 나에게 애교를 섞어 마음을 내비치며 조금이라도 자신을 바라보길 바랐던 남편은 내 무관심한 반응에 서러움이 복받쳐서 결국엔 훌쩍이며 눈물을 보였다. 그리곤 우는 내내 입고 있던 자신의 후드티로 눈물을 닦았다. 울지 말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내 모습이 나에게도 너무 차갑고 낯설었다. 그래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휴지를 가져와 남편에게 주며 최대한 따뜻하게 말하기 위해 애썼다. 몇 분 더 울고 나서 남편은 자신이 느낀 기분을 이야기했다. 겨우 닦은 눈물을 다시 흘리면서.



"우리 이 전에 했던 농담처럼 현실부부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았는지 또 한 방울 눈물을 흘리고.

"너랑 이야기하고 싶고 위로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을 해도 감정이 연결되지 않은 느낌이야"

하면서 또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이런 남편에게 내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후 몇 년 동안 같은 주제로 징징대는 스스로가 싫었지만,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초라하게 느껴지는 스스로를 마주 보는 것이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최근에 느껴왔던 해외생활의 압박감으로 인해서 피로하고 지친 마음을 이야기해야 남편에게 내 행동을 설명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사는 것은 미국에서 사는 것과는 또 다른 모험이다. 아시안을 찾아보기 힘든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저녁 반찬거리로 돼지고기 하나를 사는 것도 구글 번역기를 켜서 독일어로 된 고기의 부위를 확인하지 않고는 소 혀, 간과 같은 다른 이상한 부위를 살 위험이 있다. 그리고 심지어 비싸기 때문에 뭐 하나 잘못 산다면 2-3만 원이 그냥 깨지는 거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작게는 버스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에서부터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어느 무엇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외로움. 그래서 가끔은 집 밖에서도 나와 함께 한국어로 소통을 해주는(?) 두 살짜리 내 아기가 고맙고 친구 같다.


스위스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집 문의 유리가 깨지고, 집 안의 물건들을 통째로 도둑맞을 뻔했던 사건으로 인해 느끼는 (미국에서 살 때보다) 일상적인 불안함.


아이를 말도 통하지 않는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엄마의 죄책감.


이렇게 매일 반복적이고 일상적으로 있는 일들이 어느 것 하나도 노력 섞인 행동 없이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런 와중에 남편이 갈구하는 관심은 어쩌면 뒷전이 되어버렸고, 나에게 이것을 바란다는 것이 또 하나의 부담감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 +1로 다가온 것이다.






이렇게 내가 느끼는 비밀 아닌 비밀을 남편에게 털어놓으며 나도 눈물 찔끔. 그러다가 남편도 또 눈물 찔끔. 그렇게 12시에 침대에 누운 우리는 그동안 속상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고 & 해명하며 새벽 두 시까지 울고, 웃고, 대화했고 마침내 '우리 다시 배려하며 잘 지내보자' 하고 진짜 밤 인사를 하고 잠에 들었다. 아!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고 싶다고 해서 손도 꼬옥 잡기도 했다.



그다음 날. 엄마, 아빠 둘 다 새벽 내내 우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가기 싫어 우는 아이에게 아쉬움의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에서 나와 남편은 회사로, 나는 남은 다른 일들을 하기 위해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웃으며 "울지 말고 회사에 잘 다녀와" 하고 기차역으로 가는 남편에게 인사하니 그의 눈이 다시 빨개진다. 그리고 코를 훌쩍인다. 분명 어제저녁의 그 서운함이 다시 생각난 모양이다. 그래도 남편의 얼굴은 웃고 있다. 눈물을 눈 밑으로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면 운 것은 아니고 그냥 눈물만 잠깐 나온 것이 된다.)  하늘을 보는 남편의 등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따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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