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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Dec 11. 2015

겸손에 대하여 <주역 겸(謙)장>


#1 주역이란 무엇인가 


주역은 사서삼경 중 하나로 동양고전의 큰 기둥 중 하나입니다. 저번 글에서 인용했던 논어와 달리 주역은 우리에게 처세서라기 보다는 점술서로 인식되곤 합니다. 주역을 읽는다고 하면 보통 10명 중에 9명은 


"점쟁이 할 거야?" 


이렇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은 주역도 처세서적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역(易)은 변한다는 뜻인데 천지 만물이 변화하는 궁극의 원리를 밝히고, 사람도 그 원리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기술된 책이 바로 역서입니다. 그 여러 역서 중 하나가 바로 주역인 것이죠. 역(易)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신 분들은 이렇게 보시면 바로 이해되실 거예요. 주역은 영어로 The Book of  Changes입니다. 변화에 대한 책인 것이죠. 따라서 주역을 통해서도 인생을 사는 법에 대해 배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역은 모두 6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책의 구성에 대한 것 까지 설명하는 것은 이 매거진의 제목인 "바쁜 현대인을 위한 고전 브런치"와는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려고 합니다.. 언젠가 주역을 가지고 브런치 매거진을 새로 만들게 된다면 그때 함께 공부하기로  하죠! 





#2 세상과 인생의 4가지 시기


겸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주역에서 세상과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나누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역을 읽다 보면 계속 나오는 개념이니 먼저 숙지해두시면 앞으로 주역을 인용하는 다른 글에서도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주역은 세상과 인생을 4가지 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형리정(元亨利貞)


원(元)은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혼돈의 시기입니다. 우주로 따지면 아직 빅뱅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하며 사람으로 따지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의 빛을 보기 이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질서도 규칙도 없는 혼돈 그 자체의 상태인 것이죠. 


형(亨)은 만물이 태어나 자라는 시기입니다. 우주가 카오스에서 벗어나 음과 양으로 구분되고 뱃속에 있던 아기가 세상으로 나와 커가는 과정 전체를 뜻합니다. 교육을 받고 자라나 어른이 될 때까지의 과정 전체가 형()에 포함됩니다. 


리(利)는 배움을 마치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장년의 시기를 말합니다. 우주 만물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때이고 노력 여부에 따라 속세의 물질적 이득도 볼 수 있는 때입니다. 


정(貞)은 소멸의 시기입니다. 인간이라면 병들어 생명이 위태롭다가 결국은 생명을 잃게 되는 최후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3 주역에서 말하는 겸손 


겸(謙)


주역 겸(謙)장은 겸손과 겸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謙 亨 君子 有終

겸 형 군자 유종 


이 겸이라는 것은 어려서부터 익혀서 군자가 마지막에 갖추는 덕목입니다. 즉 형(亨)의 시기부터 익혀야 겨우 완성할 수 있는 덕목입니다. 그만큼 겸손해진다는 것은 힘든 인격 수양을 긴 시간 동안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군자의 마지막 수행 단계인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대부분 형(亨)의 시기를 살고 계실 것 같습니다. 간혹 리(利)의 시기를 살고 계신 분도 있겠지요. 주변의 지인들 중에 정말 겸손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겸손하다는 평을 받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데도 말이지요. 주역에 따르면 그들은 군자의 마지막 수행 단계에 도달했거나 최소 겸의 수행을 하고 있는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재밌는 것은 주역의 64괘 중에 나쁜면이 없는 괘는 바로 이 겸괘 하나 뿐이라는 것입니다. 겸괘를 제외한 모든 괘는 길흉이 반복됩니다. 겸은 땅 아래에 높은 산이 있는 형상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깊이를 쉬이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겸괘는 풍요로움(대유괘) 다음에 위치하는데 이것은 풍요 이후에 교만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하기 위함으로 해석됩니다. 






손(巽)


주역 손(巽)장에서는 지나친 겸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巽在牀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손재상하 용사무분약 길 무구 


손(巽)이 상 밑에(牀下) 있으니(在) 어지러움에는(紛若) 사(史)와 무(巫)를 써야(用) 길하고(吉) 허물이 없다(无咎)는 말입니다. 


손이 상 밑에 있다는 말은 겸손이 지나치다는 말입니다. 너무 겸손해서 맡아야 할 일을 맡지 않는 모양이 손재상하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 박혀있는 형국을 뜻하는 것이죠. 중국의 후흑학에서는 오히려 난세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군자는 혼돈의 시기에 겸손의 덕목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입니다. 






주역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고전 중 하나입니다. 공자의 논어도 열린 문장이 많아서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도 많으나 주역 같은 경우는 아예 앞뒤 이야기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으니 난해하다는 꼬리표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공자세가에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이 나옵니다. 


공자는 가죽 끈으로 맨 책이(韋編) 세 번이나 끊어질 만큼(三絶) 주역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세상과 인간의 삼라만상에 대한 것들이 담겨있는 대작인만큼 공자도 이 책에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주역을 인용한 글을 가끔 적을 계획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5.12.10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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